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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Aug 18. 2017

비아그라 사용기

고정관념은 독이다



1.


이 글은 후지산(3715m)을 등정하며  ‘비아그라’를 사용한 체험담을 쓴 글이다. 일반적으로 체험담은 그야말로 생체 실험하듯 먹어보고 느껴보고 해야만 쓸 수 있는 글이다. 그러나 그렇게 까지 깊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글이 아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글을 쓰기 위해 필자는 그야말로 ‘죽음’을 담보로 했다는 사실이다.


지난주 계획에도 없던 일을 결정하고 당장 몇 가지 준비를 해야 했다. 다름 아니라 일본 후지산 등정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일본이 지난 금요일 공휴일이라 연휴를 맞아 동경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아들이 모처럼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하면서 일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연휴를 보낼 계획을 세우느라 인터넷 검색을 통해 후지산 정보를 알게 되었고, 일 년에 딱 몇 달만 개방을 한다고 하니 이번 여름이 아니면 쉽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 산행을 하자고 결정을 했다. 그런데 후지산이 3715m나 되는 고산이라는 점이 은근히 마음에 걸렸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고산병에 시달리며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들이 생각보다 인터넷에 많이 올라 있었다. 


문득 지난해 가까운 친구가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섰다가 고산병으로 죽음을 맞은 일이 떠올랐다. 더구나 2년 전 친구들이 히말라야로 함께 트레킹을 가자고 했을 때도 당시 담당의사의 충고로 트레킹을 포기해야만 했던 일이 떠올라 은근히 두려움이 앞섰다. 과연 내가 후지산을 오른다면 아무 일 없을지 걱정과 오기가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충분히 고산병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더욱 그랬다. 막상 아들과 가기로 결정을 해 놓고 다시 포기를 하려니 그것도 쉽게 내키지가 않는다. 문득 언제인가 읽었던 히말라야 트레킹 도중 고산병으로 고생한 사람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신주구에서 출발한 버스가 이곳 고고메에서 멈춘다. 고고메는 해발 2305m 지점이다.

후지산 정상까지 왕복 15Km 정도이다. 일본어와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 안내판이 눈에 띈다.

 


당시 히말라야를 트레킹 하던 사람은 70대 중반의 남자였는데 약간의 내상으로 치료가 필요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버킷리스트 목록을 하나씩 이루기 위해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섰다고 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나이 때문인지 3000m 지점부터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 트레킹이 힘들게 되었는데 마침 트레킹 중이던 다른 어떤 의사의 도움으로 그가 겪고 있던 고산병을 이겨내고 트레킹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트레킹을 무사히 마친 이야기를 떠올리며 “그래 이거야”라는 생각에 나도 의사의 도움을 구하기로 했다. 평소에 부정맥으로 필요한 약을 복용 중인 나는 정기 진료를 받는 날 주치의에게 후지산 등산계획을 말하고 그에 필요한 비아그라 처방을 요구했다. 주치의는 다행히 내게 트레킹을 하지 말라는 권고는 하지 않았다.(* 먼저번 담당의사는 내게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지 말라고 했고, 나는 그의 말대로 트레킹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주치의는 내게 필요한 처방전을 내주면서 조심해 다녀오라고 한다. 그렇게 해서 비아그라를 준비하게 되었다. 이제 남은 건 실제 비아그라의 도움을 받으며 건강히 후지산을 오르고 돌아오는 일만 남았다. 지난주 페이스북에 올린 비아그라가 든 약병 사진은 그렇게 해서 올리게 된 것이다. 


약 좋다고 남용말자  

그런데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페북 친구들 사진에 대한 반응이 심심치가 않다. 대부분 비아그라가 발기부전 치료제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터, 그래서인지 갑자기 어쩐 일로 비아그라 약통 사진을 올린 건지 궁금해하는 눈치들이다. 특히 몇몇은 발기부전 치료를 한 결과가 어떨지 꽤나 궁금해하는 눈치들이다. 하지만 그런 시각들은 오히려 제대로 된 ‘비아그라’ 효능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도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배가 고프다는 이유로 꼭 무엇인가를 먹어야만 한다면 그건 먹이를 먹고 주린 배를 채우는 짐승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듯 비아그라를 복용한다고 모두가 발기부전 치료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성욕을 탐하려고 발기부전 치료제를 찾는다면 차라리 운동을 더 열심히 하거나 도를 닦을 일이다. 그 편이 훨씬 몸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아그라는 처음에 협심증을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으로 개발을 하다가 혈관 확장을 통해 혈압을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발견하게 되면서 발기부전 치료제로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비아그라’ 좋아하는 성골들이시여 어린아이가 치료제로 비아그라를 복용한다면 그건 또 어찌 보시려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제발 고정관념일랑 이제는 던져 버리기를 바란다. 그래야 우리가 변할 수 있을 것이고 우리가 변해야 이 나라가 바로 설 테니 말이다. 비아그라가 없어도 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음을 보여 주자자는 말이다. 바로 서는 일은 역시나 중요하다.


후지산 등산로는 너무 가파른 경사도와  화산폭발로 인한 용암과 화산재가 길에 널부러져 있어 편하지가 않다.
정상까지 가는 사이에 산장들이 여러개 있다. 식수와 먹거리 공급이 가능하다.



2.


지난주 금요일은 일본에서는 공휴일이라고 했다. 아들 말로는 산의 날이라고 했다. 동경 부근에 그다지 산다운 산이 없으니 후지산을 가보자고 했다. 며눌아기는 손녀와 함께 잠시 서울의 친정집에서 임신 휴가를 즐기고 있어 모처럼 아들과 함께 둘이서 시간을 즐길 수 있으니 오랜만에 며느리 눈치 안 보고 좋을거라 생각했다.


아무튼 목요일 저녁 모처럼 동경에서 만난 부자는 오랜만에 둘만의 저녁을 먹고 다음날 산행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든다. 아들은 그사이 후지산 산장에 1박을 하려고 이미 예약을 하고 그곳까지 가는 시외버스까지 예약을 해 놓았다. 필요한 장비도 점검을 했는데 나를 위해 작은 산소통도 하나 구입을 해 놓았다. 그러고 보니 내게는 ‘비아그라와 산소통’이 최고의 장비인 것처럼 느껴졌다.


다음날 신주구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후지산으로 가는 아침 7시 20분 출발 버스를 탔다.(* 예약을 하지 않아도 현지에서 탑승권 구입이 가능할 수도 있으나 공휴일 같은 날에는 가능성이 극히 적단다. 특히 후지산행 버스의 경우는 언제나 만원사례인 점을 고려해야 하니 예약이 필수인 셈이다.) 드디어 버스가 출발을 한다.


예정대로라면 7시 20분 출발하면 대략 10시 전에 도착한다는데 온통 시내 도로와 고속도로는 차들로 몸살이다. 길거리 안내판에 도로 사정을 알려주는 글자들이 나타나는데, “1Km 가는데 5분이 걸린다”라고 쓰여 있다. 그럼 도대체 언제 도착할 수 있다는 건지?


짜증이 나지만 그냥 잠시 눈을 부치기로 했다. 후지산 산행에서 가장 많은 문제점이 피로 때문에 발생하는데 피로의 원인이 대부분 수면부족에서 온다고 했다.(* 이건 나중에 실제 많이 보게 된다.) 그러니 기회만 있으면 잠을 청하고 잠자리에 들라고 했다. 그러니 버스에서라도 눈을 좀 부쳐두어야 나중에 피곤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오히려 잠잘 수 있는 시간이 귀하게 느껴졌다.


엄청난 등산객으로 인해 등산과 하산 모두 줄서서 하는데, 마치 좀비들과 강시들이 오르내리는 느낌이다. 



그러는 사이 도로체증은 어느 정도 풀리고 고속도로를 벗어난 지점에서부터 버스는 원래 속도를 회복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려 겨우 도착한 후지산 버스 종점에는 12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능한 6시 전까지는 도착해 달라는 후지산 산장 주인의 요구사항을 맞출수 있을지 걱정이다. 시간내에 도착하려면 꽤나 서둘러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일단 허기진 배를 채우고 출발하기로 했다.


비아그라는 사실 후지산 도착 전에 버스가 출발한 후에 먹으려 했다. 그래야 아침과 저녁 두 번 처방대로 복용하는 것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런데 약이든 배낭을 버스 화물칸에 넣는 바람에 중간에 약을 먹지도 못하고 종점까지 와야 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30여분이 대충 지난 시점에서 비아그라 25mg(* 비아그라는 25mg 짜리가 없기에 50mg 짜리를 둘로 쪼개 복용하도록 했다.)을 먹었다. 


아직까지 길은 평지 비슷해 오르락 내리막을 거듭하며 가고 있다. 길은 온통 화산재로 되어 있어 날이 맑은 날이면 먼지 꽤나 날릴 것 같은 그런 길이다. 비아그라를 처음 먹어보니 그 기분이 어떤지는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 단지 스스로 마음으로 느끼자 했던 것은, 평소에 내가 느끼지 않던 다른 느낌이 나타난다면 그게 바로 약효(?) 일거라고 생각했다.


등산로는 서서히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가파른 길을 숨을 헐떡이며 오르기 시작하는데 문득 숨이 그다지 가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예상대로 숨을 헐떡이기 시작한다. 평소처럼 산행을 하면서 이 정도 시점이면 숨이 어느 정도 가파 올텐 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걷는다. 일단은 성공(?)인 듯싶다. 산소 스프레이도 전혀 필요가 없을 듯싶다.(* 집에 돌아올 때까지 산소 스프레이는 전혀 사용을 하지 않았다.)


후지산 버스종점은 해발 2305m나 되는 제법 높은 곳에 있다. 이곳에서부터 등산을 시작해 3715m의 후지산 정상까지 가야 하니 고도 차이가 적지가 않다. 하루에 천 미터가 넘는 산행을 할 경우 가장 큰 문제가 언제나 고산병 문제이다. 등산로 입구에 가장 많이 보이는 안내판 내용도 바로 당일치기 후지산 <미친 산행>을 하지 말라는 팻말들이다. 왕복 15Km가 채 안 되는 거리이다 보니 건장한 사람들이라면 아침에 출발해 저녁 늦은 시각이면 충분히 돌아올 수 있을 거리이다. 그러다 보니 간혹 사고(특히 고산병)가 발생하기도 한단다.


드디어 3000m 지점을 넘어서니 구름이 발아래에 보인다. 계단은 마치 아파트 계단같이 급경사이다.



아무튼 해발 3천 미터 지점부터는 등산로 경사가 급격하게 가팔라진다. 마치 아파트 계단처럼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하는 수준이다. 길은 화산재가 왕모래 같이 잘게 부서져 있어 잘못 밟으면 몸이 기울면서 미끄러지기 일쑤이다. 숨이 턱에 차듯이 숨을 할딱이며 아들은 연신 숨을 몰아쉬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필자는 도사처럼 숨을 몰아쉬기는커녕 아들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짜식 힘드냐?”라고 속으로 웃음을 참는다. 흠 이런 게 혹시 ‘비아그라 효과’일까? 아님 원래 내가 그리 훈련이 되어서 잘 견디는 걸까?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사실 그동안 필자는 거의 매주일 한 번은 중급 이상의 산을 올랐다. 그러다 보니 걷는 데는 그런대로 이력이 났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꾸만 지쳐가는 몸뚱이가 아쉬워 헬스클럽을 가야지 하면서도 여전히 가지 못하고 있는 ‘꼰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오늘은 어쨌거나 잘 걷는다. 그것도 10Kg이 넘는 배낭 무게를 견디며 제법 폼나게 잘 걷고 있다.


드디어 해발 3000m 지점을 지난다. 서서히 긴장이 된다. 몇 년 전 네팔 트레킹을 할 때도 3000m 조금 넘는 위치에 있는 산장에 도착했을 때도 잠시 어지럼증을 느낀 적이 있었고, 몽불랑 케이블카를 타고 3600m 지점에 도착했을 때 잠시 어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기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짧은 시간이 아니라 여러 시간을 고산에서 지내야 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적응 시간과 신체적 적응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산장에서 일박을 하려는 것이고 비아그라의 도움으로 긴장을 해소해 보려는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면 무조건 내려가자고 스스로 다짐을 하고 걷는다. 걸으며 스스로 묻는다. 어때 아직 괜찮아? 응, 괜찮아... 머리가 약간 뻐근한 느낌이다. 가만 생각하니 이미 아침부터 버스에서 잠을 청할 때도 비슷한 증세가 있었던 듯싶다. 일단 고산병 증세는 아닌 걸로 판단했다. 맥박이 빨라지거나 숨이 차거나 또는 어지럽거나 하는 증세 어느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리도 제법 힘이 느껴질 정도로 잘 걷고 있다.


드디어 3400미터 지점에 있는 산장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일박을 하고 내일 아침 정상으로 간다. 정상까지는 1.5Km 정도의 길을 더 가야 하는데 거의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길이 아주 가파르단다.


잠시 구름이 걷히고 파란 하늘을 보여준다. 경사진 가파른 길을 따라 지그재그로 올라야 한다.



그런데 산장 주인장 말이 등산객들 모두 내일 새벽 1시에는 출발을 해야 정상에 발을 디딜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사람들이 워낙 많이 몰리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정상에 서있을 수 조차 없기 때문에 정상에서 아침해 뜨는 풍경은 고사하고 정상에 올라서기 조차 쉽지 않으니 무조건 늦어도 새벽 1시에는 출발을 하란다. 이게 말이야 소야라는 생각이 들면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르기에 그러는 거지 하면서 내심 어처구니가 없게 느껴졌다.


아무튼 아들은 이럴 때 아주 착한 사람이 된다. 언제나 상대방이 하는 말을 아주 잘 따르고 주문대로 행하는 그야말로 선한 남자의 표본 같다. 다행히 산장에는 6시 10분 전에 도착을 했기에, 10여분 정도 기다리며 주의사항과 산장 이용안내를 받는다. 


참고로, 후지산 버스 종점 2305m에서부터 후지산 정상 사이에는 산장이 10여 개가 있다. 모든 산장에서는 물과 간단한 필요 물품 등을 구입할 수 있고, 필요시 숙박이 가능하다. 숙박할 경우 본인이 비용 지불을 하고 선택을 하면 저녁과 아침(도시락)을 제공받을 수 있다. 따라서 짐을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는데 식사량은 식사양은 생각보다 적기 때문에 돈을 내고 밥을 추가하면 된다. 


산장에 도착 후 30여 분이 채 안되어 저녁밥을 먹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사실 멋진 저녁노을이라도 볼 수 있겠지라는 기대를 했건만 아뿔싸 저녁밥을 먹는 사이 서서히 먹구름이 산을 에워싸고 폭우를 뿌려댄다. 아예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화장실만 다녀오고 곧장 침낭을 펼친다. 그 시각이 저녁 6시 30분이다.


산장의 침낭은 무척이나 두텁다. 땀냄새도 그다지 나지 않는다. 산장을 찬찬히 둘러보니 거의 대부분의 창문이 열려있다. 그런데도 침낭이 튼실해서 전혀 추위를 못 느낄 정도이다. 바닥도 두툼한 매트리스가 제법 깔끔하게 깔려 있다. 이런 건 우리나라도 따라 하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금방 잠 속으로 빠져든다.


드디어 5시간 반 만에 예정된 숙소(해발 3381m)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1박을 한다.

저녁은 카레라이스인데 작은 햄버거 스테이크를 같이 준다. 밥이 너무 적어 추가를 했다. 오른쪽은 다음날 아침 도시락(간단한 마른반찬과 쌀밥이 들어있다.)

산장은 3층으로 꾸며져 있고 바닥은 깨끗한 매트리스가 인상적이고, 검게 보이는 것은 두툼한 우모슬리핑백이다. 영하 30도도 족히 견딜만하다. 산장 곁으로 등산로가 가파르게 놓여있다.




3.


시완(* 가명임)이가 죽으리라는 건 정말 상상도 못 하였던 일이다. 그 친구가 죽어야 했다면 분명 죽을 만한 충분한 원인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구들은 시완이 죽음에 대해 무리한 산행이 결국 고산병으로 나타났을 거라는 말만 한다. 같이 트레킹을 다녀온 후배도 그런 소리를 했다. 


그런데 가만 듣고 있으려니 한두 가지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 첫째는 시완이가 말을 타고 올라갔다고 했다. 그리고는 숨이 가빠오면서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자 헬기를 부르고 하산 준비를 서둘렀다고도 했다. 말은 이미 고산지대로 시완이를 태워다 놓고 내려간 모양이다. 차라리 말이라도 시완이 곁에 그대로 있었다면 금방 말을 타고 하산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분석을 해보면 첫째는 말을 타고 고산을 오른 게 잘못인 듯싶었다. 신체적으로 힘들지 않게 오르려다 보니 말을 타고 올랐던 것 같고 그게 오히려 독이 된것 같다. 적응할 시간도 없이 어느새 고도를 높이다 보니 신체는 전혀 적응이 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시완이가 몇 해 전에도 고산증 증세가 나타나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다가 포기를 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가 히말라야 트레킹을 한다고 나설 때 하지 못하게 말리거나 하더라도 철저히 고산병 예방 프로그램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주변에서 조차 전혀 준비도 없이 막무가내식으로 트레킹에 나서게 한 것은 어디서 비롯된 자신감이었는지 궁금하다. 비아그라라도 몇 알 준비했다면 그래도 죽음까지는 가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가시지를 않는다. 


산에서 친구란 죽음의 동반자를 의미한다. 동료가 죽어가는데 혼자만 살겠다고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일이 발생한다면 그건 산행을 함께 해도 되는 친구가 결코 아니다. 산 친구는 그렇게 죽음을 나눌 수 있는 사이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혼자 산을 오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시완이의 죽음이 억울해 보였던 이유가 이제야 의문이 풀린 듯싶었다. 


무모한 트레킹 도전에 무관심한 친구들의 잘난 척(?)이 결국 한 인간의 비참한 종말을 유도해 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든 죽음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에게 있을 테지만 그래도 친구라는 의미가 가끔 목숨을 살리게 되는 경우도 있을 텐데라는 생각에 시완이의 죽음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어디선가 시끄러운 소음이 귀청을 아프게 한다. 아마 누군가 또 죽었다는 소리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이번에는 비명처럼 바람소리와 함께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들린다. 창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내 잠자리까지 바람이 불어 빗방울이 들이치고 있었던 것이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날리는 빗방울 때문에 잠은 이제 완전히 깨인 듯싶다. 사람들 몇몇이 잠을 안 자는지 수군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시계를 보니 밤 10시 45분, 아직 출발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잠이 깨버리니 큰일이다. 잠시 핸드폰으로 후지산 정보를 검색을 하다가 다시 눈을 감아본다. 그 사이 사람들은 점점 더 잠에서 깨는지 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비가 쏟아지는 한밤중에 숙소를 출발해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그런데 정상에 있는 산장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해 밖에서 추위에 떨어야 했다.  

후지산 고도(3715m)를 알려주는 어플 캡처, 정상에 있는 산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4.


산장을 출발하면서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10분이다. 문밖을 나서는데 어느 틈에 그리 많은 사람들 행렬이 지나고 있는 건지 기분이 이상하다. 마치 좀비들이 어둠을 뚫고 차례대로 순서를 기다리듯 걸어가고 있다. 


조금 빨리 걸으려 해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조금만 빨리 걸으면 앞사람 엉덩이에 얼굴이 닿을 정도이니 경사가 급한 등산로에 두 사람이 나란히 서있기도 힘이 들 정도로 비좁다. 앞사람이 한걸음이라도 나가야만 따라갈 수 있는 그런 길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산행은 그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비는 여전히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고래 텍스를 입었으니 비쯤이야 문제 될 리 없지만 안경 위로 덮치는 빗물은 와이퍼도 없으니 대략 난감이다. 그런데 문득 길가 한편에 두서너 명씩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마 힘이 들고 졸음이 몰려오는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꼼짝 않고 고개를 파묻고 자고 있는 듯했다. 


한 시간 반이면 오를 거라던 정상까지의 등산로는 다행히 두 시간 만에 당도할 수 있었다. 정상에는 어느새 올라왔는지 진짜 입추의 여지없이 사람으로 가득하다. 이제야 늦게 출발하면 정상에 자리가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3시 조금 넘은 시각부터 해가 뜨는 5시경까지 무작정 기다리려니 슬슬 추위가 엄습해 온다. 빗줄기는 조금 수그러 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빗방울이 날린다. 바람까지 불면서 추위는 마치 한겨울같이 느껴진다. 심지어 이빨까지 부딪치며 한기가 온몸으로 스며든다.


정상에는 산장 매점이 모두 네 곳이 있는데 수십 명씩 들어가 따스한 음료수와 음식을 먹을 수가 있다. 그런데 산장 안으로 들어가는 차례를 기다리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거의 포기상태이다. 비가 오는데도 비를 피할 공간이 없으니 밖에서는 옷을 갈아입거나 덧입을 수 조차 없다. 


해뜨기 직전의 풍광, 비는 그쳤지만 구름이 잔뜩 끼여있어 일출을 기대하기 어렵다. 왼쪽의 기둥은 '정상 표지석'

누군가는 조금 일찍, 누군가는 조금 늦게, 그렇게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산을 오른다. 그게 인생이다. 

높은 산을 고집하는 이유는, 일출을 잘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산정상에서 멋진 일출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힘든 산행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한 시간을 그렇게 떨고 있는데 문득 지금 내가 떨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스친다. 지난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비아그라 25mg을 두 번째로 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잊고 있었다. 지금 시각이 새벽 3시가 조금 넘었으니 아직은 비아그라 약효가 남았을 거라 여기며 조금 있다 해뜨기 전 비아그라를 다시 한번 더 먹자고 생각했다.

 

다행히 어지럽거나 심장이 뛰는 느낌 등 불편한 기분은 없는 듯했다. 어쩌면 급하게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거의 한걸음 가다 서고 한걸음 가다 서는 그런 속도로 정상을 향해 왔기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던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약간의 두통이 느껴질 뿐 다른 증상은 전혀 없다. 그런데 어제 아침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있었던 약간의 두통 기와 비슷한 느낌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몸 상태는 고산병 증세가 문제가 아니라 비가 오는 산 정상에서 체온 유지를 어떻게 하는 가의 문제가 더 심각했다. 


비를 맞으며 산 정상에서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체온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낮아진다. 그야말로 이빨 부딪치는 소리까지 날 지경이다. 아들에게 비가 오고 해 뜨는 광경도 볼 수 없을 테니 우리 그냥 하산하자고 꼬드겨 본다. 아들도 추위가 견디기 어려웠는지 동의를 하고 이내 하산을 하자고 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꾸역꾸역 정상으로 오르고 있었다. 그 사이를 비집고 하산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때 아들이 부른다. 하산로는 반대편에 있다고, 이리 가면 안된다고...

후지산에서 하산은 올라온 길과는 전혀 다른 길로 하산을 해야 한다. 거의 일방통행식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정상을 향할 때 누구도 하산을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정상에 오르면 거의 자동으로 하산을 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맞다. 그랬다 후지산은 오르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따로 있었다. 거의 일방통행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려가는 길 입구 쪽으로 와보니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 지를 않는다. 아들이 소리를 지른다. 이건 뭐 이리 깜깜하니 어디로 가야지? 하는 수 없이 위험한 가파른 길을 무작정 내려갈 수도 없으니 다시 정상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해 뜨는 시각까지는 아직 한 시간 정도가 더 남았다. 산장 쪽으로 다시 가려는 순간 산장 안에 자리가 있는지 아들이 슬며시 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나도 그 뒤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따스하다. 온기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을 정도로 실내는 따스하고 훈훈하다. 배낭에서 우모복을 꺼내 덧입으니 살 것 같다. 


따끈한 우동 한 그릇 시켜먹으니 그 덕분인지 얼었던 몸이 조금은 풀린 듯하다. 비 맞은 짐을 정리하고 비아그라도 25mg을 한번 더 먹는다. 이제부터는 내려갈 일만 남았으니 더 이상 비아그라는 먹지 않아도 되겠지라는 생각에 별 탈 없음이 스스로 고맙게 느껴진다.


이 안에서 한 시간 정도를 기다리면 되겠지 하는데 아들은 또 다른 사람이 밖에서 기다릴 테니 우리는 이제 그만 나가자고 한다. 착한 아들 덕에 그래 하고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고 밖으로 나선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한결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비는 거의 그쳤는지 바람만 간간히 불어댈 뿐이다. 


멀리 해 뜨는 동쪽 방향이 조금은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비구름이 너무 심해서인지 아침 빛이 제대로 보이 지를 않는다. 그냥 저쪽이 해 뜨는 방향인걸요라는 식으로 하늘은 더 이상 변하지 않고 먹구름으로 가득할 뿐이다. 어느새 해 뜨는 시각이 가까워오자 사람들은 기대감 때문인지 웅성대며 한 곳을 바라본다.


여전히 구름이 잔뜩 끼여있는 길을 좀비들 처럼 내려오는 사람들,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지... 



그게 다 였다. 아무도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고 아쉬움도 없는 표정으로 재빨리 하산을 서두르기 시작한다. 길은 다행히 충분히 보이기 시작했으니 가파른 길이라도 하산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산길은 올라오는 길보다는 폭이 넓었다. 두 세명이 함께 걸어도 될 만큼 넓었다. 화산재가 오랫동안 쌓여있었는지 길은 여전히 왕모래를 밟을 때 처럼 미끄럽기만 했다. 경사가 급한 길이니 만약에 길이 얼어있다면 산아래까지 단숨에 미끄러져 굴러갈 판이다.


조심조심 걸음을 내딛으며 하산을 한다. 사람들도 별로 말이 없다. 올라올 때의 무표정은 아니지만 모두들 지치고 힘이 들어서인지 심각해 보인다. 어느새 처음 출발했던 지점까지 왔는지 낯익은 장소를 지나고 있다. 비는 억수같이 오지 않지만 하산 때까지 오락가락하며 여전히 이슬비를 뿌려대고 있다. 


출발지에 도착해서야 비아그라를 먹고 산행을 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식하게 되었다. 비아그라 덕분인지 원래 내 체력 덕분인지 별로 피곤하다는 기분이 들지를 않는다. 다만 비 때문에 신발이 젖어 발바닥이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뿐이다. 아무려나 좋았다. 혹시나 했던 내가 끝내 해냈다는 성취감을 또 한 번 느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말하지

가끔 폭풍, 안개, 눈이 너를 괴롭힐 거야

그럴 때마다 너보다 먼저 이 길을 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려봐 

그들이 할 수 있으면

너도 할 수 있어 라고...

(생 텍쥐베리, 어린 왕자 중에서)


2017년 8월 11일 후지산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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