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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Aug 19. 2016

그린란드 오지마을 오콰아트수트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그린란드  9


그린란드의 오지마을 오콰아트수트로


드디어 꿈에 그리던 오콰아트수트(Oqaatsut)로 간다. 그린란드 비행기가 취소되면서부터 그린란드 여행을 포기하려던 생각까지 모두가 가물가물해진다. 기분 좋은 건망증이랄까? 날씨도 쾌청하다. 다만 바람이 많이 분다. 모터보트는 바람을 막기 위해 운전석 위를 온통 두꺼운 천으로 감싸 놓았다. 고개를 밖으로 내밀고 사진을 찍고 싶은데 가림막 때문에 불가능하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한 상태에서 작은 창틈 사이로 바다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뱃길이 부디 순조로워야 할 텐데 다소 긴장이 된다.


일루리사트 포구


아침 10시 정각 올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동료를 보내 일루리사트 포구까지 나를 데려다준다. 잠시 후 나를 태우고 갈 모터보트가 나타나 짐을 싣고 바닷길로 서서히 나간다. 근처에는 유빙들이 많아 이런 작은 모터보트는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얼어붙은 바다는 이미 쇄빙선이 열어놓았는지 얼음 조각 같은 것들이 널브러져 떠다닌다. 내가 탄 배는 마치 나룻배처럼 흔들리면서 천천히 포구를 벗어나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바닷길을 향해 나간다. 유빙이 적은 바다로 나간 다음 모터보트는 그제야 속력을 내기 시작한다.


아직 빙산이 그다지 많이 보이지는 않지만 날이 조금 더 풀리고 한여름이 되면 이 근처 바다는 온통 빙산들로 넘쳐날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간간히 보이는 유빙들 역시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일루리사트로 올 때 하늘길에서 내려다본 인근 바다의 유빙 조각들이 보여준 멋진 작품 ‘컴퍼지션’은 아쉽게도 여기서는 볼수가 없다. 아마 좀 더 먼 바다로 나가야 할 듯하다.



세드나의 손가락이 잘려서 물개가 되고 또다시 손가락이 잘려 바다표범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손목이 잘려 고래가 되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세드나의 분신들이 오늘도 저 바닷속 깊은 곳에서 유영하며 세드나의 궁전, 아들리분(Adlivun: 바닷속 깊은 곳에 위치한 악령들이 사는 곳)을 지키고 있을 터, 그 누구도 세드나의 심기를 거슬려서는 안 된다. 나쁜 마음은 물론 지나친 욕심까지도 말이다. 자칫하다가는 아들리분으로 끌려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바다는 다행히 얌전하다. 바람이 약간 불지만 파도는 별로 없다. 유빙들도 자태를 뽐내며 얌전히 내게 인사를 보낸다. 파도가 심술궂은 날은 유빙들이 춤을 추며 항해를 방해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누이트들은 세드나의 노여움을 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세드나의 뜻을 구태여 거스르면서까지 무엇을 해야 한다면 그건 생사를 가름하는 일이 될 것이다. 과연 그럴 일이 어떤 게 있을까?


그린란드의 이누이트들은 말수가 적다. 아니 말이 없다. 언제나 침묵한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침묵, 기쁜 일이 있어도 침묵, 그저 조용히 신께 감사하고 자신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게 식민지배하에서 몇백 년을 견디며 살아왔기에 침묵하는 게 습관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이누이트들에게 거짓과 위선은 가장 큰 죄악이고 세드나의 뜻을 어기는 일이라 생각한다. 어찌 보면 전혀 속내를 알수 없는 그들이지만 천천히 그들과 만나다 보면 침묵하는 그들의 진면목을 느끼게 되고 오히려 그런 그들의 모습이 더 멋지고 믿음직스럽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세드나가 바라는 것이라는 것처럼 행동을 하면서 말이다.



타이타닉호와 부딪친 빙산이 여기서부터 출발해 뉴욕 앞바다까지 흘러가 사고를 내기까지 사람들은 빙산의 무서움을 몰랐을 것이다. 아니 설마 거기까지 빙산이 흘러가리라 생각을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세드나는 그의 남편인 개와의 사이에 낳은 자식들이 아메리카의 주인행세를 하면서도 세드나를 잊고 지내는 것이 못내 괘씸하게 여겨졌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세드나에게 예를 갖출 줄 모르는 미국인들에게 화가 났었던 건 당연했겠다. 그래서 세드나가 그녀의 고향 그린란드에서 빙산을 흘려보내 뉴욕 앞바다까지 가게 했던 게 아니었을까?



일 년에 몇 차례 세드나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앙가코크(이누이트족의 무당)는 세드나의 심기를 편하게 하기 위해 제를 올린다고 한다. 그들이 기도를 하고 바다에 들어가 그녀의 고운 머릿결을 빗겨주면 세드나는 기뻐하며 바다를 조용하게 한다고 한다. 역시나 세드나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팜므파탈 같은 바다의 심술쟁이라고나 할까? 그리스 에게해에서 어부들을 괴롭히는 사이렌처럼 세드나는 북극의 바다를 오가며 예를 차리지 않는 어부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배는 40여분을 달려 오콰아트수트포구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멀리 해안가에 알록달록한 여러 채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늘도 세드나의 고운 마음씨에 감사를 드리며 그림처럼 예쁜 마을 오콰아트수트에 첫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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