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시간의 재발견 - 노력은 왜 우리를 배신하는가
안데르스 에릭슨 | 로버트 풀 (지은이) | 강혜정 (옮긴이) | 비즈니스북스 | 2016-06-30 | 원제 Peak: Secrets from the New Science of Expertise
지난달 중순, 그러니까 2016년 7월 중순경 메일을 한 통 받았다. 비즈니스북스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1만 시간의 재발견”을 보내 줄 테니 읽고 리뷰를 써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블로그에 종종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리다 보니 이런 메일을 가끔 받는다. 그러면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 책이 어떤 책인가 검색하는 거다. 출간된 지 시간이 좀 지난 책일 경우에는 리뷰를 만나게 될 때도 있고, 신간일 경우에는 출판사에서 배포한 자료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에 관해서는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하는 페이지를 훑어보았다. 오래전부터 유명한, 마치 하나의 성공 주문, 또는 슬로건처럼 되어버린 “1만 시간의 법칙”에 관한 내용이라는 걸 알게 되고 바로 신청을 했다.
가끔 안부 인사를 건네는 분 중에 바로 이 “1만 시간의 법칙”을 무척이나 신봉하는 분이 있다는 게 이유다.
그분은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성공 비즈니스” 단체에서 비싼 수강료를 내면서 1만 시간을 공부했고 그렇게 1만 시간을 꽉꽉 채웠다며 기뻐했었다.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이 그 1만 시간을 채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는 내가 안다. 그런데 시간이 몇 년 흐르도록 그분의 성공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궁금증을 느끼던 중, 오랜만에 다시 그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이렇게 말을 했다. “1만 시간은 성공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일 뿐이죠. 이제부터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겁니다.” 얼마나 걸릴지는 자신도 모른단다.
그 1만 시간을 향해 갈 때, 그분은 분명 1만 시간의 끝에는 성공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을 했었는데...
1만 시간... 얼마나 오래 걸리는 시간일지 정리해보자.
하루 8시간씩 꼬박 투자를 한다고 가정할 때, 1,250일, 3년 반쯤 걸리는 시간이다. 직장을 다니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1만 시간에 도전한다면 하루에 길게 잡아도 4시간 이상은 어려울 것이고 그러면 그 기간은 바로 2배로 늘어난다. 2,500일, 7년 가까이...
8시간을 투자해도 대학 다니는 것보다 훨씬 긴 시간이고, 4시간을 투자한다면 방학 없이 초등학교 다니는 시간보다도 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렇게 하고도 다시 성공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한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었는데, 마침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책은 제법 두툼하다. 주석을 빼고도 380페이지를 넘기는 분량이니 말이다.
이 책의 요점은 간단하다. “1만 시간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다만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접근하느냐의 문제는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한다.”라는 말이다.
심지어 애초에 1만 시간을 주장했던 사람도 상징적인 의미에서 1만 시간인 거지 실제는 그보다 몇 천 시간쯤 짧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책, 1만 시간의 재발견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건 “컴포트 존 벗어나기”라고 볼 수 있다. 무의식적으로도 척척 해낼 정도까지 익숙해진 뒤에도 꾸준히 같은 방법으로 연습하는 것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뇌를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에 몸은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 책에서는 이렇게 익숙한 상태를 컴포트 존이라고 부른다. 이 컴포트 존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훈련을 지속해야만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적인 것은 “천재는 없다”는 주장이다.
다양한 연구와 실험, 관련 자료의 검토를 거쳤다고 말하는 저자는 어떤 경우라고 해도 노력 없이 선천적인 재능만으로 최고 실력을 갖추는 천재는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서번트 신드롬이라고 부르는 장애인의 특정분야에 대한 천재적 능력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특정 분야에 몰두할 수 있는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고 그 집중력이 어떤 분야에 대한 관심과 맞물리면서 우리 같은 사람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집중해서 연습하고 훈련을 한 것이라는 말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하는 말, 특히 “천재는 없다”는 대목은 꽤나 마음에 든다. 더구나 전문적인 연구를 통해 내린 결론이라니 더할 나위 없이 말이다.
신체의 선천적 한계, 가령 키가 작다 또는 크다, 고음을 낼 수 있다 없다 와 같은 문제로 갖게 되는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그런 부분이 장애가 되지 않는 영역에서는 천재적 능력은 없고, 다만 제대로 된 훈련이 있을 뿐이라는 거다.
이 이야기는 내게 상반된 두 가지 생각을 갖게 한다.
우선, 나도 제대로 방향을 잡고 노력을 하면 오십이 넘은 지금 시작해도 무언가 이룰 수 있다는 아주 매력적인 상상이다.
다음은 지금 이 나이가 되도록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는 나는 그럼 오십 년 동안 도대체 뭘 하고 살았다는 이야기지?라는 자괴감도 들게 한다.
어쨌든 이 책은 “천재”라는 거대한 장벽도 사실은 그 사람에게 우연히 주어진 능력이 아니라 그 스스로 이루어낸 노력의 산물이라고 강조한다.
그럼 내가 지금이라도 할 일은 방향을 제대로 잡고 안일함에 빠지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한 번뿐인 인생을 그렇게 피 터지게 노력하며 사는 게 더 나은 건지, 쉽고 편하게 놀면서 보내는 게 더 행복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 책에서 밑줄을 그은 문장 몇 개...
18P
말하자면 절대음감 자체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절대음감을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 타고난 재능이다. 그리고 거의 모든 사람이 이런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를 보여주는 한 문장이다. 나는 노래를 참 못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릴 적, 교회 성가대에서 베이스 파트를 담당한 적 있다. 노력을 하면 노래방에서 마이크 쥐는 게 쉬워질 수 있다는 말?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단지 노래방에서 멋지게 몇 곡 뽑는 정도의 목표의식으로 엄청난 노력을 할 동기가 되지 못한다는...
57P
일반적인 해결책은 ‘더 열심히 하기’가 아니라 ‘다르게 하기’다. 즉 방법의 문제다.
- 다르게 하기...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핵심일지 모른다. 몇 년째 서예 공부를 하면서도 조금도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가 이 부분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ㅠㅠ
129P
특히 실적이 좋은 설계사일수록 ‘만약....... 그러면...... “식의 지식 연결 구조를 고도로 발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 "만약~ 하다면~"... 이건 몇 년 전, 내가 꽤 심각하게 고민을 했던 부분이다. 방향은 이 책과 다르지만 말이다. 오죽했으면 프리랜서 명함을 파면서"If... Then..." "만약"이라는 문구를 명함 앞뒤에 새기기까지 했었겠는가...
이 명함을 받아 든 사람들 중에 상당히 많은 분들께서... "아! 호가 만약이신가 보군요!"라고 하셨었다.^^
326P
사람들은 삶에 마법 같은 것이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모든 것이 고루하고 지루한 현실 세계의 규칙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실력을 키우기 위한 힘든 노력이나 훈련이 필요 없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보다 신비로운 것이 또 있겠는가? 이를 전제로 형성된 거대한 만화책 사업이 있을 정도다. 느닷없이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고, 갑자기 당신은 놀라운 힘을 얻게 된다. 당신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알고 보면 당신은 크립톤이라는 행성에서 태어났고, 하늘을 나는 능력이 있다 방사능을 쬔 거미에게 물린 다음 벽에 매달리고 벽을 타고 오르내릴 수도 있게 된다. 우주 방사 전에 노출되었고 이제 당신은 모습을 숨길 수 있는 투명인간이 되었다. 기타 등등.
- 고등학생 딸아이가 요즘 재미있게 보는 드라마가 W다. 만화 주인공이 현실로 튀어나온다는 설정... 하긴, 이 드라마뿐이겠는가? 온갖 특수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가 드라마, 영화 아니던가? 우리의 판타지를 보여주는...
336P
일부 사람들은 실제로 음치로 태어난다. 이는 일종의 질환으로 ‘선천성 음치’ congenital amusia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극도로 드문 현상이라는 것이다. 워낙 희귀한 현상이어서 그런 질환을 가진 여성을 발견하고 관찰한 결과가 주요 학술 잡지에 논문으로 실릴 정도다. 문제의 여성은 명백한 뇌의 손상이나 결함이 없고 청력과 지력도 정상이었는데, 자신이 이미 들은 가락과 들은 적이 없는 새로운 가락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했다. 흥미롭게도 그녀는 박자도 잘 구별하지 못했다. 이런 환자의 경우 아무리 노력해도 음정을 맞추지 못할 것이다.
- 이 문장은 또 한 번 나에게 "노래 연습을 해볼까?" 하는 심각한 고민을 하게 만들었음!!
354P
그러나 태생적 차이보다 연습의 역할을 강조해야 하는 훨씬 긴급하고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자기 충족적 예언’ self-fulling prophecy의 위험 때문이다.
- 내가 딸아이에게 절대 하지 않는 말이 있다. "넌 이런 건 못할 것 같아."라는 식의 표현이다. 농담으로라도 하지 않는다. 무척 인자하시고 자식 키우는 데 공을 들였던 내 부모님께서 어린 시절 내게 가끔 하셨던 말이 있다. "넌 정말 운동신경은 무딘 것 같아.", "무슨 노래를 그렇게 듣냐? 가수 될 것도 아니면서...", "원래 우리 집안은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그리고 나는 운동 참 못 한다. 지금까지 농구공을 골대를 향해 던져본 기억이 없다. 노래는 물론이고, 디자인을 전공했지만 그림 실력은 젬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