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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Aug 21. 2016

얼음왕국 이야기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그린란드  12


얼음왕국의 전설



1.


신화의 언어는 상징성을 갖는다. 신화의 상징성을 찾아내고 느끼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단순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야기라도 그 단순함 자체가 또 다른 상징성을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신화에서 상징성을 찾아내는 일은 때로는 우리가 왜 존재하는가를 설명해주는 일을 대신하기도 한다.


인간이 신의 창조물, 또는 피조물이라고 정의를 한다면 인간이 지닌 상징성은 과연 무엇일까를 유추해내는 일은 종교의 몫일수 있다. 그러나 그런 각개의 인간상을 설명하고 정의하는 일은 바로 신화의 몫으로 전환된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는 언제나 신화와 동일시된다.


신화는 이제 더 이상 단순한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신화는 다양한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신화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기에 신화와 종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 즉 ‘다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은 중요하다. 따라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 당연하지 않은가 말이다.


<사진설명> 칡흑같이 어두운 바닷속 어딘가에 세드나가 지배하는 아들리분이 있다고 이누이트들은 믿는다. 그만큼 바다와 맞서 살아간다는게 쉽지 않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풍랑이 일거나 태풍이 불게되면 어부들은 생명을 담보로 극한 상황과 맞서 싸워야 한다. 이때 세드나, 즉 바다의 절대자는 언제나 인간에게 악령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세계 인어들이 대부분 악령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세드나는 인어공주가 아니라 인어이다. 인어로 보이는 것은 그가 바다를 지배하는 절대자라는 의미이다.



심지어 한편의 만화영화에서 조차 각기 다른 종교적 해석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은 자기 '안경'을 잘 닦고 화면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남에게 영화의 상징성을 평가하고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영화는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할지도 모르겠다. 누구 말마따나, 영화는 영화일 뿐이란 말이다.


신화 구조의 가장 밑바탕에는 생명의 기원에 대한 것이 있다. 모든 생명체가 물에서 기원하면서 자연이 생성되고 생명력을 지니게 되는 과정이 어느 신화이든 기본적으로 담겨 있다. 그래서 물이라는 상징체계는 이때 탄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이 만화영화에서도 그런 과정이 비록 생략되어 있으나 물, 즉 바다의 지배자인 세드나와 생명력을 지닌 인간이 모여사는 공동체를 상징하는 이누쑥이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등장한다. 각각의 상징성을 통해 신화라는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으니 무더운 여름날 추운 신화 속 세계로 함께 빠져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사진 설명> 주인공과 마을사람들이 세드나의 저주를 풀 방도를 논의하는 장면인데, 멀리 마을을 상징하는 이누쑥이 보인다.



2.


북극에 사는 이누이트들에게는 각 부족마다 각기 다른 신화와 전설이 전해 온다. 그러나 기본적인 구조는 세드나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런 신화를 영화로 만든 것도 있다. 바로 이누이트들의 삶의 모습을 그린 ‘얼음왕국의 전설’이란 애니메이션 영화이다.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세드나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두 가지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이누이트들에게 절대자로 군림하는 신화 속 인물 세드나, 그녀는 인어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람의 형상이 아니라 인어로 등장한다는 것은 그녀가 이미 생명의 근원인 물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마을을 그리는 장면에서는 대부분 이누쑥(Inussuk)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누쑥은 이누이트들이 사는 곳에 우리의 성황당처럼 주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마을과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원의 대상으로서 이누쑥은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세드나와 이누쑥 모두 이누이트들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


<사진 설명> 오로라가 비추고 있는 가운데 마을의 수호신격인 이누쑥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3.

눈과 얼음만 가득한 북극의 작은 마을. 악의 정령에 영혼을 잃어버린 주술사 크룰릭이 벌인 몹쓸 짓에 화가 난 북극의 수호신 세드나는 마을의 모든 동물들이 사라지게 하는 저주를 내린다. 사냥이 유일한 생계수단인 마을 사람들은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 저주를 풀고 마을을 구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누군가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사일라로 가야만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일라에 가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이디야와 부족장의 아들 사냥꾼 푸툴릭, 그리고 푸툴릭의 여자 친구 애픽을 선발한다. 드디어 마을을 구하기 위한 모험이 시작되는데, 그 과정에서 이디야는 자신에게 주술사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못된 주술사 크룰릭은 세 사람의 모험을 방해하기 위해 사악한 음모를 꾸민다. 그러나 다행히 크롤릭의 간계를 극복하고 드디어 세 사람의 선발대는 마을로 돌아온다.


<사진 설명> 주인공들이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마을로 돌아오는 장면인데, 역시 마을을 상징하는 이누쑥이 보인다.



4.


북극의 원주민 이누이트들의 모습을 그린 ‘이디야와 얼음왕국 이야기’는 그동안 우리에게 북극 신화에 대해 익숙하지 않았던 탓에 다소 낯선 영화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실제로 만화영화 속에서 만나게 되는 주인공들은 어쩌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될 것이다. 


개인의 야욕과 욕망은 결국 자기 자신까지도 파멸로 이끌게 된다는 권선징악적인 이야기의 결말은 흔한 이야기 구성이지만 그 소재는 굉장히 흥미진진하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진행될수록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그동안 잘 몰랐던 이누이트족의 신화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이누이트 신화라는 것이 허구적인 것으로서의 신화가 아니라 삶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로서의 신화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한 여름에 즐기는 북극 이야기, ‘이디야와 얼음왕국의 전설’을 링크해 놓았습니다.(유료)  

즐겁게 감상하시길 바랍니당.


https://www.youtube.com/watch?v=uUpEg6l0v0w


○ 영화 시작과 중간중간에 세드나(북극 신화의 주인공인 절대자)가 인어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바닷속 깊은 곳에 악령들이 사는 곳 아들리분을 지배하는 세드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인어의 모습이고, 더구나 ‘인어공주’가 아니라 그냥 ‘인어’라는 사실이다. 인어는 전 세계 바다에 존재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강조하는 것임을 알수 있다.


○ 세드나는 인어의 몸으로 바다를 지배하는 절대자인 셈인데, 안데르센 영향인지 ‘인어공주’라는 표현을 너무 당연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인어는 공주만 있는 게 아니고, 또한 여자 인어만 있는 게 아니고 남자인어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인어에 대한 이야기는 조만간 다시 정리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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