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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Aug 19. 2016

해와 달 이야기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그린란드  11


세드나의 선물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치고 마을 산책에 나선다. 마을은 대충 50여 호의 주택이 있는 듯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금은 대부분 빈집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은 모두 29명뿐이라고 한다. 덴마크 정부가 이미 그린란드의 이누이트들을 도시의 아파트로 강제 이주를 시켰기 때문에 해안가 촌락에 사는 이누이트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한다. 현재 해안가 마을에 촌락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은 120개 구역에 나누어 거주하고 있을 뿐이라고 한다. 


이중 100명 미만의 주민이 거주하는 곳은 반이 조금 넘는 65군데라고 한다. 오콰아크수트도 그중 한 곳이다. 그래도 몇 년 전까지는 50여 명이 거주했다고 하는데 생활환경의 변화로 어쩔 수 없이 오지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대부분 대가족제도를 유지 해 왔으나 점차 도시생활로 이주해 가면서 생활형태가 전환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인적이 드문 마을은 그림처럼 예쁘다. 가지각색의 집들은 분명 누군가 일부러 색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칠을 한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화사한 어울림이 있을 수 있을까 싶다. 마을의 집들이 앉은자리도 넉넉하다. 비록 빈집들이 많지만 모두가 여유롭다. 이곳에 빈집 하나 찜해 놓고 가끔 와서 별장으로 쓰면 어떨까 싶다. 그린란드 공항에 도착해 여권 검사를 안 하고 무사통과 입국을 하니 고려해 볼만하지 않을까?  


마을에는 조망이 좋은 여러 적당한 자리에 의자를 설치해 놓았다. 산책하다 앉아서 경치를 즐기기도 하고 그냥 앉아 쉬기에도 좋다. 바닷가 의자에서 유빙들을 보고 있는데 문득 하늘에 무지개 같은 것이 나타나는 듯싶었다. 설마 세드나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아니겠지? 순간 “이건 뭔가 그림이야”라는 영감이 스치고 지나간다.


얼른 숙소로 달려가 카메라 가방을 둘러메고 뛰쳐나온다. 순간 사진 촬영하기 적당한 장소를 뒤편 언덕으로 생각하고 그곳으로 뛰어오른다. 올라가니 쉼터인듯한 곳에 의자와 돌무지가 보인다. 카메라 가방을 꺼내려 뒤를 돌아서는데 순간 ‘세드나가 탄 태양의 전차’가 달려오기라도 하듯 장관이 연출되고 있다.



이누이트족에게는 천지창조 이야기와 함께 ‘해와 달 이야기’가 전해 온다. 우리의 신화와 비슷해 흥미롭다. 어쩌면 그들의 신화와 우리의 신화가 어느 정도 공통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우랄알타이계의 피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누이트 태양신은 여신이다. 달의 신은 남자인 오빠. 오빠는 여동생 태양신과 함께 살았는데 어느 날 오누이가 크게 다투었다고 한다. 싸우다 힘이 부친 여동생이 오빠의 얼굴에 검고 더러운 기름을 뿌리고 하늘 위로 도망쳐 버린다. 이때부터 달이 얼룩을 띄게 되는데, 오빠는 동생인 태양을 잡으러 쫓아가지만 잡지 못하고 여전히 뒤쫓아 가기만 할 뿐이란다.



해와 달 이야기는 또 있다. 해와 달은 원래 오누이였는데 아직 태양이 하늘에 떠 있지 않던 시절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지내야 했다. 어둠 속에서 태양신인 누이가 자기와 몰래 사랑을 나눈 남자가 누구인가 알아보려고 남자의 얼굴에 검은 재를 묻혀 놓는다. 다음날 달의 신인 남자의 얼굴에 재가 묻어있는 것을 본 누이 태양신은 너무 놀라 당황해하다 하늘로 올라가 숨어버린다. 오빠인 달님도 놀라 태양신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지만 태양신을 만나지 못하고 영원히 그녀를 뒤쫓기만 할 뿐이다. 이때 달의 신이 가진 횃불은 꺼져 타다 남은 불덩이가 되었기에 달은 태양처럼 밝은 빛을 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근친상간의 상황이 신화로 포장되면서 해와 달 이야기도 신화로 남게 된 건 아닐지. 이런저런 공상에 문득 하늘에서 햇무리가 점점 더 완성되어 간다. 처음 보는 장관에 넋을 잃고 바라본다. 너무 멋진 순간이다. 숨이 막힌다. 


햇무리는 과학적으로 물방울이 얼음처럼 얼어붙으면서 빛의 굴절로 인해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곳 인근 하늘의 기온이 영하 4~50도는 족히 될 터이니 습한 날 햇무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내가 바로 도착한 첫날 이런 선물을 주시다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문득 지난번 아이슬란드를 향해 오던 하늘에서 보았던 무지개가 떠올랐다. 하늘에서 만나는 무지개는 주변에 장애물이 없다면 대개 원형이다. 이 날 만난 무지개는 단순히 원형만이 아니라 하늘의 기온저하로 인한 색분산 현상까지 보여주었다. 그뿐 아니라 수증기 입자가 많아서인지 비행기 날개에 달라붙어 빛 반사를 통해 하늘의 구름이 비행기 날개에 반사되어 보이는 장관도 볼수 있었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벌어지는 빛의 쇼라고나 해야 할지, 엄청난 황홀경에 빠졌던 기억이 있다. 이런 광경은 거의 일생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진귀한 광경이기에 더욱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하늘에 빛나던 햇무리는 아쉽게도 10여 분도 채 안되어 사라지고 만다. 오래도록 보고 싶다는 건 역시 욕심이었나 보다. 생각보다 일찍 사라진 햇무리를 마음속에 그리며 천천히 해안가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어쩌면 세드나가 또 다른 선물을 주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분명히 어딘가에 세드나의 또 다른 선물을 숨겨놓았을 거라고 확신한 나는 계속해서 바닷가를 헤매고 돌아다닌다. 믿음은 모든 걸 가능하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드디어 세드나가 숨겨놓은 보물을 찾아내었다. 아마 세드나가 내게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적지 않은 흥분과 함께 고마움을 느꼈다. 세드나의 심장이 저리 생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숙소로 돌아간다.(*이날 밤 꿈에 인어처럼 생긴 세드나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 


햇무리가 뜨거나 달무리가 뜨면 다음날 비가 오거나 눈이 내린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이날 저녁 기대했던 멋진 노을 지는 모습은 끝내 보지 못하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다음날 엄청난 함박눈이 쏟아지는 바람에 하루 종일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집안에서 보내야만 했다. 


이건 분명 세드나의 선물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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