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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Sep 29. 2017

키에르케고르의 소원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덴마크  4


신이 내게 소원을 묻는다면    


      

신이 내게 소원을 묻는다면 /  키에르케고르   

  

신이 내게 소원을 묻는다면

나는 부나 권력을 달라고 하지 않겠다

대신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과

희망을 바라볼 수 있는

영원히 늙지 않는 생생한 눈을 달라고 하겠다

부나 권력으로 인한 기쁨은

시간이 지나가면 시들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생생한 눈과

희망은 시드는 법이 없으니까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오늘도 우리에게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 벗어나 스스로 ‘뜨거운 열정’과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생생한 눈’을 갖추기를 충고한다. 키에르케고르의 이런 충고는 문득 오늘날 덴마크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휘게’(Hygge)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덴마크인들의 인생관을 가장 잘 표현한 말 ‘휘게’. 내 마음이 편할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의미의 단어, ‘휘게’, 어쩌면 키에르케고르는 바로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덴마크인들이 ‘휘게’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휘게’, ‘기분 좋은 일’이겠다.     


그런데 바로 그 ‘휘게’라는 말을 즐기기 위해 덴마크인들은 주변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나 자신이 자유로울 수 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이미 19세기 말 루터파 개신교회의 무의미한 형식주의를 비판하고 나선다. 마치 예전 루터가 가톨릭의 형식주의를 비판했던 것처럼 신앙의 본질, 특히 교회 제도와 기독교 윤리문제 등 개인이 언제나 직면하게 되는 여러 종교적 문제를 교회가 올바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음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키에르케고르는 개인이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우주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집단이 조직의 힘으로 그리스도교의 권위와 형식을 강조하는 그 어떤 행위도 거짓으로 보았다. 집단이 조직의 힘을 빌어 그 어떤 권위와 역량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종교를 빙자한 부패한 권력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각자가 스스로 종교적 잠재력과 역량을 가지고 신앞에 나가기를 바랐던 것이리라. 그의 생각은 바로 오늘 한국교회가 가장 귀담아 들어야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눈오는 날 상점앞 진열대 상품들과 심지어 꽃화분들까지 대로 방치(?) 되어 있다.  "휘게~"



여하튼,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이 가톨릭에서 루터파 개신교로 개종을 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갈등과 희생을 치루어야 했다. 결국 사회통합을 위한 장치로서 북유럽에서 종교, 특히 가톨릭이 아닌 루터파 개신교가 국가의 권위와 통합을 위한 매개체로 필요했기에 오늘날 북유럽 국가들 모두가 루터파 개신교 국가로 개종을 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루터파 개신교, 즉 종교가 사회통합의 역효과가 발생한다면 그건 비판받아 마땅할 것이다.     

키에르케고르의 무덤(코펜하겐 아시스텐스공동묘지)

키르케고르는 말년에 기독교 조직을 공격한다. “기독교계는 세속화되고 정치화되었다”라고 하면서 특히 “국가가 설립한 국립 교회는 개인들에게 해롭다”라고 주장한다. 개인의 선택에 의한, 자유의지가 아니라 강요에 따른 종교라는 점 때문이리라.


국가가 종교를 국교로 삼을 때는 단순히 개인적 구원의 문제뿐 아니라 어떻게 사회 통합을 위한 수단으로서 발전을 지향해 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되기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종교의 문제는 언제나 갈등의 소지를 안고 있기도 하다. 물론 종교를 바탕으로 어떤 사회가 서로 신뢰할 수 있게 되고 거리감을 줄이게 된다면 그보다 좋은 기능은 없다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북유럽 국가들의 공통점은 바로 종교를 통해 국가와 국민 간에 믿음과 신뢰를 확립할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그 결과 덴마크는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면 덴마크가 개인 채무 세계 1위의 부채국가이고, 동시에 상위 15%가 전체 90% 이상의 부를 소유하고 있는 극단적인 빈익빈 부익부 구조를 보여주는 국가라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소위 ‘행복지수 1위’라는 자리에 여러 해 동안 오르는 영예를 차지하기도 한다.     


(* 그러나 2017년도에는 노르웨이가 1위를 차지하고 덴마크는 2위로 밀렸는데 덴마크의 정치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점점 더 밀려날 것으로 예상된다. 3위는 바로 덴마크 식민지였던 아이슬란드이다.) 그래서 혹자는 ‘행복지수’ 1등이라는 숫자에만 매료되어 그야말로 모든 것이 진짜 1등 국가인 것처럼 덴마크를 칭송하는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 "I am not a Church",   교회는 지금 레스토랑과 갤러리로 사용하고 있다.



국가는 언제나 국민들이 누려야 하는 자유, 국민들이 지키고 따라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 조항을 제외하고 그 어떤 불필요한 제약을 가하는 일이 없도록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이 잘 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개인의 자유는 상대적으로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때 개인들은 ‘휘게’를 외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분명 덴마크 국민들은 ‘휘게’를 외쳐도 좋을지 모르겠다.(* 현재 외교 무대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페로제도와 그린란드에 대한 비인간적 정책 문제는 일단 접어두도록 한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코펜하겐, 진눈깨비가 내리는 도시를 걸으며 거리의 쇼윈도는 한겨울의 한파를 별로 느끼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안데르센의 동화 속 키다리 아저씨 같은 따스한 인상만이 거리에 가득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교회 한쪽 모퉁이에  한스에게드(그린란드 초대 총독이자 선교사)  부부를 기념하는 동판이 붙어 있다.



그런데 문득 코펜하게겐의 이중성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 ‘한스 에게드’를 만나게 되면서 또다시 코펜하겐의 이누이트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8세기 초반부터 수백 년간 지금까지 덴마크 식민지로 있는 그린란드와 페로제도, 그리고 예전 식민지였던 아이슬란드 등 모두 식민지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밖에 달리 평가하기가 힘들다.      


이 말은 덴마크 왕국은 언제나 이들 식민지 국민들에게 자국의 국민과는 차별적인 대우를 했다는 점에서 자국의 ‘휘게’를 위한 밑거름으로 삼은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1953년부터 덴마크의 국민으로 편입을 해버린 그린란드 이누이트들은 오히려 자살률 세계 1위라는 오명을 얻게 되었고 같은 노동조건에서 임금은 덴마크인의 절반이 조금 넘는 수준밖에 받지 못하는 사실 등은 ‘과연 ’ 휘게 ‘를 위한 덴마크의 사회적 자산의 근거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를 암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적으로 자국민과 식민지 출신은 영원히 다룰 수밖에 없다는 평범한 진리에 다시 한번 경각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오늘의 덴마크와 그린란드, 그리고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가 묘하게 대비되는 순간이다. 키에르케고르가 살아있다면 이에 대해 무엇이라 했을지 그 대답이 궁금하다.     



o 짙은 안갯속에 파묻힌 코펜하겐, 시청사 꼭대기에 오르면 시내가 한눈에 다 내려다 보인다.  갖가지 상념들이 속살대는 도시 코펜하겐은 안개가 끼일 때 더 운치가 있는듯하다.  아무 생각없이 그저 눈에 보이는 대로만 바라보면 참 아름다운 도시가 바로 코펜하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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