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변명
“여기야.”
“응, 오랜만이다.”
대학로 끝자락에 넓게 자리 잡은 실내포장마차에서 성희아빠를 만났다.
겨울도 끝나 가는데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언제 내려가?”
“내일 아침에 내려가야지.”
“성희는 좀 어때?”
“뭐, 그렇지. 그게 뭐 하루 이틀 사이에 달라지는 병도 아니고...”
성희는 내 딸 수민이보다 한 살 더 먹은 예쁜 아이다. 성희에게 소아백혈병이라는 진단이 내려진 건 갓 돌을 넘긴 직후였다고 한다.
부산에서 동네슈퍼를 운영하는 성희아빠는 한 달에 한 번씩 성희를 만나러 서울에 올라온다.
서울에 온다고는 해도 나나 이 친구나 서로 바쁘다 보니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
소주와 김치찌개를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야, 너한테 정말 미안한 거 하나만 물어보자.”
“미안한 거? 물어보는 데 미안할 게 뭐 있어? 말 해.”
“이혼하니까 살만 하냐?”
“그게 무슨 소리야. 뜬금없이? 이혼하니까 살만 하냐고 묻는 건 뭐야?”
“오늘 성희엄마하고 이혼 이야기하고 왔어.”
“애한테 신경 써야 할 사람들이 왜 이래?”
“알잖아. 성희 치료하는 데 돈 다 들어가는 거...”
“그게 이혼하는 것 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데?”
“가정이 어려우면 나라에서 아이 치료비 보조금이 나오는 게 있어. 그걸 좀 받을까 싶어서 알아봤거든.”
성희의 병을 치료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성희를 임신하기 전에 고생을 하면서 돈을 모아서 작은 아파트 한 채를 마련했던 이 친구는 성희가 병에 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파트를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몇 년 지나면서 남은 것이라고는 생활비며 병원비 마련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갖고 있는 슈퍼 하나뿐이다. 그나마 동네에 대형 할인매장이 들어서서 파리만 날리고 있는 신세다.
“그 보조금을 받으려고 상담을 했는데 담당 직원이 ‘정상적인 부부에 직업이 있으면 보조금 나오기 힘듭니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주더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럼 그 보조금 받으려면 이혼을 하거나 직장 때려 치우기라도 해야 한다는 거야?”
“직장 때려 치우는 걸로는 안 된대. 이혼하고 성희 부양을 성희엄마가 하는 걸로 정리해야 보조금이 나온다나 봐.”
“그럼, 지금 보조금 받고 있는 사람들은 죄다 이혼했단 말이야?”
“거의 그렇대. 병원에서 다른 환자 부모들한테 물어봤는데, 애초부터 정부지원받아야 하는 극빈자 가정도 이 병원비 보조금 받기 어렵다고 하더라고.”
성희아빠는 성희 병원비 때문에 담배를 끊었다. 술도 오늘처럼 어쩌다 자리가 마련되면 한두 잔 마실 뿐,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나 담배 한 대 주라.”
“그래서 성희엄마는 그 보조금이라도 받으면 덜 힘드니까 이혼을 해서라도 보조금 받자고 하고, 나는 다른 건 몰라도 이혼은 안 된다고 하고 있는 거지.
‘내가 돈 더 많이 벌어서 부쳐줄게.’라고 하고 싶은데, 알다시피 요즘 경기가 워낙 안 좋으니까 내가 몇 시간 더 문 열고 있다고 해서 그만큼 돈 벌리는 것도 아니고... “
언젠가 이 친구와 함께 활동하는 동호회에서 성희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고 십시일반 모금운동을 했었다. 자잘하게 중고물품 거래를 하면서 일정 금액을 떼어서 적립하기도 하고, 회원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신문에 알려지면서 조금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그래 봤자 결국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한 수준이다.
“어떻게 하기로 했어?”
“뭘 어떻게 해? 이혼하자, 안 된다 하다가 결론도 없이 끝났지.”
“그래서 얼굴 보자마자, 이혼하니 살만하냐고 묻는 거냐?”
“미안하다.”
“됐어. 그나저나 어쩌냐?”
“솔직히 나도 그 보조금이 탐나기는 해. 지금 우리 입장에서는 그 돈이면 정말 큰 돈이거든. 그리고 다른 환자 부모들도 보조금 때문에 결국 이혼했다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법적으로 이혼한다고 해서 무조건 갈라서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지.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냐.”
“그럼, 뭐가 문젠데?”
“너도 알다시피, 나나 성희엄마나 성희 아프기 시작한 후로는 사실 아이 치료하는데 신경 쓰느라 제대로 부부관계도 없었거든. 솔직히 남들 같으면 부부싸움을 할 정도의 문제가 생겨도 그런 거에 신경도 못 써. 말다툼 조금 하다가도 성희가 땀이라도 조금 흐르면 그냥 끝이고, 부부싸움 같은 거 할 기력도 없어.”
성희아빠는 담배를 또 한 대 물었다.
“그러다 보니까 이제는 부부가 맞기는 한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나 부산 내려가서 가게 지키면서 생각해보면 내가 성희엄마 무척 사랑하거든.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한 것도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고, 그런 말을 건네는 것조차 사치인 것 같아.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잖아. 더 큰 문제는 그거야.
내가 아무리 성희엄마 사랑한다고 해도 나는 부산에서 돈 벌어야 하고……. 성희엄마가 성희랑 서울에서 병원 생활을 하는 게 벌써 팔 년이 넘었거든.
내가 아무리 자주 올라오고 싶어도 한 달에 한 번이나 올라올까, 그 이상은 힘들어.
성희엄마는 부산은커녕 자기 집에도 못 가고 저러고 있잖아.
아마 우리 성희 병원비 보조금 때문에 이혼하게 되면 처음엔 몰라도 시간 지나면 정말 그걸로 끝날지도 몰라.
내가 내 입으로 우리 성희 안 좋은 소리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만에 하나 성희 잘못되면 우리는 그냥 남이 되는 거거든.
그래서 나는 이혼하지 못 하겠다고 하는 거고……. “
“성희엄마하고 그 문제로 이야기해봤어?”
“아이가 저러고 있는데 속 편하게 그런 말이나 한다고 하지.”
창밖을 보니 아까부터 내리던 눈이 제법 쌓였다.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내 이혼 경험?
혼자 살면서 느끼는 것들?
사실 이 친구는 법적으로야 이혼을 하지 않았지만 사는 걸 보면 나보다 더 이혼한 남자 같아 보인다. 사는 것도 나나 이 친구나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아이와 함께 산다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더 나은 걸까?
난 이 친구를 볼 때마다 미안함을 느낀다.
심지어 양쪽 집안에서도 그만 포기하라던 아이를 살리겠다고 부부가 몇 년째 고생을 하고 있다. 엔간한 대기업 연봉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병원비 때문에 살림이 거덜나고 부부가 남이 되어 살면서도 여전히 성희의 그 가느다란 삶의 끈을 포기하지 않고 산다.
그러면서도 부부의 연을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이 친구는 분명 그만큼 더 힘든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이혼이라는 선택이 쉬운 결정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이 친구를 보면서 ‘과연 부부라는 이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토록 처절하게 아파했었나?’라고 돌이켜 보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다.
이혼이라는 선택이 정말 그토록 어려운 것이었을까?
나에게 이혼이 그처럼 아픈 선택이었을까?
성희는 수민이보다 한 살 더 많다.
성희는 수민이보다 키가 한 뼘은 더 작다.
성희는 수민이보다 몸무게가 10Kg 이상 덜 나간다.
성희는 수민이만큼 말을 잘 하지도 못 하고, 아직도 한글을 잘 모른다.
성희는 아직도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 했다. 그래서 성희는 친구가 없다.
수민이는 성희 곁에 있는 엄마를 참 부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