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변명
아내와 이혼을 한 이후로 육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내 새끼손가락을 아프게 쥐고 서있던 유치원 꼬마 수민이는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렇게 해서 하나의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생긴다는 걸 의미한다.
치약을 끝부터 짜느냐 중간부터 짜느냐를 가지고도 부부싸움을 하고, 변기 커버를 올리느냐 마느냐로도 심각한 갈등을 겪게 되는 것도 부부가 거쳐야 할 단계이다.
이런 단계를 거치면서 서로에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고 한숨 돌리려고 하면 또 새로운 가족이 생기게 된다. 나를 쏙 빼닮은 딸아이가 새로운 가족으로 나타나는 그 순간, 부부 사이에는 또 다른 큰 변화를 맞게 된다.
그렇게 부부라는 이름은 계속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발전한다.
아내와 남편이라는 두 사람으로 이루어진 부부가 시간이 지나면서 구성원이 늘게 되고 가정이라는 더 큰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는 행복, 기쁨, 슬픔, 아픔... 이런 온갖 감정의 소용돌이가 범벅이 된다.
분명 가정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모든 지난한 과정을 고스란히 떠넘기고 유지해야 하는 것이 가정이라는 이름이다.
이 과정을 온전히 붙들고 가는 수많은 가정이 있는가 하면, 그 속에서 맞닥뜨리는 거대한 벽, 넘지 못할 파도 때문에 깨지는 가정 역시 절반이 된다고 한다.
나는 후자에 속한다.
내가 꾸렸던 부부, 가정이라는 이름은 이런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깨져버렸다.
사실 이혼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을 때에는 이혼 이후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하지 못했다. 분명 연애하다 헤어지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매일 매 순간이 아이에게는 아픔이었으며, 그 아픔에 상처를 입은 수민이의 가슴은 어느덧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이제 그 아픔이 단단한 딱지가 되고, 그 딱지의 크기만큼 커다랗고 보기 흉한 흉터가 아이의 가슴에 남아있다.
수민이는 수학을 잘 못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을 하자면 덧셈에 집중하지 못한다.
유치원에서 덧셈을 배우는 바로 그 시기에 엄마 아빠의 이혼을 겪었으며, 그로 인해 유치원에서 선생님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었다.
어느 날 수민이가 울면서 내게 말을 했다.
“아빠는 왜 엄마를 때렸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그런 말을 해?”
“내가 다 알아. 아빠가 엄마를 때려서 엄마랑 이혼한 거잖아!”
아마 유치원의 다른 아이가 그런 말을 했었나 보다.
자기 아빠가 엄마를 때려서 이혼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말은 어린 나이의 수민이에게 ‘이혼’이란 ‘아빠가 엄마를 때려서 벌어지는 사건’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 일 이후, 유치원에서 선생님께 야단을 맞으면서 꿀밤을 얻어맞게 된 수민이가 경기를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했고, 그 뒤로 수민이는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고 울며 호소를 했다. 결국 유치원을 옮겼고 그 사건은 그렇게 지나가는 일이 되었다.
하지만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서 수민이는 덧셈을 잘 못한다.
똑같은 더하기라고 해도 과자를 사거나, 놀이에서 하게 되는 더하기 셈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데 교과서에 등장하는 덧셈에서는 여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실수를 한다.
또한 수민이는 누군가에게 맞는 것을 싫어한다.
교실에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다가도 누군가가 때리면 그걸 참지 못한다. 그 순간에는 선생님마저도 수민이를 통제하지 못하신다고 한다.
요즘 수민이와 엄마 이야기를 자주 한다.
수민이는 내게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참 좋아한다.
가끔 잠 잘 때 엄마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곤 한다.
엄마와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는지, 수민이가 태어날 때는 어땠는지...
이런 걸 주욱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수민이의 잠든 숨소리가 들린다.
편한 모습으로 살짝 미소를 지은 수민이가 내 팔을 베고 쌕쌕거리며 잠든 모습은 참 예쁘다. 날 꼭 안고 잠들 때도 있어서 그럴 땐 수민이가 깨지 않게 조심하며 자리를 벗어나기도 한다.
어쩌다 엄마와 이혼하던 시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 보이는 수민이의 반응은 참 다양하다. 건성으로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듣기 싫어서 딴 짓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다가도 적당히 건너뛰려고 하면 왜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않느냐고 다시 해달라고 한다.
듣고 싶지 않고, 아프기도 하지만 그래도 진실을 알고 싶은 모양이다.
난 수민이에게 엄마 이야기를 하게 될 때는 최대한 자세하게 이야기해주려고 노력한다. 가급적이면 엄마에 대한 나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이에게 좋은 엄마, 나쁜 엄마란 없다. 아빠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간혹 엄마와 아빠가 싸운 이야기를 하게 될 때도 판단은 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려 노력한다.
아이에게 엄마와 아빠가 이혼하게 된 것을 이해시키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엄마와 아빠의 이혼이 수민이 때문이 아니며,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했지만 여전히 수민이는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알리려 애를 쓴다.
부부간의 일이라는 것이 남들이 보아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참 많다.
누가 보아도 뻔한 결과라며 손가락질을 하지만 막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수민이 엄마와의 이혼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다.
나는 객관적으로 나쁜 남편, 나쁜 아빠는 결코 아니었다.
외도를 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안에서 폭력을 행사한 적도 없고, 술을 많이 마시거나 가정을 등한시한 적도 없다.
오히려 휴일이면 집안일도 돕고, 가끔은 아내 대신 식사 준비도 했으며 수민이가 백일이 되던 시기부터 한동안 아이의 목욕은 내가 전담해왔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목욕과 전신 마사지까지 한 시간을 넘게 해주었었다.
경제적으로 힘들기는 했지만 그 어려움을 견디기 위해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일을 했었다. 한참 힘들 때 나는 하루에 평균 두 시간도 채 안 되는 수면으로 버티면서 일주일에 40시간의 대학 강의를 했었고 밤에는 대리운전까지 했었다.
아내와 이혼을 결정한 직후, 주위에서 듣는 반응은 비슷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민이 아빠가 왜 이혼을 해?”
“남자가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뭣 때문에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래?”
“애한테도 잘 하잖아?”
아마 아내의 주변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물었으리라.
이처럼 정숙하고 착한 아내, 대화도 잘 통하고 성격도 꼼꼼한 아내, 무엇 하나 허투루 쓰지 않고 남편 챙기는 아내...
뭐가 모자라서 이혼을 하느냐고...
이혼을 하고 나서 수없이 많은 생각을 했었다.
그때, 내가 어떤 말을 했으면 달라졌을까?
조금만 더 아내의 말을 들어주었더라면 아직 잘 살고 있지 않을까?
그 날, 아내가 술 마시고 펑펑 울던 그 밤에 곁에 앉아서 이야기를 들어주었더라면?
화를 내고 나가는 게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며 안아주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묻지만, 대답할 수 없는 물음들이 제법 높은 탑이 되어 버렸다.
시간이 지나면 이전엔 볼 수 없는 것들이 보이게 된다.
이제는 아프거나 슬프지 않게 그때의 일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아직도 그 시간 언저리를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이 먹먹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을 만큼 무뎌진 것 같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낫는 것이 아니다. 단지 새살로 덮어버렸을 뿐이며 그 새살을 걷어내면 상처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있는 것이다.
어쩌면 아프거나 슬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 통증에 익숙해져서 그냥 견뎌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수민이가 엄마를 만날 때 데리고 가면 예전처럼 말 한 마디 없이 아이만 건네주고 오지는 않는다.
“잘 지내?”
“건강하지?”
“수민이가 수영하는 것 보여주고 싶대.”
“좀 늦어도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와.”
이젠 짧은 대화 정도는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는 된 것이다.
어쩌면 그런 대화를 나누어도 서로 담담할 수 있을 정도로 냉정해진 것일 수도 있겠다.
이혼한 아내와 아이의 공부, 취미, 또는 감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직 나는 아내와 이런 부분에 대한 대화를 해보지 못했다.
아주 가끔 메일을 보낼 뿐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내 안의 상처가 좀 더 익숙해지고, 그 통증에 약간 더 무뎌지게 되면...
내 아내였던 여자가 아니라 내 아이의 엄마로 온전하게 마주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되면...
편하게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
그 날이 조금만 빨리 당겨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돌릴 수 없지만, 커가는 수민이 안에서 엄마의 모습이 더 지워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