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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Aug 25. 2017

클라라에게 보내는 편지


“클라라에게 보내는 편지”


앙드레 가뇽의 피아노곡 중에 “클라라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의 곡이 있다. 한데 음악에 등장하는 여인이 가뇽의 연인쯤 되는 사람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야기 중에 가끔 등장하는 여인 클라라. 성녀 클라라도 있지만 어쨌든 클라라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는 왠지 나약하면서도 언제나 많은 사연을 간직한 그런 여인으로  느껴진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예전 독일 화폐에 보면 클라라 슈만이 화사한 웃음을 짓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인 시절이 있었다. 그것도 독일 화폐 중에 제일 비싼 100마르크짜리(한화 약 5만 원)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한때는 브람스의 짝사랑을 받으며 브람스 음악에 많은 영감을 제공하기도 한다.


사실은, 성녀 클라라나 클라라 슈만보다 음악가로서 더 자주 회자되는 그런 여인이 있다. 클라라 하스킬, 바로 그녀가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스페인계 유태인 부모 사이에 1895년 1월 7일 루마니아에서 태어난다.


그녀는 15살에 파리 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연주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천재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그 인기는 거기까지 였다. 18세가 되면서부터 그녀는 끝없는 불행과 불운 속에 몸부림치며 일생동안 병마와 싸우며 살아야만 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모차르트가 다시 태어났다는 소리를 들으며 성장한 하스킬은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결코 굴하지 않는다. 그녀의 천재성은 이미 그녀가 어렸을 적 소문이라도 냈었는지 거의 전 유럽에 입소문이 퍼져 있었다.


찰리 채플린이 평생 세 사람의 천재를 만났는데, 그중 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바로 하스킬이었다고 했을 정도이니 알만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천재는 바로 하스킬였다고 한다. 어쩌면 채플린이 모차르트를 꽤나 좋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녀의 아름다움을 하루아침에 빼앗아간 병은 ‘세포 경화증’(Sclerosis)이라는 병이었는데 뼈와 근육이 붙거나 세포끼리 붙어 버리는 불치병이었다. 그녀는 이후 4년간 몸에 깁스를 한 채 살아야 했으며 당연히 연주도 할 수 없었다.


한창 꽃다운 나이에 피아니스트로서 전성기를 맞이해야 할 시기에 그녀는 온몸에 깁스를 한 채 누워있어야 했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 뻔했을 테다. 불행한 일은 그것뿐이 아니었는데, 이 병의 후유증으로 그녀는 여인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마치 저주에 걸린 동화 속 공주처럼 그녀는 꼽추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일찍 부모를 잃고, 오랫동안 병마에 시달리며 2차 대전이라는 전쟁의 공포 속에서 살아야 했던 클라라 하스킬, 그녀의 곁에는 언제나 고양이 한 마리가 같이 한다. 아무도 그녀를 위로해 주지 않을 때 이 고양이만은 늘 그녀를 지켜 주었다. 그녀는 조용하고 수줍어하는 성격에다 절친한 친구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에게 있어서 고양이란 존재는 동물 이상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클라라 하스킬의 1957년도 잘츠부르크 공연 포스터, 고양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재기를 시도하던 클라라는 자신의 모습을 아랑곳하지 않는 강한 의지력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녀의 열정은 드디어 클라라 하스킬이라는 이름을 최고의 모차르트 연주자로 각인 시키기에 이른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이나 바이올린 소나타를 즐겨 듣는 사람들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으로 기억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그녀가 말년에 그뤼미오와 함께한 바이올린 소나타는 여전히 전설적인 명반으로 남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녀가 잘츠부르크 여름축제의 일환으로 연주를 하는 날이면 다음날 여지없이 감동적인 그녀의 연주회 모습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보도되고는 했다고 한다. 문득 그녀의 연주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지휘자 카라얀이 살아있던 당시 잘츠부르크 페스트슈필하우스에는 유명한 카라얀의 지휘하는 모습보다 헝클어진 머리에 온몸이 구부정한, 흡사 마귀할멈 같은 모습으로 연주하는 곱사등이 피아니스트가 사람들 마음을 모두 훔쳐가 버렸을 게 뻔했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그녀가 병마와 싸우며 간간이 연주여행을 다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힘들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죽기 얼마 전부터는 더욱 죽음에 대한 공포로 괴로워했다고 한다. 혹시라도 그녀가 연주 중에 생이 끝날 것이라는 강박 관념이 늘 그녀를 따라다녔을 것이기에 말이다. 그래서 연주가 끝나면 그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고 한다. "이번에도 또 집행유예가 내려졌군"


죽음에 대한 그녀의 예감은 그녀의 예상대로 그뤼미오(그녀는 말년에 아들 뻘 되는 그뤼미오와 최상의 콤비를 보여준다.)와 연주여행 중에 일어난다. 1960년 12월 파리에서 그뤼미오와 "소나타의 밤을" 가진 후, 다음 공연을 위해 기차로 브뤼셀에 도착해 역 계단을 오르던 중 그녀는 발을 헛디디고 역 계단에서 굴러 쓰러지고 만 것이다. 66세의 생일을 한 달 남겨놓고 그녀가 끝내 세상을 떠난다. 그날은 1960년 12월 7일 이른 아침이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피아노의 성자'라 부른다. 꼽추인 그녀가 구부정한 모습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에서 그녀가 지니고 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그녀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음악은 피아노 소리가 아니라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장애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각자의 천재성이 모든 이에게 내재해 있음을 실천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클라라 하스킬의 말대로 우리는 매일같이 또다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있는지 모른다. 특히 건강한 사람은 대개 이 사실을 잊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앙드레 가뇽의 음악을 듣다 보면 그가 전하려는 느낌이 어쩌면 바로 ‘집행유예’의 의미가 아닐까라고 조심스레 생각하게 된다.


가뇽의 음악은 단순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어쩌면 단조롭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기에 커다란 감격을 전하기보다 ‘집행유예’를 선고하듯이 작고 단순한 감흥을 조용히 정리해 주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래서 클라라 하스킬의 피아노 연주를 떠올리며 가뇽의 음악을 듣다 보면 어느 틈엔가 두 음악적 순수함이 오버랩되면서 따스함을 느끼게 된다.


앙드레 가뇽의 ‘클라라에게 보내는 편지’, 이 음악은 그래서 참 많은 생각이 나게 한다. 이런 날 ‘클라라에게 보내는 편지’와 하스킬이 연주하는 ‘모차르트’를 들으며 글을 쓰다 보면 형형색색의 가을빛이 문득 내 주변을 가득 물들일 것 같다.




* 참고용으로 앙드레 가뇽과 클라라 하스킬의 연주곡을 링크했다.


- André Gagnon - Lettre à Clara (1986) :

      https://youtu.be/y9ChNxFjqZs

- Clara Haskil 1960 (Wolfgang A. Mozart Piano Concerto No. 20 in D minor, KV.466) :

     https://youtu.be/eF74h_WhL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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