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온톨로지- 사랑에 관한 차가운 탐구
조중걸 (지은이) | 세종서적 | 2015-09-30
“올 가을엔 책을 읽어야지!”
이런 마음으로 열 권 정도의 책을 주문했다. 그중 절반 가까이 읽은 것 같다.
그러던 중, 페이스북에서 책에 대한 소개 글을 보게 됐다.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적극 추천한 책이 바로 러브 온톨로지!
이 친구의 책에 대한 안목이 꽤 높다고 생각하고 있던 지라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보통 책을 살 땐 몇 권 한꺼번에 주문하는 편인데 이번엔 달랑 한 권만 주문했다. 적립금 더하고 했더니 택배비 수준으로 살 수 있었다는 건 아주 기분 좋은 일...
별로 분량도 많지 않은데 거창하게 하드커버로 되어 있다.
적포도주(?) 색 표지에 흰색으로 제목이 박혀 있는, 아주 깔끔한 디자인이 오히려 눈길을 끈다.
얼마 전에 읽기 시작한 책, “영원의 철학”은 일단 중지!
당연한 것 아닌가? 영원이고 철학이고 간에 사랑이 먼저!
책을 펼쳤다.
어?
이거 사랑에 대한 책이 아닌데?
뭔가 사기당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읽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먼저 밑줄을 그은 문구는 “그렇다. 우리의 언어는 우리를 기만한다. 실체 없는 말들이 팽배하다.”였다.
이 문구에서 오래전에 읽었던 “최초의 언어를 찾아서”라는 책을 떠올렸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 중에서 가장 중요하지만 전혀 흔적이 남지 않는 것은? ‘말’이다. 글, 그림... 이런 모든 것들은 흔적을 남긴다. 기록이 가능하다. 하지만 말은 그렇지 않다. 입에서 나와서 누군가에게 들리는 순간에 그 생명은 끝난다. 물론 현대 기술은 녹음이라는 방법으로 말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지만...
바로 다음 페이지에서 또 한 번 밑줄을 그었다.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먼저 사랑을 정의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하다. 비실증적인 것은 정의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랑은 “침묵 속에 지나쳐야 할 것”이었다. 말로 설명이 되지 않고, 어떤 것이라고 정확하게 손가락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이 책을 읽으면서 사실 많이 놀랐다.
우선 사랑에 대해 이렇게나 냉정하게 “사랑? 그게 눈에 보여? 손에 잡혀? 아니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 말을 하면 할수록 사랑이 뭔지도 모른다는 밑바닥만 드러내는 거야.”라고 지적을 한다는 것부터...
저자 소개를 보니 서양 예술사와 수리철학을 전공했고, 관련 책을 몇 권 집필했다는 간단한 설명만 나온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봐도 책만 몇 권 소개될 뿐이다.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그거야 언제고 기회가 될 때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보면 될 것이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이 책의 부제인 “사랑에 관한 차가운 탐구”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책에서는 사랑은 부질없고 쓸 데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그건 아니다.
이 책의 마지막 장 마지막 문단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그러나 사랑은 거기에 있다. 우리는 아마도 이 사랑에 대한 추구 가운데 죽을 것이다. 무엇도 좋다. 그러나 사랑을 구하는 나, 사랑의 노력 가운데 죽는 것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사랑이 무엇이든, 우리는 이 사랑을 추구하다가 죽을 것이다. 사랑의 완성은 이루지 못할지라도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노력하다가 숨을 거둔다. 멋지지 않은가?
언젠가 보았던 TV 프로그램 “비밀 독서단”에서 사회자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홀로 사는 칠순의 할머니가 팔순의 할아버지와 연애를 시작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의 친구들이 이렇게 물었단다. “잘 걸어?”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 누구에게나 있다. 세상 어디에도 사랑은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랑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원하고 갈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인지 안다는 건 궁금해할 것은 없다는 말이고, 그렇다면 더 이상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는 말이다.
세 살 꼬마부터 여든 노인까지, 아니 마지막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사랑을 찾고 노력하다가 죽는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사랑에 관한 아주 좋은 책이다. LOVE ONTOLO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