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변명
이혼 전, 나는 한 때 몸무게가 100Kg을 넘나들었다.
가벼운 교통사고 덕분에 종합검진을 받게 되었고, 당뇨 증세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깜짝 놀랐다. 몸이 무거워서 층계를 오르내리기에도 숨이 차기는 했지만 살이 쪘다는 사실 말고는 그다지 몸에 이상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었다.
의사는 내게 다른 병도 아니고 당뇨라고 한다. 그 끔찍하고 고치기도 힘들며 합병증 때문에 고생이 심하다는 병이 내게 찾아왔다고 말이다.
심한 건 아니고 ‘준당뇨’ 정도 수준이지만,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약을 처방해준다.
“당분간 이 약을 드시고 나서 다시 한 번 검사를 받으세요.”
무언가 하기는 해야겠으니 달리기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사실 나는 운동을 못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100M 달리기를 26초를 넘겨서 선생님의 경악하는 표정을 봐야 했고, 중학교 3학년 때의 체력장에서는 겨우 20초 안짝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고 3, 남들은 참석만 해도 20점 만점을 받는다는 대입 체력장 때는 정말 안간힘을 다 쓰고도 겨우 18점을 받았었다.
그런 내가 삼십 대 중반을 넘겨서 달리기를 시작한 것이다.
당시 나는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고 밤에 일을 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게 되면 생활리듬이 엉망이 될 것이 뻔했다.
결국 밤에 운동을 했다.
당시 내가 살던 집 근처에 안양천이 있었고 그 옆으로 달리기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위한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처음 달리기를 시작하던 날, 밤 열한 시에 운동복을 입고 안양천변으로 내려갔다. 무턱대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불과 100M도 못 가서 옆구리가 결리기 시작했다. 숨도 쉬기 어렵고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옆구리에서 통증이 전해져 왔다.
결국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아픈 게 나아진 모양이다.
다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의욕만 넘쳐서 속도 조절도 못하고 호흡이 잘못되어 그런 것 같았다.
일부러 체중계를 구입하지 않았다. 매일 체중계에 오르면서 신경을 쓰다 보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서였다.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릎 통증이었다. 100Kg에 육박하는 몸으로 달리기를 하려니 무릎에 전해지는 무게가 통증을 유발했던 것이다.
준비운동도 하고 걷기, 천천히 달리기를 병행하면서 내 몸에 맞는 속도와 팔을 휘젓는 정도, 보폭을 조절하며 맞추어 나가기 시작했다.
어쨌든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를 꾸준히 하다 보니 조금씩 더 멀리까지 달리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엔 500M도 제대로 못 뛰고 헐떡대는 수준이었는데 반년 정도 지나고 나니 매일 10Km 정도를 달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일 년이 지나고 확인해보니 체중이 90Kg 초반으로 떨어져 있었다. 남들은 두세 달 만에 일이십 킬로를 가뿐하게 뺀다는 데, 매일 달리기를 하면서도 이 정도밖에 빠지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어 짜증이 났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면서 어느덧 층계를 오르내리면서 숨이 차던 것도 사라지고 몸 이곳저곳에서 느껴지는 운동효과에 매료되어 달리기를 멈출 수 없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더 먼 거리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20Km를 달렸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3년째가 되면서 바지가 헐렁해지는 걸 느끼기 시작했고, 허리띠 구멍도 한 칸 두 칸씩 줄일 수 있었다.
단축마라톤에도 나가 보았다.
마라톤에 참여한 다른 사람들은 확실히 나와 차이가 있었다. 나야 적당히 혼자 알아서 달리기를 했지만 그들은 지역 동호회나 인터넷 모임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마라톤 연습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나보다 더 형편없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냥 가족단위로 걷기 위해 참석한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때의 경험은 나에게는 또 다른 자극이 되었다.
본격적으로 마라톤에 관심을 갖고 관련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아내와의 사이에 문제가 생겼고 이혼에 이르는 상황이 되었다.
당시 80Kg를 넘나드는 정도로 체중이 줄어 있었다.
아내와의 관계가 심각해지면서 달리기를 계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언제부터 달리기를 그만두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아내와 이혼을 하기로 결정하기 몇 달 전부터였던 것 같다.
그렇게 아내와 이혼을 하고, 이사를 한 후 한동안 운동을 할 수 없었다.
조금씩 생활에 익숙해지면서 운동을 계속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체중이 얼마나 불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마땅하게 달리기를 할 곳이 없다. 헬스클럽에도 다녀보았지만 실내에서 하는 운동이 영 답답하게 느껴지고 시간을 맞추기도 까다로워서 결국 그만두었다.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동네에 있는 야트막한 산에서 달리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가볍게 산책을 할 수 있게 정리되어있기 때문에 달리기를 하기에 크게 어려울 것 같지 않았다.
일주일 정도 짬짬이 등산로를 돌면서 거리를 재고 코스를 정했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체중을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달리기를 그만 둘 때와 비교를 해도 불과 1~2Kg 정도의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전혀 운동을 하지 못하고 두어 해가 지났는데 체중에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 신기했다. 꾸준히 매일 운동을 한 덕분인가 싶었다.
어쨌든 그렇게 다시 시작한 달리기를 일 년 정도 계속했다.
그러다가 딸아이가 수영을 배우겠다고 하는 바람에 나도 수영을 하기로 결심했다.
수영을 시작한 지 일 년 반 정도가 지났다.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나는 수영을 전혀 할 줄 몰랐었다.
지금은 폼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제법 잘 한다. 2주 전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자유형으로 얼마나 오래 할 수 있는지 확인을 했다.
대략 2Km 정도는 쉬지 않고 갈 수 있는 수준은 되는 것 같다.
체중도 70 중반 정도이니 이 정도면 엄청난 발전이다. 생각해보니 지금 딸아이의 몸무게가 30Kg 정도 된다.
결국 달리기를 처음 시작할 때의 내 몸에서 지금까지 아이 몸무게만큼 빠져나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운동을 쉽게 그만 둘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운동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얼까?’라는 생각을 해보니 단순하게 건강관리만을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아내와의 이혼이 있기 전에는 ‘당뇨’라는 협박 아닌 협박 때문에 엉겁결 에 시작한 운동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나름대로의 매력을 알게 된 것 같다.
지금도 운동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고 있기는 하지만 한 편으로는 무언가 몰두할만한 무언가를 스스로 찾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기왕에 몰두하는 것인데 술이나 도박이 아닌 운동에 몰두하게 된 것이 다행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