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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Sep 28. 2017

인어공주와 칼스버그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덴마크  2


인어공주와 닐스 보어, 그리고 칼스버그


한 겨울의 코펜하겐은 다른 북유럽 도시처럼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심하다. 한 겨울 오후 5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거리는 제법 어둡다. 조금 전 지나온 성 알반교회와 게피욘 분수를 지나면 덴마크의 상징 같은 인어공주상이 나온다. 인어공주 동상 역시 칼스버그 맥주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유럽에는 독일을 비롯해 대부분의 나라들이 개성 있는 맥주들을 생산하고 즐긴다. 덴마크에는 칼스버그와 티보리라는 맥주가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칼스버그’ 맥주는 이미 코펜하겐의 주요 관광 명소가 되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칼스버그는 오늘날 세계 4위에 오를 정도로 유명한 맥주이기도 하다.      


덴마크 최대 기업 중 하나인 ‘칼스버그’, 그 역사가 이미 168년이나 되었는데, 크리스티안 제이콥슨이 1847년 24세의 나이로 맥주 양조장 문을 연다. 제이콥슨이 처음에 유명하다는 독일의 바이에른 맥주를 먹어보고 영감을 얻어 독일어 단어 "버그"에다가 자기 아들 이름 칼을 붙여 ‘칼스버그’라는 이름을 만들었다고 하는 일화가 전해온다.


오늘날 칼스버그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기업의 사회적 윤리, 즉 사회적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기업이 단순히 부를 축적하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면 그건 기업의 자유가 아니라 오히려 소비자에 대한 폭거이며 방종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면에서 칼스버그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사회적 기업으로서 사회자본의 역할을 잘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6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칼스버그가 이룩한 사회적 명성만큼 칼스버그는 나름대로 열심히 사회적 공헌을 해 왔다. 가장 대표적인 사업이 바로 덴마크 문화개발을 위한 투자이다. 제이콥슨 칼스버그 사장은 회사 비용으로 코펜하겐에 있는 왕궁 재건은 물론 코펜하겐 식물원을 개설해 각종 식물 관람은 물론 연구를 위한 식물원으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가꾸어 놓았다.      


o 일명 '칼스버그 박물관'이라고도 부르는 '조각박물관 ‘글리포테카(glipoteka)’ 입구

o 왼쪽: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만나는 조각상, (사진을 찍은 장소 바로 왼쪽 뒤에는 칼스버그 맥주 무료시음장이 있다.)

o 오른쪽: 전시작품 중 일부



뿐만 아니라 덴마크 문화의 총본산으로 활용 가능할 정도로 각종 문화박물관,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코펜하겐 조각박물관 ‘글리포테카(glipoteka)’를 구축해 놓는다. 거의 국립박물관과 겨누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수준이다. 코펜하겐에 있는 크고 작은 디자인 박물관들도 대부분 칼스버그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제이콥슨이 열정적인 예술작품 수집가였기에 이런 사업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부의 사회적 환원을 위한 기본적인 자세가 갖추어지지 않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칼스버그가 지난 시절 준비한 문화 프로젝트 덕분에 오늘 현재 덴마크는 문화강국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칼스버그가 추진한 사업 중 가장 큰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은 바로 칼스버그 설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한 인어공주상과 게피욘 분수일 것이다. 물론 친구이자 인어공주 원작자인 안데르센과의 깊은 우정도 크게 작용을 했을 테지만, 이 두 가지 사업은 누가 뭐라고 해도 코펜하겐을 상징하는 아이콘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하다.     


그뿐 아니라 칼스버그는 학문적 연구를 진작시키기 위한 투자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덴마크 정부와 칼스버그(Carlsberg) 재단의 도움으로 양자물리학의 거두인 닐스 보어를 적극 후원했다. 닐스 보어는 그 덕분에 1921년 이론물리학 협회를 만들고 대표가 되었고, 결국 1922년에는 원자 구조와 원자에서 나오는 복사에너지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는 쾌거를 이룬다.      


덴마크 코펜하겐 대학 입구에는 여러 유명인사들의 동상이 서있다. 왼쪽에는 닐스보어의 동상도 있다.

o 닐스 보어 동상과 그가 사용한 문장, 문장 중앙의 태극문양이 유독 눈에 띈다.

o 문장 바로 위에 ‘Contraria sunt Complementa’, 즉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이다”라는 글귀도 보인다.



그 후 보어가 이끄는 협회는 1920~30년대까지 이론물리학자들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을 후원해 주었고 그 결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론물리학자들이 그 기간 동안 코펜하겐 연구소에 모여 연구를 할 수 있었다. 결국 닐스 보어는 그의 아들까지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 성과를 이루어 낸다.     


‘Contraria sunt Complementa’, 닐스 보어는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소위 ‘상보성 원리’라고도 부르는 이 말은 주역의 음양이론과 일맥상통한다. 닐스 보어는 가문을 상징하는 문장에 까지 태극도를 그려 넣었고, 노벨 수상식장에 참석할 때도 주최 측의 승낙을 얻어 주역 팔 괘도가 그려진 옷을 입고 참석을 한다. 뿐만 아니라 덴마크 정부는 그의 업적을 기려 500 크로네 화폐에 그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태극도를 배경으로 한 그의 초상화를 그려 넣는다.     


문화사업과 학술연구지원, 이 두 가지는 국가의 장래와 인간의 미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이고 선행되어야 하는 투자임에 틀림없다. 그걸 다른 기업도 아닌 칼스버그가 해낸 것이다. 덴마크의 맥주회사, 우리나라 기업과는 달라도 뭔가 한참 다르다. 코펜하겐의 인어공주상을 스치고 지나는 바람처럼 한겨울에 부는 코펜하겐의 바람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인어공주는 조각가 에드바르트 에릭센이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제작하는데, 발레리나인 자기 부인을 모델로 제작한다. 그런데 다리가 너무 예뻐서 원래 설계도에 있던 비늘로 덮는 다리가 아니라 자기 부인의 다리 각선미를 그대로 살려 제작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인어공주를 세운 자리 건너편에는 서울의 당인리 발전소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저런 곳에 과연 인어공주가 나타날지 의문이다.

o 인어공주상은 여러모로 수난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만큼 인어공주상이 덴마크를 대표하는 아이콘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o 가끔씩 짓궂은 사람들 손에 목이 잘려나가기도 한다.

o 때로는 항의시위로 인해 수난을 당하기도 하는데, 지난여름 덴마크의 식민지 페로제도가 마구잡이식 고래사냥을  해대는 바람에 붉은 페인트로 "페로제도의 고래들을 보호하라"는 글귀와 함께 인어공주상을 붉게 칠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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