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 사쓰지 / 김선영 / 문학동네
완전연애
지금까지 내가 읽은 추리소설은 보통 하나의 사건을 두고 그 사건을 풀어나가는 내용이 많았던 것 같다. 또는 사건을 저지르는 범죄자와 해결하는 해결자 사이의 두뇌싸움이던가...
따라서 추리소설은 장편이든 단편이든 상관없이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간 자체는 그리 길지 않다.
사건 현장, 수사, 추리, 범인체포 수순일 경우에는 불과 며칠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고, 조금 길다고 해봐야 몇 년 수준이다.
연쇄살인범 이야기를 하는 경우에는 그렇게 몇 년 정도 이야기를 하게 되기도 한다.
더불어 추리소설은 일단 꽤 충격적인 사건현장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참혹한 현장을 묘사하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밀실 사건이거나...
참혹한 현장을 묘사하는 책 중에서 최근 읽은 책은 일본 작가 아비코 다케마루가 쓴 ‘살육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이었다.
꽤나 잔혹한 묘사 때문인지, 그 내용 때문인지, 도서 중에서는 드물게 ‘19금’ 표시를 달고 있었고, 로그인을 해서 성인인증을 받지 못하면 책표지 이미지도 볼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대부분의 추리소설은 이러한 특징을 갖는다. 그런데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모든 것들을 다 피해가고 있다.
우선 이 책은 패전 직후의 일본이 무대가 되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쟁으로 고아가 된 혼조 기와무가 친척 집에서 기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그의 어릴 적 이야기들을 시간 순으로 나열한다. 비록 시골마을이 무대가 되지만,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의 패망, 그로 인한 혼란과 주둔미군과의 사이에서 패전국 국민이어서 갖게 되는 자괴감과 열등감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그 패전국민이라는 특징이 어쩌면 사건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혼조 기와무는 어린 시절 짝사랑하던 여자를 평생 잊지 못하고 독신으로 산다. 깜깜한 밤, 풋내나는 하룻밤을 보내고 사랑하던 여자는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해서 잘 산다.
먼 훗날 나기라 다다스라는 예명으로 화가로써 일본 전역에 명성을 떨치게 되는 그는 여전히 그렇게 살아간다.
이런저런 사건과 사고, 때로는 지루하고 소소한 삶의 끝에서 그는 일생을 마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법 그럴듯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추리소설을 조금이라도 관심있게 읽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반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반전이 마지막에 등장해주니까 나름대로 추리소설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분명 기존의 추리소설과는 전혀 다른 전개방식을 택했다.
한남자의 일대기를 담고 있고,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건들은 그다지 충격적이지 않다.
다 읽고 나니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완전범죄를 끝까지 들키지 않고 끝내는 범죄라고 본다면, 이 책의 제목인 완전연애는 내용과 잘 맞아 떨어진다.
그런데 연애라는 단어는 원래 혼자 하는 것이 아닌 둘이 함께 이루어 가는 사랑이라고 본다면 제목이 잘못된 것 아닐까?
혼자 하는 짝사랑은 아예 시작도 못한 연애일테니 말이다.
어쨌든 흔히 보는 짧고 굵은 호흡으로 긴박하게 달리는 추리소설, 오금이 저리고 긴장이 되어서 화장실에도 못 가고 빠져드는 것이 추리소설의 전형이라고 여겨왔던 나로서는 이렇게 길고 편한 호흡으로 한 남자의 일생, 그것도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사랑의 이야기를 추리소설이라는 관점으로 읽는 경험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