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아빤 꿈이 뭐야?

나를 위한 변명

by NoZam

지난 월요일, 딸 수민이를 수영장에 데려다 주기 위해 함께 집을 나섰다. 수민이는 나와 함께 외출을 할 때면 꼭 손을 잡는다.
주차장까지는 불과 50M도 안 되는 짧은 거리인데도 현관문을 나서자 내 손을 꼭 잡는다.

차에 올라타서 출발을 하는데 갑자기 수민이가 이렇게 묻는다.
“아빠, 아빠는 꿈이 뭐야?”
생각지도 않은 질문을 받으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응? 갑자기 그건 왜 물어?”
“그냥, 궁금해서...”

생각해보니 전에 수민이가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다.
그때 수민이는 불쑥 방문을 열고 들어와서 방학숙제라며 이렇게 물었었다.
“아빠, 꿈이 뭐야?”
난 단순하게 꿈이라는 단어의 뜻을 묻는 줄 알고 이렇게 대답했었다.
“꿈? 잘 때 꾸는 게 꿈이지. 또는 앞으로 무엇을 할 건가에 대한 계획도 꿈이고...”
“에이, 나도 꿈이 뭔지는 알지. 아빠 꿈이 뭐냐고?”
그때 나는 별 생각 없이 이렇게 대답했었다.
“돈 많이 버는 거. 돈 많이 벌어서 수민이랑 넓은 집으로 이사 가서 재미있게 사는 게 아빠 꿈이야.”
“돈 많이 버는 거? 그게 아빠 어렸을 때 꿈이었어?”
“아니, 어렸을 때는 다른 꿈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돈 많이 버는 게 꿈이야.”

수민이는 다시 물었다.
“그건 별로 재미없다. 그럼 아빠 어렸을 때 꿈은 뭔데?”
“아빠 어렸을 때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학교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어. 국어 선생님...”

2년이 지나서 수민이는 내게 같은 걸 묻고 있다.
“어? 가만, 너 옛날에 아빠한테 꿈이 뭐냐고 물었던 적 있는데?”
“내가? 언제?”
“일 학년 때, 겨울방학 숙제라면서 아빠 꿈이 뭐냐고 물었었잖아. 기억 안 나?”

기억이 가물가물한지 잘 모르겠단다. 그러면서 재차 묻는다.
“빨리 말해봐. 아빠 꿈이 뭔데?”
“어렸을 적에는 글을 쓰고 싶었거든. 소설이나 시 같은 거 써서 책을 내고 싶었어. 그리고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

수민이는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그럼 아빠 꿈은 이루어진 거나 마찬가지네?”
“응?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빠는 지금 대학교에서 학생도 가르치고 있고 글도 쓰고 있잖아.”
“글쎄,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정식으로 선생님이 된 건 아니니까 조금 다르지. 그리고 글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책이 나온 것도 아니고...”

나는 수민이의 꿈은 무어냐고 물었다.
“나? 옛날에는 그림 그리는 화가가 되거나, 아니면 선생님이 되고 싶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바꿨어.”
“꿈을 바꿨어? 뭐로 바꿨는데? 우리 수민이는 뭐가 되고 싶은데?”
“가수.”
“가수? 왜?”
“응, 화가가 되고 싶었을 때는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럼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거야?”
“응. 그런데 그림보다 노래가 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가수가 될 거야.”

즐거운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고 신나고, 슬픈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나기도 한단다. 그리고 언제나 사람들이 행복하고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단다.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그런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한다.
“왜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노래를 들어야만 행복해지는 건 아니잖아?”
“노래를 들어야만 행복해지는 건 아니지만, 슬프고 힘든 사람들도 있잖아. 그런 사람들한테 행복해질 수 있는 노래를 불러주면 좋겠어.”

수민이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유치원 다닐 때, 아빠랑 엄마랑 이혼했잖아. 그때 나 정말 슬펐거든.”
“수민아. 아빠랑 엄마 이혼할 때 생각나?”
“응, 다 생각나. 처음에 엄마가 외할머니 아프셔서 같이 있어야 된다고 하면서 갔었던 것도 생각나고, 나중에 아빠 없을 때 엄마가 집에 와서 옷이랑 화장품 가져갔던 것도 생각나.”
수민이는 그때 무척 슬펐다고 한다. 슬퍼서 눈물이 나려고 하면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불과 2년 전에 아빠의 꿈이 무엇인지 물었던 것은 까맣게 잊고 있는 수민이가 그보다 훨씬 오래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치원에서 배우는 노래도 슬픈 노래도 있고, 행복한 노래도 있거든. 난 행복한 노래만 불렀어.”

같은 반 친구가 며칠 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었단다. 다시 학교에 나오기 시작한 그 친구는 엄마 아빠가 이혼했다며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 친구가 불쌍해서 집에 데려와서 같이 놀면서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밝고 행복한 노래를 불렀더니 그 친구도 같이 즐거워했었단다.
“그래서 그 친구처럼 슬픈 일이 있는 사람들한테 행복한 노래를 불러주고 싶어.”

가슴이 먹먹한 느낌이었다.
그때 그 일들을 수민이는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 작은 가슴에 그때의 일들을 모두 담아두고 있었나 보다. 그리고 그 슬픔과 아픔을 이겨내는 방법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나 보다.

“수민아. 그럼 노래 연습도 많이 해야겠네.”
“할머니한테 행복한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공부 열심히 해야 된대. 가수 되는 건 되게 어려운 일인데, 공부도 제대로 못하면서 어떻게 가수가 될 수 있냐고 하는 거 있지.”
“할머니가 그러셨어?”
“응. 공부도 열심히 해야 나중에 가수 될 수 있대.”

수민이와 약속을 했다.
아빠는 더 열심히 글을 쓰고 노력해서 멋진 작가가 되기로 했다. 그래서 멋진 책이 나오면 제일 먼저 수민이한테 선물하겠다고 했다.
수민이는 공부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하고, 나중에 정말 행복한 노래만 부르는 가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한다.

차는 어느덧 수영장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문을 열고 폴짝 뛰어내린 수민이는 수영도 열심히, 재미있게 하겠다며 수영가방을 들고 뛰어간다.
“아빠, 안녕.”

어느덧 수민이의 뒷모습이 한 뼘은 넘게 훌쩍 자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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