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덴마크 11
리베(Ribe)는 덴마크 유틀란트 반도 중간지점 서쪽 해안가에 있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자동차로 3시간이면 닿는다. 리베는 덴마크 제일 서쪽 끝에 있기 때문에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리베는 바덴해(Wadden Sea)와 직접 연결되어 있는 지리적 위치 덕분에, 바이킹 시대인 8세기 무렵부터 상업도시로 발달해 왔다. 리베는 덴마크 왕국의 당시 서쪽 관문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러나 교역의 중심지로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던 리베가 16세기 말에 이르게 되면 전염병이 창궐하고 홍수와 화재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점차 도시의 기능을 상실하고 급기야는 도시 기능이 마비되기에 이른다. 특히 1580년에 발생한 화재는 리베가 그동안 가꾸었던 화려했던 도시의 면면들은 물론 수많은 역사적 유물들까지 불태우고 만다.
리베는 17세기 중반에 스웨덴과 전쟁을 치르면서 인근에 있던 리버후스 궁전(Riberhus Castle)마저 파괴되고 만다. 이 궁전은 체코 출신 왕비, 다그마르(Queen Dagmar)가 덴마크의 발데마르(Valdemar) 왕과 결혼한 후 거주하던 곳이었는데 현재는 궁전터만 남아있다.
* 저녁에 야경꾼과 함께 리베 시내를 걸으며 야경꾼이 되어보는 것도 특별한 재미가 있다.
리베의 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렘브란트의 ‘야경’이라는 작품을 떠올리게 된다. 리베의 상징이자 도시의 파수꾼인 야경꾼(Night Watchman)들이 이 도시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해 질 무렵 야경꾼의 지참물인 램프와 쇠망치가 붙은 긴 창을 들고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고 지난날의 화재와 홍수로 인한 피해를 두 번 다시 겪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들도 현대적인 의미의 경찰이 등장하자 오랜 세월 도시를 지켜온 야경꾼들의 역할도 막을 내리게 된다. 그래서 1902년 야경꾼들은 해체되는데 다행히 1932년에 리베 시가 관광자원으로 ‘야경꾼’을 다시 부활시켰다.
오늘날 야경꾼들은 예전 복장 그대로 리베의 골목길을 순찰하면서 예전처럼 똑같이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함께 걷는 이들(관광객)에게 리베의 역사와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노래도 불러 준다. 야경꾼과 함께하는 ‘야경꾼 투어’를 하면서 늦은 밤 리베 거리를 걷다 보면 다시 중세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야경꾼 투어 참가는 무료이다. 매일 오후 8시와 10시에 출발하는데 40분 정도 소요된다.) 리베에 가야 할 이유가 어쩌면 야경꾼들과 함께 리베를 돌아보며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덴마크에서 가장 오래된 리베 성당(지금은 루터교 교회로 사용 중이다.)의 앞뒷면
* 오래되었다는 것은 낡았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성당 내 벽화 중 하나(왼편 기둥벽면에 보이는 그림), 리베 성당 내부
*왼쪽: 리베의 개혁을 주도한 초창기 가톨릭 주교 한스 타우센
* 오른쪽: 시인이자 덴마크어로 된 찬송가를 작곡하고 덴마크어로 성서를 번역한 한스 아돌프 브로르손
* 초기 성당을 지으면서 달았을 성당문 손잡이, 어쩌면 이 손잡이는 덴마크에서 가장 오래된 청동 손잡이 중 하나일 텐데, 이 문을 매일 여닫은 사람은 누구였을까? 또 저 여인은 무슨 죄를 지어 저리 매달려 있는 걸까?
리베 성당(Ribe Cathedral)은 리베 시내 한복판에 있다. 당시 파간(Pagan) 신도였던 덴마크 왕 호릭 1세(Horik I)의 허가를 받고 함부르크 출신의 선교사가 덴마크에 최초로 가톨릭 성당을 세운다. 바로 그때 지은 성당은 목조건물이라 얼마 못가 화재로 소실되고 13세기에 다시 재건축을 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래도 리베 성당은 여전히 덴마크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리베는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를 지닌 스칸디나비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다. 그런데 최근에 발견된 유물들을 분석한 결과 이미 기원전 700년 경에 시장이 존재했음을 시사하는 다수의 은화가 발견되어 리베는 원래 생각한 것보다 훨씬 이전에 형성된 오래된 도시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리베 성당은 마치 리베의 과거 위용을 증명하듯 리베 시내 한복판에 우뚝 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리베 성당 바로 옆에는, 바이킹 주택인 롱하우스 형태의 건축물 캐논 수도원(Kannikegaarden)을 포함해 주교관 등 다양한 중세시대 건축물들이 바이킹 시대의 리베를 재현하고 있다. 도시를 걷다 보면 어느새 중세의 거리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하게 한다.
바이킹 시대가 전개되던 8~10세기에 덴마크 인들은 주로 오딘과 토르, 프레이야와 같은 북유럽 전통신들과 여신들을 숭배했다. 그러나 9세기 중반 855년 경 가톨릭 신부인 안사르(Ansgar)가 파간(pagan) 신도인 덴마크 왕 호릭(Horik)에게서 리베에 있는 땅을 하사 받고 이곳에 성당을 짓는다. 안사르 신부가 덴마크에서 드디어 가톨릭 전파를 위한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그 후 덴마크의 유명한 하랄드 블루투스 왕이 즉위를 하면서 서기 96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옐링(Jelling) 스톤’(* 블루투스 왕이 옐링에 설치한 루네스톤)에 덴마크 인을 기독교로 개종시킬 것임을 천명한다. 그 후 덴마크에서 파간은 이교도로 전락하고 가톨릭이 국교로 자리를 잡아간다. 동시에 가톨릭 세력이 확산되면서 바이킹들의 해상활동도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된다.
* 리베 칸니케고르드(Ribe Kannikegård: Kannikegården: 캐논 수도원)
리베 성당 맞은편에 있는 이 건물은 오래된 덴마크 역사의 특징을 잘 살린 멋진 건축물이다. 이곳은 리베의 캐논 수도원인데 가톨릭 교구에 속해 있다. 내부는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야 볼 수 있다. 한편, 이 건물은 2017년도 마이스 상(Mies Award)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이 상은 유럽 건축물 중 지난 2년간 진행된 40개의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심사를 한다. 격년제로 수여하는 이 상은 1987년 유럽연합과 유럽집행위원회, 그리고 유럽의회의 추천으로 바르셀로나 출신 디자이너 마이스 반 데로(Mies van der Rohe)가 주도해 설립했다.
서기 700년경 동쪽의 비잔틴 제국과 서쪽의 프랭크 왕국이 가장 강력한 유럽의 지배 세력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양대 세력이 유럽을 지배하는 가운데 본격적으로 바이킹 시대의 주역인 북유럽인들이 유럽 각지를 점령하기 시작해 유럽의 국제적인 세력판도를 바꾸어 놓는다.
7세기 말 바이킹 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면서 바이킹들은 유럽 여러 나라에 거점 도시들을 만들어 나간다. 바이킹들의 출현 목적이 처음에 기독교화를 저지하고 오딘이라는 북유럽 절대자를 신봉하는 파간(Pagan) 종교를 유지, 전파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초창기 바이킹들의 위세는 가히 죽음을 불사할 정도였다.
바이킹들의 행위와 노력에 대한 결과에 대해 여러 평가가 내려지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바이킹들의 노력으로 인해 긍정적인 결과 역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이킹 네트워크,를 형성함으로써 동방과 서방 세계가 하나로 엮이는 효과를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소위 ‘바이킹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점은 당시로서는 실크로드이래 획기적인 세계화 현상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동방에서 흘러온 문화가 서방으로 전파되면서 또 다른 형태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문화교류의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 붉은 벽돌로 지은 집들이 생각보다 많이 보였다. 그래서인지 도시는 붉은 느낌이 은은히 배어있는 중세도시의 분위기를 더한다.
* 왼쪽: 리베 인근의 교회(Seem Kirke), 오른쪽: 바이킹 박물관(귀한 보물들도 여럿 볼 수 있다.)
바이킹들이 단지 원정을 통해 해적처럼 금은보화 약탈만을 일삼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고 삶을 영위하기 위한 방편으로 무역거래를 중시하고 있었다는 점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리베는 바이킹들의 중요한 거점 도시이자 상업도시로 부상을 한 점에서 중요하다.
‘리베’는 독일 북부 유틀란트 반도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북쪽 노르웨이 등지와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지리적 역할을 하기에 거점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당시 잉글랜드와 거리상 가장 가까운 지역이기도 했기에 덴마크의 잉글랜드 점령과 지배를 용이하게 해주는 전초기지로서도 최적의 장소였음을 알게 한다.
리베를 거쳐 북쪽에서 전해진 물품들, 예를 들면 노르웨이에서 가져온 대구 같은 값싼 어패류들을 남쪽으로 전달하고, 네덜란드 해안가를 따라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까지 이어지는 해안가 도시들을 통해 유럽 각지로 수송할 수 있는 거점도시 역할을 리베가 톡톡히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리베는 중간 기착지 일뿐 아니라 거점 도시로서의 도시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리베는 다른 도시들과 달리 이미 7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무역거래를 하기 위한 거점도시로서 그 기능이 강조되면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유럽의 거점 도시들은 상호 간에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이를 통해 무역과 상거래를 통제하기도 했다. 도시가 발달하기 위해 독자적인 발전을 이룬 경우는 거의 없다. 다른 도시와의 연계 속에서 발달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도시들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네트워크를 이루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
* 리베 미술박물관(왼쪽)과 전시 작품 중 일부(가운데와 오른쪽)
* 유틀란드의 레고 도시 빌룬드(Billund)는 리베에서 40Km 정도 떨어져 있다. 레고 공장은 물론 레고랜드(Legoland)를 4,200만 개의 플라스틱 레고 블록으로 10헥타르의 부지에 조성해 놓았다.
* 오딘은 언제나 세상 소식을 전해주는 두 마리 까마귀 후긴(Hugin)과 무닌(Munin), 그리고 오딘을 지켜주는 두 마리 늑대와 함께 한다. 이런 오딘의 조형물이 발견이 된다는 것은 오딘을 추종하는 세력이 그만큼 많았고 오딘의 조형물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부적처럼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왼쪽: 리베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오딘 조형물
*가운데: 2008년도 말에는 덴마크 동쪽에 위치한 레이레(Lejre)라는 곳에서 발굴된 은으로 만든 오딘 조각상을 발굴했다.(오딘의 부인 프레이야의 조형물로 보인다.)
* 스웨덴 남쪽 요틀랜트 섬 레비드(Levide)라는 곳에서 6~7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4cm 정도 크기의 오딘 조형물을 발굴했다.
* 오른쪽: 스웨덴 남쪽 요틀랜트 아스카(Aska)에서 4cm 정도 크기의 은으로 만든 오딘 조형물을 발굴했다.
* 왼쪽: 덴마크 동쪽에 있는 핀 섬(Fyn Island) 메싱에(Mesinge)에서 가까운 곳에서 5cm 정도 크기의 오딘 조형물을 발굴했다. 이 조형물은 다른 곳에서 발견된 오딘 조형물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
* 오른쪽: 비슷한 유형의 오딘 조형물이 러시아 스타라야(Staraya)라는 곳에서도 발견되었다. 다른 곳에서 발견된 것과 비슷한 크기의 오딘 조형물인데 8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