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 Oct 19. 2023

경계에서,

2023.03.28. 화. 마지막 대화


1.  일찍 잠들었다가 아빠 신음소리에 잠이 깼다. 1시도 안 된 시간, 엄마는 아빠를 두드리다가 주무르다가, 물을 가져다주다가 자세를 바꿔주다가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잠시 침대에 누워 그 소란을 남의 일처럼 듣고 있다가 배가 고파졌다. 밖이 다시 조용해진다. 아빠의 잠을 깨우고 싶지 않아서 배고픔은 참아본다. 아빠가 저렇게 아픈데 내가 지금 생각나는 것은 테이블 위에 먹다 남은 빵이라니.

  다시 아빠의 신음이 시작된다. 엄마가 일어난다. 그 틈을 타서 나도 밖으로 나간다. 화장실 핑계를 댄다. 지금 쓰면서 생각에는 왜 그때 빵을 먹으러 안 갔는지 모르겠으나 화장실에서 나와 바로 아빠 옆으로 가서 누웠다. 아빠를 다독여주고 손을 잡아줬다. 아빠가 조금 안심하는 것이 느껴졌다. 신음소리가 잦아든다. 아빠가 조금이라도 뒤척이면 나도 얼른 일어나 반응했다. 그 와중에 아빠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자'라고 나지막이 소리를 뱉고는 아빠의 이불을 들춘다. 아빠 옆으로 와서 자라는 거다. 어린애같이 아빠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아빠는 옛날처럼 팔베개를 해주려고 했지만 차마 그 팔에 내 머리를 올리 수 없었다. 아빠 팔을 붙들고 아빠의 맥박을 느껴본다. 아직 힘차게 뛰고 있다. 이게 다행인지는 알 수 없다.


2.  오랜만에 아빠를 붙들고 잠들려니 고3 때가 생각났다. 수능 전날 잔뜩 긴장해서 잠들지도 못하는데, 야행성이던 아빠만 깨어있었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아빠 딸이니까 잘할 거라고 걱정 말라고 했겠지, 나는 그런 아빠의 등에 내 등을 대고서야 겨우 잠을 잘 수 있었다.

  아빠에게도 그런 스킨십이 필요한 시간인 것 같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아빠가 혼자가 아니라고, 옆에 내가 있다고. 열 마디 말보다 살의 온기가 전해주는 것이 컸다.

  그렇게 나도 아빠 옆에서 잠들었는데 다시 아빠의 진통이 심해졌다. 아빠는 별안간 성호를 긋고 기도한다. 이제 바라고 청할 곳은 신밖에 없었다. 소리가 나오지 않는 아빠의 마른입은 기도를 위해 들썩거렸다. 아프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일까, 이제 그만 끝내 달라는 기도가 아닐까 하고 감히 짐작해 본다. 이제 정말 고통밖에 남지 않은 아빠의 남은 시간은 옥살이와 같다. '몸'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다. '암'이라는 것이 잔뜩 차지하고 있는 '몸'이라는 감옥에서 아빠는 꼼짝없이 당하고 있다.

  엄마는 내일 출근해야 하니 들어가 자라며 나를 다시 들여보낸다. 다시 엄마와 아빠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밀려오는 잠 덕분에 나는 그 상황에서 도망친다.


3.  다음날 눈은 제법 일찍 떠졌다. 아빠의 몸은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입술에 혈색이 돌고, 차갑던 손에도 온기가 돌고 어제 무릎(화장실에 기어가다 생긴 멍)과 손(바늘자국)에 가득하던 멍자국이 조금 연해졌다. 후시딘을 발라달라고 해서 멍든 부분 허벅지 안쪽 투석 때문에 생긴 바늘자국까지 꼼꼼하게 발랐다.

  아빠를 주물러주다가 엄마가 타준 커피를 마신다. 아빠는 엄마가 잠깐 커피를 타러 가거나, 집안일을 하러 사라지면 바로 찾는다. '뭐 하냐, 어디 갔냐' 원래도 엄마가 바로 옆에 붙어 있어야 하는 사람이었는데 아프니 더 심한 것 같다. 내가 옆에 있어도 엄마를 찾는다. 아마 불안감 때문에 더 그런가도 싶지만, 아빠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사람 정말 안 변한다.


4. 갑자기 아빠가 동영상을 찍으라고 양손을 모아 만든 네모 표시를 얼굴에 가져다 대는 손짓을 한다. 내가 핸드폰을 들어 아빠를 향하자, 성호를 긋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그저 찍어둔다.


5.  엄마가 내 밥을 챙기는 동안 아빠는 또 뭔가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앉을 수도 없으니 누워서 종이컵에 토를 했다. 처음엔 토라기보다는 가래를 뱉는 느낌에 가까웠다. 검은 침덩어리가 나오고, 입 안에는 백태라기엔 두껍고 누런 것들이 혀에 백여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가래 같았던 것은 아주 묽은 물과 같은 것으로 변해 아빠의 뺨과 목을 타고 줄줄 흘렀다. 아빠는 종이컵을 가리켰다. 아빠 옆에는 늘 종이컵이 놓여있었다. 그 와중에도 손으로 가위 모양을 보여주며 가위를 가져오도록 했다. 그리고 직접 종이컵을 자르기 시작했다. 아빠는 이 순간까지도 아이디어가 나온다. 종이컵을 그냥 입에 대면 입 모양과 달라 더 만이 흐를 수 있으니 입술의 모양에 맞게 둥근 모양으로 자르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양이 너무 많아서 종이컵으로 다 들어가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나는 그것들을 닦아내기 바빴는데, 냄새가 너무나 고약했다. 닦는 내내 가족이니까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정말 속이 썩고 있고 그 썩은 것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람이 죽으면 코로 입으로 흘러나온다는 체액이 이런 것이 아닐까, 나는 아픈 아빠를 두고 모두가 겪은, 무두가 겪어야 할 죽음의 모습에 대해 생각했다. 엄마가 밥을 챙겨 왔지만 아빠의 속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먹은 것도 없이 어떻게 그렇게 쏟아낼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빠는 엎드려 토해야겠다며 자세를 변경했다. 엄마는 아빠의 자세를 바꿔주느라 바쁘다. 여러 번 자세를 바꾸고 컵을 입모양에 맞게 자른 덕분에 아빠는 흘리지 않고 토해낼 수 있었다. (그만큼 오랜 시간 토하는 중이다.) 조금 안정을 찾자 밥을 먹으라고 한다. 이번엔 아빠 옆이 아니라 주방에서 밥을 먹는다. 밥을 먹는 내내 아빠 목구멍에서 나오던 것들이 떠오른다. 그것들을 떠올리며 밥을 먹을 수 있으니 나는 꽤나 비위가 좋은 인간인 것 같다. 엄마는 그마저도 후다닥 먹고 아빠에게로 간다.

  

6.  아빠 상태가 좋지 않으니 학교에 가지 말까 하는 생각과 동시에 학교로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특히 지금 아빠가 토해내고 있는 것.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냄새를 맡는 것도 모두 너무 괴롭다. '오늘은 혼자 있어도 된다'는 엄마의 말을 내 좋을 대로 믿고, 그 말을 핑계 삼아 떠나기로 결정한다. 가려고 아빠한테 인사를 하려는데 아빠가 그 말하기 힘든 상황에도


  '어제 죽었어야는데 딸이 온 덕분에 하루 더 살았다'


  나는 솔직하게 답한다. 

 '내 덕분은 무슨 아빠 제일 아픈데 도망가는데'  라고 말하며 또 눈물이 난다. 


  '힘들어서 어떻게 해' 

   하며 눈물이 줄줄 흐른다. 


  아빠는 여러 번 자세를 고치다가, 플라스틱의자 위에 방석을 테이프로 붙인(그것도 아빠가 조금 나을 때 직접 제작한) 의자를 붙들고 나에게로 고개만 돌린 채 대답했다.


 '지금 이 병보다 사는 게 더 힘들었어'


  목소리에 힘은 없었지만 아빠의 의지는 분명했다. 아빠는 자식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 돌아와서 다시 쓴 부분 : 이 날의 대화가 우리의 마지막 대화였다. 이 날의 대화가 마지막 대화였다는 점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그런 대단한 점은 신랑 덕분에 알게 된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순간, 투병하는 모든 순간, 죽어가는 순간까지 아빠는 그 자신이었다. 위엄을 가지고 자존심을 지켜내고 죽는 방식마저 자신의 방식대로였던 사람. 

  지금의 고통보다 사는 것이 더 힘들었다는 아빠의 말은 어쩌면 죽어가는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위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식이 '그래 아빠 이제 편한 데가, 좋은 데가, 이제 편하게 살아'라고 마음먹을 수 있게 해주는 말이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아빠의 이 생에서의 삶이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운 것은 아니었기를, 그래서 그 문장이 오직 철없고 감정적인 둘째 딸을 위한 것이기를.


  우리 대화를 들으며 엄마도 이미 울고 있다. 아빠가 계속 토하고 있으니 엄마는 평소와 달리 배웅을 못한다고 그 자리에서 붉어진 눈으로 나에게 인사한다. 잘 가라고. 운전 조심하라고. 지난번에 병원에서 나설 때 엄마가 배웅해 줬던 것, 그래서 둘이 붙들고 다시 울었던 것 그런 순간조차 사치스러운 시간이었다. 


  정말 속도 없이 눈물이 난다. 아빠의 폭력을 잊지 않겠다고, 아빠의 죽음에 대해서 어느 정도 경계석이 세워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역시 이런 인간이다. 회색 같은 인간. 세상에 무조건 나쁜 인간이 없다고 믿는 인간. 우리 아빠도 거기에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일.


  이 슬픔과 걱정이 아빠 때문인지 엄마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7.  나는 집에서, 아빠에게서 도망쳐 나왔다. 운전을 위해 다이내믹 듀오 플레이리스트를 고르고는 역시 내 원픽은 다이내믹듀오라고 생각한다. 역시 좀 올드한가 생각한다. 집 밖을 나오자마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집 밖은 다른 세상이다. 다이내믹 듀오 음악이 흘러나오고, 도로에는 개나리 벚꽃이 한창이다.


  더 많이 더워지기 전에 아빠가 좋은 날 더 아프기 전에 떠나길 바란다.

  엄마도 꽃구경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들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지 말자.


8.  돌아온 학교는 평화롭다. 교실을 나오던 교과 선생님이 이제 제 최애반 하기로 했어요!라고 말한다. 기분 좋은 일이다. 갑자기 학부모님들이 챙겨주신 도넛을  기초학력 진단평가 결과지와 함께 나눠준다.


9. 야근을 했다. 피로가 몰려온다. 엄마가 얼마나 고군분투하고 있을지 떠올린다.


10. 아빠를 보면서 계속 든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니 당연하게도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퇴근한 신랑이 금방 먹을 음식이 없다. 오늘도 라면을 먹는다. 라면을 먹은 죄책감과 근육이 사라져 가는 신랑이 걱정되어 같이 유튜브를 틀고 운동을 해본다. 간단한 운동인데도 마주 보며 하니 우습다.





  

이전 09화 4300원짜리 피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