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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Zam Jun 24. 2017

책도둑 - 마커스 주삭

책도둑 | 마커스 주삭 (지은이) | 정영목 (옮긴이) | 문학동네 | 2008-02-01 | 원제 The Book Thief (2006년)


 이 책의 추천 글이 꽤 인상적이었다.

 “안네의 일기에 비견되는 책”이라고 했던가?

 생각해보니 안네의 일기를 읽었던 건 아마 중학시절이었던 것 같다. 솔직히 당시에는 꽤 지루하고 별 재미없었는데, 이 참에 안네의 일기도 다시 한번 읽어볼까?


 내가 이 책을 산 건 아마 4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책도둑’이라는 제목이 꽤 독특하다고 느껴서 다른 책들을 살 때 같이 샀다.

 당시 어머니께서 먼저 이 책을 읽으셨고, “말 그대로 책 도둑에 대한 이야기야”라고 말씀하셨다. 읽어봐~라는 말씀과 함께...

 그런데 이상하게 책에 손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책은 책꽂이에서 4년을 묵었고, 며칠 전 문득 눈에 띄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유명한 책은 읽기 전부터 대충 어떤 내용인지 아는 경우가 많다. 이러면 사실 책을 읽으며 받게 되는 감정 변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는 이 책에 대한 사전 정보 하나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꽤 좋았다.


 책을 펼쳤는데 무척 혼란스러운 느낌이었다.

 몇 장 넘기고 보니 화자가 죽음의 신이었다. 무척 쿨하게, 세상을 관조하듯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죽음의 신이 들려주는 책을 훔치는 작은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소녀의 성장기를 담고 있다.

 전쟁의 가해자인 독일, 그 광기에 사로잡힌 전쟁 통에서 동생의 죽음을 목도한 소녀가 양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소녀가 훔친 작은 책은 어떤 의미였을까?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며 그렇게 살아남은 소녀의 남은 인생은 어떤 시간들일까?


 개인적으로 이 책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되는 건, 무척 낯선 표현이다.

 작가의 문장력, 그리고 그 문장을 제대로 번역한 역자...

 내가 책을 읽으며 밑줄 긋는 습관을 갖고 있지만, 소설에서 밑줄 그은 경우는 별로 없었는데, 이 책은 꽤 많은 부분에서 펜을 들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 몇 개 소개한다.


1권

56P

 한스 후버만이 졸린 눈으로 침대에 앉아 있는 동안 리젤은 그의 소매에 얼굴을 묻고 울며 그를 들이마셨다. 매일 새벽 두 시가 넘으면 리젤은 그의 냄새를 맡으며 다시 잠이 들었다. 죽은 담배, 수십 년간의 물감, 인간의 피부 냄새가 섞여 있었다. 

: ‘그를 들이마셨다’ 난 이 표현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숨을 쉬며 아빠를 들이마셨다고 표현할 만큼의 그 간절함...


128P

 그들은 창의 안개와 성에 너머로 분홍색 빛살들이 힘멜 거리 지붕에 쌓인 눈을 비추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 색깔 좀 봐라.” 아빠가 말했다. 그런 색깔을 알아볼 뿐 아니라 입으로 말하기까지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기는 힘든 일이었다.

: 지붕에 쌓이는 건 분홍색 빛살이었다.


2권

40P

 책도둑은 물러서지 않았다. 몇 걸음 더 걸어 식탁에 앉았다. 차가운 두 손이 소매를 더듬었다. 리젤의 입에서 문장이 하나 떨어졌다. “막스는 아직 안 죽었어요.” 단어들이 탁자에 떨어져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세 사람 모두 그 단어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반쪽짜리 희망은 감히 더 높이 올라가지 못했다.

: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입에서 떨어진 문장은 단어로 쪼개져서 탁자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단어들을 바라보는 사람, 높이 오르지 못하는 반쪽짜리 희망... 


72P

 그들은 프랑스인들이었고, 그들은 유대인들이었고, 그들은 바로 당신이었다.

: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독일인들에게 프랑스인들은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적군? 자신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힘? 유대인은?

 이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 아닐까?

 세상 누구도 절대적으로 가해자, 또는 피해자 만일 수는 없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나도 때로는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하는 가해자일 수도, 또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당하는 피해자일 수도 있다. 그게 바로 인간이다.


81P

 리젤은 나중에 지하실에서 자신의 삶에 관해 쓰면서 다시는 샴페인을 마시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결코 7월의 그 따뜻한 오후처럼 맛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 이 책의 문장 중에 정말 마음에 드는 표현... 따뜻한 오후처럼 맛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따뜻한 오후 같은 맛은 어떤 맛일까?


140P

 그는 가버렸다.

 리젤이 부엌으로 가자 엄마와 아빠가 몸을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얼굴은 절여진 채로 서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영원의 삼십 초 동안 서 있었다.

: 삼십 초, 무척 짧은 시간이다. 그 짧은 삼십 초의 영원함이라...


195P

 다른 사람들과 합류하자 한스는 바닥에 쓰러지더니 드러누웠다.

 “저 아래쪽은 어땠어?” 누가 물었다.

 아빠의 허파에는 하늘이 가득하다.

: 허파에 가득한 하늘... 이 문장이 무척 아팠다.


239P

1943년 1월 5일. 러시아였다. 이날도 얼어붙을 듯이 추웠다. 도시와 눈에는 어디를 가나 죽은 러시아인과 독일인이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앞의 백지에 대고 총을 쏘았다. 세 언어가 서로 엮였다. 러시아어, 총알, 독일어.

: 전쟁이라는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싶다. 총알... 사람의 목숨을 거두는 그 총알... 그 총알로 나누는 전쟁의 대화.


269p

 그럼에도 인간에게는 내가 부러워하는 것이 한 가지 있다. 인간은 다른 건 몰라도 죽기는 한다는 것. 그 정도의 양식은 있다는 것.

: 이 문장은 사신이 하는 말이다. 사신은 언제 어디서나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인간의 목숨을 가두어 간다. 그런 사신이 인간을 부러워한다. 죽기는 한다는 바로 그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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