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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Aug 18. 2016

일루리사트의 아이들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그린란드 8


일루리사트의 나영이와 현주


‘일루리사트’(Illulisaat)는 이누이트 말로 '빙산'이라는 뜻이다. 일루리사트는 인구 4,500명 정도밖에 안되지만 그린란드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또한 이곳은 그린란드 대자연의 모습을 가장 잘 볼수 있는 곳이기에 매력적인 곳이다. 일루리사트는 북위 70도에 위치해 있어 일반 관광객이 찾아 길수 있는 북극권 위도상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이곳에서 반년은 전부 낮이고, 반년은 전부 밤인 독특한 체험을 할수 있다. 


유네스코는 2004년에 일루리사트와 맞은편에 있는 디스코 베이 섬 일대의 아이스 피요르드를 세계 자연유산으로 지정하였다. 이 부근 아이스 피요르드에서 생성되는 빙산들이 일 년 내내 북극에 떠다니는 부빙들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이곳에서는 언제나 빙산을 볼수 있다. 그뿐 아니라 일루리사트에서 이미 3,500년 전의 것으로 추측되는 고고학 유적들을 발굴해 고대 사칵(Saqqaq) 부족과 도셋(Dorset) 부족이 거주하던 지역으로서 유서 깊은 도시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위 사진 중 우측이 우체국 건물, 이곳에서 필요시 핸드폰 심카드를 구입하면 된다. 참고로 그린란드에서는 그린란드 심카드 이외의 것은 사용을 할수 없다. 필자는 이미 누크에서 심카드를 구입해 사용중인데 구입 지역을 벗어나도 그린란드내에서 사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혹시라도 그린란드에 ‘에스키모’가 ‘이글루’를 지어놓고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찾아온다면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런 장면은 지금은 어디에서도 볼수가 없다. 대부분 우리와 같은 문명화된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1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5천 불 정도 더 많은 편이다. 물론 예전에는 ‘북극의 나누크’에서 보았던 원시적인 삶을 살며, 고래나 물개, 바다표범 등을 사냥하며 어렵게 지냈음에 틀림이 없을 테지만 지금은 풍부한 수자원 덕분에 문명화된 생활을 하고 있다. 


집들은 형형색색 거의 대부분 원색으로 치장을 했다. 북극지방 겨울날 해도 없는 계절에 칙칙한 색깔보다는 역시 원색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도로는 모두 얼어붙었지만 눈은 잘 치워놓았다. 어느집은 빨래를 내다 걸어놓기도 했는데 얼어붙지 않을까라는 기우와는 달리 잘 마르고 있다. 게스트하우스부터 바닷가까지 거의 3~40분을 걸어왔는데 드디어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난 나영이와 현주가 좋아...^^


문득 꼬마들이 곁을 지나간다. 우리네 나영이와 현주랑 똑같이 생겼다. 그 아이들에게 문득 장난을 치고 싶어 졌다. 그냥 옆집 아이들에게 대하듯 한국말로 그렇게 말을 걸어보았다. 당연히 낯선 사람이 하는 말이니 알아들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런데 방긋방긋 웃는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 안 하고 옆집 아저씨가 왜 오늘은 다른 나라말을 하는 거지라는 표정이다. 재미있다. 놀리는 게 재미있는 게 아니라 서로가 ‘우리 동네’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듯해서란 말이다.


어디로 가면 빙하를 잘 볼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아이들에게 물어보지만 내 표정만 유심히 살펴볼 뿐이다. 하는 수없이 꽁꽁 언 길바닥에 대충 빙하를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올 때 승무원 아가씨가 준 사탕을 모두 꺼내 주었다. 아이들은 웃으며 반색을 한다. 사탕을 받아 든 아이들이 따라오라는 시늉을 한다. 알아들은 건지 이리저리 앞장서 간다. 그 뒤를 졸졸 따라가는데 금방 바닷가가 나오고 멀리 거대한 빙산이 눈앞에 나타난다.


섬이 아니라 빙하...

그래 저거야 라고 생각을 하는데, 커도 너무 크다는 생각이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여름철에는 이곳 앞바다가 온통 빙하와 유빙들로 가득해 배들이 다니기가 버거울 정도라고 한다. 아직 한 여름까지 좀 이른 편이라 바다는 얼음 조각들이 떠다닐 뿐 거대한 빙산의 모습은 그리 흔하지 않은 듯했다.


빙하는 원칙적으로 크기가 5m 이상 되어야 한다. 일루리사트 앞바다에는 전 세계 빙하의 1/10 정도가 떠다닌다. 1912년 4월 15일에 발생한 타이타닉호의 좌초도 이곳 빙하가 떠내려가 타이타닉호와 충돌한 것이라고 한다. 거대한 빙하는 이곳 북위 70도 정도에서 출발해 북위 40도 정도까지 떠내려가야 완전히 녹는다고 한다.(*북위 40도는 스페인의 마요르카 섬 바로 북쪽을 지난다.) 영국을 출발해 미국 뉴욕항으로 향하던 타이타닉호가 침몰한 지점의 위도를 확인하니 북위 41도 43.5부, 뉴욕이 멀지 않은 곳이다. 얼마나 큰 빙산이었길래 녹지 않고 거기까지 떠내려갔단 말인가. 


넓은 섬처럼 생긴 빙하가... 


일루리사트 앞바다에는 크고 작은 빙하들과 유빙들이 떠다니고 있다.


여하튼, 그린란드 어업의 대부분이 이곳 일루리사트에서 이루어지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일루리사트 인근에서 빙하가 녹으면서 그 안에 얼어있던 미네랄 등 풍부한 먹이가 각종 물고기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빙하를 바라보며 얼마를 그렇게 바닷가에서 서성이다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는 손님 하나 없이 나 혼자이니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오늘 저녁 메뉴는 누크에서 장을 봐온 게 있으니 그걸로 해결한다. 세드나가 준 선물, 바로 물개 스테이크, 약간 비릿한 생선 냄새 같은 게 나지만 육감은 소고기와 비슷해 마늘과 허브 잔뜩 넣고 냄새만 잘 제거해 요리를 하면 거의 안심 스테이크와 비슷하다. 


오랜만에 여행 중에 요리 아닌 요리를 하니 그것도 재미있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일일이 사 먹으면서 여행을 하는 건 비용도 문제지만 식감 떨어지는 일이다. 가능하다면 간단하게라도 현지 재료를 가지고 직접 해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숙소로 게스트하우스를 정하는 건 음식도 해 먹으며 낯선이들을 만나기에 적당한 장소라는 생각이 든다.


게스트하우스 침실에서 내다본 한밤중의 창밖 풍경과 아침에 내다본 풍경 


한밤중인데도 하늘이 허옇다. 4월 중순이 지나면서 어느새 캄캄한 밤은 이제 이곳에서는 당분간 없을듯하다. 4월 15일이 지나면서 백야가 시작된 거나 마찬가지인 듯하다. 불을 켜지 않고도 방안의 사물을 식별할 정도이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도 누구인지 알 정도이니 북극의 밤이 신기하기만 하다. 멀리서 썰매개 짖는 소리도 울려 퍼지고 있다. 일루리사트의 밤은 그렇게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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