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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Aug 16. 2016

북극의 나누크를 찾아서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그린란드  7


일루리사트로 가는 길


엄청난 눈과 한밤의 아파트 열쇠 소동, 그린란드의 신화와 역사까지 며칠간 머문 누크는 참 많은 걸 내게 보여 주었다. 낯선 이방인이면서도 현지인들과 비슷한 외모 덕분에 아무도 나를 낯설게 보지 않으니 여행하며 이리 편해보긴 또 처음인 듯 싶다. 어릴 적 입양온 누크의 코리안, 그녀와의 데이트 역시 평생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더욱이 그녀가 자신의 한국 이름 조차 모른다기에 즉석에서 그녀에게, 그리고 그녀 남편에게 한국말 이름을 지어주었으니 두고두고 잊을수 없을 것이다.

 

아름답고 씩씩한 그녀에게는 ‘순이’라는 이름을, 자상하고 복스런 그녀의 남편에게는 ‘복남이’라고 지어주었다. 이 이름이 가장 한국적이고 예쁜 이름이라고 말해주니 그녀는 ‘수니’, ‘수니’라고 되뇌며 자신의 한국말 이름을 불러본다. 공연히 그 모습을 바라보는데 가슴이 징한게 억장을 짓누른다.


이제는 그린란드 내륙으로 들어간다. 누크에서 보낸 며칠이 참 오래전 일처럼 생각이 든다. 낯선 곳일수록 호기심이 더 많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린란드 내에서 비행기가 일주일에 두 번밖에 안뜨기 때문에 비행기 일정을 잘 맞추지 않으면 여행은 힘들어진다. 누크에서 좀 더 많은 시간들을 보내고 싶지만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그 옛날 플레허티 감독이 마치 ‘북극의 나누크’를 촬영하기 위해 이누이트들과 생활하며 힘든 시간을 감내했던 것처럼 나도 이제 북극의 ‘나누크’들을 찾아간다.



원래 계획은 누크에서  일루리사트(Illulisaat)로 가는 유람선을 타려고 했는데 여름 시기인 5월 중순 이후에나 유람선 관광이 시작된다고 하기에 이번에는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유람선 여행을 하자고 스스로 다짐한다. 누크에서 일루리사트로 가는 유람선을 이용한다면 바다 위를 떠도는 유빙과 빙산들을 보면서 노을 지는 북극해를 즐길수 있을 것 같아 날씨만 좋다면 정말 멋진 그림을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누크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일루리사트로 향한다. 그린란드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일루리사트는 그린란드 중부에 위치해 사람이 살기에 가장 북단에 위치한 도시이다. 물론 더 북단에 위치한 곳도 있지만 거의 인적이 드물고 군사기지로 쓰일 정도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그린란드는 묘한 느낌을 준다. 보이는 곳은 온통 하얗다. 눈이 부시다. 아이슬란드에서 처음 그린란드로 들어올 때 보았던 바로 그 빙하와 만년설을 또다시 본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내륙 빙하들이 군데군데 녹아서 호수를 이루고 있다. 강물처럼 흐르는 곳도 있고, 바다인 줄 알았던 곳이 바다가 아니라 거대한 호수이다. 자세히 볼수록 놀라움과 함께 그 흔한 논쟁거리인 ‘지구온난화’라는 문제가 서서히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바다에 떠도는 빙산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과연 저 빙하들이 다 녹아내린다면, 지구 수면이 6~7m가량 올라간다고 하는데 난리도 보통 난리가 아니겠다. 분명 저 아래는 지금 영하 2~30도는 될 텐데 따스한 봄날처럼 빙하 녹은 물들이 고여있고 얼지 않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만 하다.


빙하가 녹은 물인 해빙수는 빙하 표면에서 호수와 강을 형성하게 된다. 이 해빙수 중 일부가 빙하 속으로 들어가 지하수처럼 흐르게 되면서 지하호수를 형성하는데 이때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게 되면 지표면에 작은 틈새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그 틈새 사이로 빙하수가 급속하게 빠져나가게 된다. 그리고 지하 호수가 있던 자리에는 거대한 빈 공간만 남게 되는데, 남은 공간이 빙하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게 되면 지반이 가라앉듯 빙하가 주저앉으면서 표면에 독특한 모양의 크레이터를 만든다. 그런 크레이터가 네이쳐지에 보고된 게 한 두 개가 아니라고 한다. 크레이터는 그린란드 내륙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다는 결정적 증거인 셈이기에 중요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중간 기착지인 캥걸루수와크(Kangerlussuaq)에 도착한다. 여기서 한 시간 조금 더 머물다 간다. 이 공항은 덴마크나 아이슬란드에서 비행기를 타고 들어와 그린란드 내륙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중간 기착지이다. 도시 인구는 300여 명 정도, 공항 관계자만 상주하고 있는 셈이다.


잠시 후 비행기는 또다시 일루리사트로 출발한다. 그런데 날씨가 점점 안 좋아진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시야가 어두워진다. 해안선을 따라 비행기가 북상 중이기에 바다에 떠다니는 유빙들을 볼수 있다. 가끔씩 얼음조각인지 빙산인지 꽤나 많은 조각들이 바다를 덮고 있는 장면도 보인다. 구름이 잔뜩 끼기 시작해 사진 촬영이 힘들다. 처음 보는 장관에 셔터를 눌러대지만 잘 나올 리가 없다. 그래도 나올 거라고 스스로 주문을 걸면서 열심히 셔터를 눌러 댄다. 




드디어 일루리사트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목적지 오콰아트수트(Oqaatsut)에 있는 호텔 주인장 올레(Ole)에게 전화를 한다. 전화를 안 받는다. 하는수 없이 일단 도착했으니 빨리 오라고 문자를 날리고 공항에서 기다린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전화벨이 울리고 반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일루리사트 도착을 환영하고 10분만 기다리면 오겠단다. 10분은 커녕 5분도 안되어 나타난다.


올레의 차를 타고 일루리사트 시내로 간다. 원래 열흘 전 계획대로라면 일루리사트에서 며칠을 머물고 그다음에 오콰아트수트로 가려고 했지만 지난번 그린란드 항공이 아이슬란드에서 그린란드 누크로 오는 비행을 취소하는 바람에 모든 일정을 수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일루리사트에 예약했던 호텔까지 모두 취소하는 바람에 일루리사트는 나중에 날을 잡아 천천히 둘러보기로 하고 곧장 목적지인 오콰아트수트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올레는 내게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말을 건넨다. 사실 지금 오콰아트수트로 갈수가 없단다. 배도 바다도 몽땅 얼어붙어 있고 타고 갈 배도 없어 갈수가 없다고 양해를 구한다. 대신 내일 아침이면 모든 준비가 될 테니 하루를 일루리사트에서 묵고 내일 가란다. 순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년석말을 믿고 따르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마지못한 표정으로 오케이를 내뱉고 속으로는 어차피 일루리사트도 둘러보아야 할 테니 오늘은 이곳에서 묶는 게 차라리 잘된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오콰아트수트는 여름을 제외하고는 일 년 내내 거의 찾는 사람이 없는 아주 작은 오지마을(주민수 29명)이다. 그래서 그곳에 가려면 미리 예약을 해서 모터보트를 준비하고 오콰아트수트 포구까지 작은 배가 갈수 있도록 꽁꽁 언 바닷길을 쇄빙선이 열어놔야 한다고 한다. 내일 아침이면 모든 준비작업이 마쳐지기를 기대하며 숙소로 향했다. 잠시 후 그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영하 15도 정도 되는 날씨라 다소 춥지만 실내에 들어오니 생각보다 따스했다. 


올레는 내일 아침 10시에 나를 데리러 오기로 하고 돌아간다. 숙박객이 전무한 곳에 홀로 남겨진 나는 짐을 풀고 잠시 후 시내 구경을 나선다. 이미 누크라는 도시에 익숙해서인지 일루리사트 건축물들의 화사함이 낯설지가 않다. 눈 덮인 거리, 알록달록한 주택들, 간혹 빨래를 내건 집들도 보인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인데 이 추운 날씨에 빨래가 마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 바람이 불어대니 마르겠지라는 생각이 드는데, 문득 역시 사람들 사는 게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지 늑대울음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가만 듣다 보니 늑대가 아니라 썰매개 울음소리였다. 누크에서는 보지 못했던 썰매개들이었는데 북극권 65도 이상에서만 기를수 있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종자 보존을 위해 기후조건과 지형적 조건을 고려한 것일지 모르겠다. 가까이에서 본 썰매개는 늑대와 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 보았던 크고 잘생긴 말라뮤트나 시베리안허스키같은 종자는 이곳에 없다. 그런 녀석은 캐나다나 알래스카 같은 곳에 있는가 보다. 아무튼 늑대울음 같은 굉음을 쏟아내고 있는 세드나의 남편일지도 모를 썰매개들의 소리를 들으며 북극의 도시 일루리사트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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