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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Aug 19. 2016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그린란드  10


이누이트의 꿈


일루리사트에서 배를 타고 40여분을 달려가 오콰아트수트로 왔다. 바다에는 수많은 유빙들과 빙산들이 떠다니지만 세드나의 배려 덕분인지 무사히 포구에 당도했다. 


바다 쪽에서 굽이쳐 들어간 곳에 포구가 자리를 잡고 있다. 포구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배에서 오콰아트수트 마을 전경을 바라본다. 작은 마을이지만 화사한 주택들이 마치 레고 블록을 짜 맞추어 놓은 것처럼 예쁘다. 저 안에 누가 살고 있을지, 지금 가면 모두 볼수 있을지,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포구는 바다를 끼고돌아 U자형으로 움푹 들어간 곳에 있다. 포구에 당도하니 언덕에서 개들 몇 마리가 환영을 하는 듯 짖어댄다. 아마 썰매개들을 방목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나를 이곳까지 데려온 선주는 내 짐을 가지고 호텔로 안내를 한다. 포구에서 작은 언덕 위에 있는 호텔로 짐을 가져다주고 그는 사라졌다. 드디어 이제부터 이곳에서 나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호텔에는 아무도 없다. 나 혼자다.



호텔은 개인주택 건물처럼 지었는데 1층에 방이 2개, 이층에도 방이 두 개가 있다. 여름에는 이 방들이 모두 손님들로 차겠지. 건물을 둘러보고 잠시 커피를 마시며 마을을 내려다본다. 이 호텔 건물이 마을 중심 언덕 부근에 위치한 덕분에 창문을 통해 내려다보면 마을이 잘 보인다. 


바람도 잦아들어 테라스로 나가 마을을 천천히 둘러본다. 마을은 평온해 보인다. 문득 사람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하기사 이렇게 추운데 마을을 서성이며 돌아다닐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바람 때문인지 겉옷을 안 입고 나갔더니 너무 추워 금방 집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그런데 문득 침실 한편에 놓여있는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그림은 미완성인데 큰 나무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은 듯이 그려놓은 고래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아래쪽에 스케치를 해놓은 것도 보인다. 나뭇가지에 올라앉아 졸고 있는 고양이와 작은 연못에 연필로 그려놓은 물고기 두 마리도 눈에 뜨인다. 


이런 것들은 모두 그린란드에서 볼수 없는 것들인데라는 생각에 호기심이 발동한다. 어쩌면 이게 이누이트들의 작은 소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솜씨를 가늠해 보니 어린아이가 그렸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고양이와 물고기 그림 스케취가 제법 사실적인 느낌이 들어 어른이 곁에서 도와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4월 중순의 그린란드 날씨는 영하 15~20 정도라 대부분의 식물이 자라기에는 부적당하다. 우측 사진은 방금 배를 타고 와 내린 포구인데 또다시 거의 얼어붙은 상태를 보여준다. 


아무튼 추운 그린란드에서 아무리 남쪽 지방에 산다고 하더라도 연못에 물고기를 기르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다 얼어버릴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뭇가지 위에 앉아 햇볕을 즐기며 졸고 있을 고양이는 그린란드 어디에서도 볼수가 없다. 더욱이 그린란드에는 나무가 전혀 자라지 않지 않은가? 그린란드 최남단 부락에 인공 조림한 숲이 축구장 2개 넓이만큼 조성해 놓았다는 기사는 본 적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나무가 자라는 곳을 볼수가 없다. 


그런데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고래라니! 어쩌면 이 고래그림이 가장 현실적인, 이누이트적인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래를, 그것도 일각고래를 잡아오는 날이면 온 마을이 함께 축제를 벌인다. 귀한 일각고래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더구나 일각고래는 세드나의 전령이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기에 이누이트들에게는 더없이 일각고래를 소중하고 신성한 동물로 여기고 있다.


침실 중앙에 걸린 검은색의 액자는 물개가죽을 표구한 것이다. TV는 위성안테나 없이 수신불가라 폼으로 갔다 놓은 건지...^^


여하튼 이 그림 속 대상들은 모두 그린란드 이외의 지역에서 보았거나 책에서 보고 상상으로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이 집 주인장이 자기 아이를 데리고 코펜하겐 티볼리 공원에서 해마다 6월 21일에 열리는 그린란드 자치 선포일 행사에 참석하고 그곳 경치를 그림으로 남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린란드 자치 선포일 이후부터 그린란드는 덴마크 국기가 아니라 그린란드 국기를 사용한다.)


그런데 그림 속 대상들 모두 생명이 있는 것들이고 우리 주변에서는 쉽게 보는 것들이 아닌가? 너무 흔하게 보는 것들이라 우리는 잊고 지내는 것들이 이들에게는 꿈이라니 세상은 그렇게 상대적인가 보다. 모두가 꽁꽁 얼어붙어있는 그린란드 어딘가에는 분명 그림 속 장면처럼 작은 생명이 꿈틀대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동토의 땅 그린란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잠시 가슴 한편이 뜨거워져 온다.


프로이드는 꿈의 해석(Die Traumdeutung)이란 책에서, 꿈은 우리들이 정상적인 일상생활에서 충족시키지 못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꿈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 꿈은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가치가 있다. 그래서 꿈이 없는 인간은 사이보그일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잠시 이 그림을 보며 이누이트의 꿈을 연상하게 된 나는 내 꿈의 모습은 지금 무엇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  양성우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모든 들꽃과 꽃잎들과 진흙 속에 숨어 사는

것들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은 살아 있기 때문에 아름답고 신비하다

바람도 없는 어느 한 여름날,

하늘을 가리는 숲 그늘에 앉아 보라

누구든지 나무들의 깊은 숨소리와 함께

무수한 초록 잎들이 쉬지 않고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이 순간에

서 있거나 움직이거나

상관없이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오직 하나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들은 무엇이나 눈물겹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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