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덴마크 10
북유럽 국가들이 바이킹 시대의 문화유산을 전시함으로써 바이킹 종주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려는 주도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덴마크가 뜻밖에 전통 민간신앙인 파간(오딘을 추종하는 민간신앙) 사원을 지난해 문을 열었다.
북유럽에서 11세기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면서 모두 불법으로 치부해 버린 민간신앙(Pagan)이었는데 이제 그 오딘의 역사가 새로이 기독교 국가에서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딘의 집“이라고도 부르는 이 사원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 8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 진행된 기독교로 개종이 이루어진 이래 처음 세워지는 것이기에 더욱 그 의미가 남다르다.
덴마크에서 성인 세인트 캐누(Sankt Knud)를 위한 시성식이 1188년 거행되면서 가톨릭이 파간(pagan)을 대신해 자리를 잡는다. 그 후 덴마크에서는 예전의 민간신앙은 몇 세기에 걸쳐 금지된다.(* 북유럽 다른 나라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제 오딘을 추종하는 오딘 사원이 문을 열게 되자 더 이상 금지시키지 못하고 슬며시 덴마크 문화의 하나로 허용하기에 이른다.
오딘 사원이 문을 열자 덴마크에서 기독교가 아니라 민간신앙을 추종하는 사원이라는 점 때문에 적지 않은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거의 천 년 만에 허용되는 오딘 사원이다 보니 더 이상 금지시킬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덴마크에서 뜻하지 않게, 그것도 크누트 대왕의 직계 후손이 오딘 사원을 세우고 문을 열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많다.
덴마크의 전설적인 왕 크누트의 윗 선조가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금지시킨 ‘파간’을 그 후손이 다시 ‘허용’ 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딘의 집’ 개장은 어쩌면 덴마크가 “오래된 길을 가기 위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오딘의 집(Valheim Hof에 만든 오딘 신전, 이곳은 오덴세에서 남쪽으로 20여Km 떨어진 곳이다.) 신전 개장에 관한 의미와 논쟁 등에 대한 것은 필자가 쓴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6), 바이킹, 신화, 그리고 역사”를 참조할 것.
* 2016년 문을 연 오딘 신전(그는 이곳을 발할라라 부르고 싶다고 했다.)
오딘의 집 주인장이자 파간 교주 짐 링그빌드(Jim Lyngvild), 그의 직업은 파간(Pagan) 교주일 뿐 아니라 덴마크에서 잘 나가는 디자이너이자 사업가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제법 알려진 사업채도 몇 개 가지고 있다. 향수나 화장품 같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품목들이나 선글라스 같은 물품들, 심지어 주류에도 손을 대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언제나 가능성의 범주에 있다. 그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하고 모험심을 자극하는 모든 대상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의 대상이다. 그는 자신의 심장이 이끄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세계의 여러 다른 문화를 경험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열린 생각을 하는 덴마크인이다.
짐의 가계는 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1086년에 서거한 덴마크의 전설적인 왕 크누트(Knut the Holy)의 29대 후손이다. 그리고 그의 21대 선조는 1204-1263년에 덴마크를 다스린 하콘 왕(Haakon Haakonson Birkebeiner)이다. 분명 그는 대단한 선조의 후예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삶에서 역사는 제일 중요한 요소이다. 특히 바이킹과 관련된 역사는 그의 디자인 작업과 스토리텔링을 위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발하임 호프(Valheim Hof)에 있는 바이킹 성채 라운스보르(Ravnsborg)이다. 또한 이곳에 그는 북유럽 신들을 모시기 위해 스칸디나비아 어디에도 없는 신전을 2016년에 마련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북유럽 신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람들에게 바이킹에 대한 전설을 들려주고 선조들의 무용담을 들려주기도 한다.
* 파간(Pagan) 교주로서 뿐 아니라 사업가로서의 수완도 뛰어나다. 그는 신화가 단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아이디어의 보고라고 말한다. 자신의 외모도 가능한 신화 속 인물처럼 분장하기를 즐겨한단다.
그의 사업수완을 볼 수 있는 예가 하나 있다. “The Rising of the Valkyrie"라는 주제로 패션쇼를 준비하고 관계자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바이킹 시대에 바이킹 전사들이 신봉했던 북유럽 신화, 특히 바이킹 전사들이 추종하던 오딘과 그의 심부름꾼 발키리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의상을 만들고 발키리들이 패션쇼를 벌이고 있는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히 신화가 현실에 접목되는 순간이다.
사람들은 북유럽 신화의 지배자 오딘과 그의 멋진 심부름꾼 발키리를 말하는 순간 이미 그의 말대로 “패션(fashion)은 열정(passion)”이 된다. 그의 패션쇼는 이제 성공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를 본 중국 TV 관계자가 그를 초청해 중국에서 유명한 TV쇼 "Muse Dress"에 출연을 시켰기 때문이다.
모두 네 팀이 출연해 자신의 ‘뮤즈’를 위해 준비한 의상을 비교 경쟁하는 프로그램인데, 여기서 그는 최종 승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가 자신의 모델을 위해 준비한 의상들이 9백만 달러 이상으로 팔려나가는 쾌거를 이룬다. 그가 얻은 유명세는 당연히 덤이었을 테고 말이다. 더구나 수입금 전액을 중국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기부를 하자 중국 내 그에 대한 평판과 인지도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졌을 것이다.
살아가는 방식을 짐 링그빌드처럼 종교와 신화를 이용하면서 현실과 신화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한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자유인의 모습이 아닐까?
* 짐과의 인터뷰는 지난 9월 2일 그의 성채에서 이루어졌다. 늦은 시각에 짧은 만남이었지만 인터뷰에 응해준 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 발키리(Valkyrie)는 북유럽 신화의 절대자 오딘의 명을 수행하는 일을 하는데, 특히 전투에서 죽은자들을 오딘이 머무는 발할라 신전으로 데려오는 역할을 한다. (* 발키리에 관한 더 자세한 것은 필자가 쓴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아이슬란드의 발키리 비요크 / 아이슬란드 10”을 참조할 것.)
*왼쪽: Valkyrie(Herman Wilheim Bissen, 1835), 뉘 칼스버그 박물관 소장(코펜하겐)
*오른쪽: 발할라로 죽은 자들을 데려오는 발키리들(Lorez Frolich. 1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