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 상처는 여전히 아프다.

나를 위한 변명

by NoZam

이혼을 결정하고 난 후부터 문득 문득 아프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가끔은 머리가 띵하고 마치 무언가로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아득한 순간도 찾아온다. 가슴 한쪽이 쥐어짜는 것 같은 기분에 숨 쉬는 것도 힘든 순간도 가끔 찾아온다.

아이의 손을 잡고 층계를 오르다가 무릎이 꺾여 풀썩 주저앉기도 한다. 아이는 깜짝 놀라서 묻는다.
“아빠! 왜 그래? 아파?”

흔히 사랑의 상처, 이별의 아픔이라는 말을 한다. 유행가 가사에서 많이 듣곤 하는 이 말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나에게 있어서 사랑의 상처, 이별의 아픔은 실재하는 고통이다. 게다가 아픈 부위도 꽤 다양하다.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두통을 느끼기도 한다. 어이없게도 손가락이나 무릎이 아플 때도 있다.

언젠가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경험도 했었다. 잘 자고 일어났는데 갑자기 모든 사물이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난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알았다.
잠시 더듬대다가 멍하니 앉아 있는데 서서히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안개가 걷히는 것처럼 그렇게 말이다.
병원에서는 전혀 이상이 없다고 했다. 아프다고 말하는 내게 병원에서 해준 처방은 기껏해야 진통제였다. 그런데 그 진통제가 통증을 덜어주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과연 내가 아내와의 이혼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도가 지나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인가?
이혼을 한 후 나는 특별한 변화가 없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아이의 재롱에 즐거워하고 있었으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도 여전히 즐거우면 호탕하게 웃었고 술잔을 기울이면 실없이 히죽댔다.
이혼한 사실을 알고 말 건네기 조심스러워하는 이웃들에게는 오히려 내가 먼저 거침없는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그런 내가 가끔 이유 없는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다.

어느 날인가, 머리가 아파서 병원에 찾은 내게 의사가 물었다.
“혹시 무슨 걱정거리 있으세요?”
“네? 뭐 지금으로서는 특별한 걱정거리라곤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럼 최근에 안 좋은 일 있으셨어요?”
“최근에? 아. 네, 뭐 그런 일이 좀 있기는 했는데…….”
“무슨 일인지 이야기하실 수 있으세요?”
짤막하게 대답했다.
“네. 얼마 전에 이혼을…….”
의사는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이런 말을 했다.
“아. 그러시군요. 어쩌면 그것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셔서 그런 걸 수도 있겠군요.”

나는 그 말에 꽤 놀랐다.
아내와의 이혼은 말하자면 몸에 직접 타격을 가하는 폭력은 아니지 않은가? 법적인 문제일 뿐이고, 감정적, 정신적 문제일 뿐이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일이 내 몸에 직접 아픔을 느끼게 만든다고?
머리가 아픈 건 그나마 이해할 수 있겠다. 이혼이라는 게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충격을 주는 일이니 말이다.
그런데 가슴이 아프거나 숨 쉬기 곤란함을 느끼는 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아니 그런 건 그래도 그러려니 하겠다.
손을 펴기도 힘들 만큼 손가락 마디가 아프거나, 무릎을 찌르는 것처럼 쑤시는 건 도대체 뭐고, 눈앞이 흐릿해지는 건 또 무슨 경우인가?

아내와 이혼을 하고 나서 아이와 둘이 살면서 정신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가끔, 아니 종종 찾아오는 이런 단발적인 통증에 조금 익숙해지고, 주머니 속에 진통제 두세 알을 갖고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와 단둘이 살아가는 게 힘에 부치는 걸 절감하게 되었다. 결국 부모님과 함께 살기로 결정을 했다. 새해 벽두에 이삿짐을 나르고 나니 정말 생활이 송두리째 뒤바뀌어 버렸다.
아이 뒤치다꺼리에서 놓여나게 되니 나를 위한 시간을 조금 더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출퇴근에 소모되는 시간도 두 배 이상 늘어났지만 말이다.
막히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새벽 출근을 시작했고 7시 정도면 사무실에 도착한다. 오래도록 멈췄던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한 때, 100Kg에 육박했던 몸무게를 80Kg 이 채 안 되는 수준으로 떨어트렸던 것이 바로 달리기였다. 몇 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했던 달리기 덕분에 몸이 상당히 가벼워진 것이다.
아내와의 이혼 문제 때문에 그만 두었던 달리기를 다시 시작했다.
항상 주머니에 넣어 다니던 진통제가 거추장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렇게 아팠던 이유를 모르겠고, 한동안 나를 괴롭히던 통증이 사라진 것도 도저히 설명을 할 수 없었다.
항상 주머니에 넣어 다니던 진통제도 책상 서랍 속에 처박아 두었다.

시간은 참 천천히 지나간다. 아무리 잠을 자고 일어나도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고, 정신없이 발버둥을 치며 살아도 여전히 하루만큼만 지나갔을 뿐이다.

나는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훌쩍 십 년, 아니 한 삼십 년쯤 시간이 지나버렸으면 싶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일이라고 해도 삼십 년쯤 지나면 아프지도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기억조차 나지 않을 시시한 일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돌아보니 아내와 이혼을 한 지 이제 오 년쯤 지났다.
불쑥불쑥 찾아오던 통증은 이제 전혀 나를 찾지 않는다. 이혼을 했다는 것, 헤어졌다는 것이 이렇게 사실적인 고통이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처럼, 그런 아픔이 언제부턴 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도 뭐라 설명이 되지 않는다.


몸이 아프지 않다는 것이 내가 이혼의 충격에서 온전히 빠져나왔다는 증거일까?
아이는 여전히 내게 엄마의 이야기를 묻는다. 나는 아이의 물음에 대답을 하면서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해맑게 웃던 모습, 화가 날 때 찡그리던 눈가의 주름, 임신했을 때의 불룩한 배, 아이를 낳고 나서 맥이 다 빠져나간 모습, 갓 태어난 아기를 보며 눈가에 맺히던 눈물까지...
이혼 결정을 하고 나서 냉랭하게 변해버린 표정과 딱딱하게 굳어버린 입술까지 모두 기억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난 여전히 아프다.
어쩌면 진통제를 먹고 통증을 줄일 수 있던 그때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진통제 따위는 전혀 쓸모가 없는 그런 아픔을 느낀다.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 있다고 했던가?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한숨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진다고?

시간이 흐르고 나니 사실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은 것 같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약조차 소용없는 그런 아픔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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