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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Nov 08. 2017

베르겐에서 만난 뭉크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노르웨이  3


1. 비에 젖은 도시 베르겐


늦은 저녁 베르겐 공항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한다. 차창밖은 빗줄기가 억세게 내리고 있다. 1월 말의 베르겐 날씨는 겨울답지 않게 눈이 아니라 비가 내린다. 마치 봄비처럼, 그것도 주룩주룩. 무척이나 을씨년스럽다.


멕시코만 난류의 영향으로 이곳 날씨는 일 년 내내 온화하고 겨울철에도 기온은 영상이다. 그래서 일 년에 두세 달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비가 내린다고 한다. 유럽에서 가장 비가 많이 오는 곳 중 하나라는데 1월 말 베르겐에 눈 내린 경치를 고대했던 나는 그만 비에 젖은 생쥐꼴이 되고 말았다.


비에 젖은 도시 베르겐

다음날도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린다. 그래도 시내 구경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밖으로 나선다. 바람까지 불어대는 날씨는 안경에 와이퍼라도 달아야 할판이다. 앞이 잘 안 보이니 사진은커녕 걷기에도 숨이 찰 정도다. 간신히 포구가 있는 곳으로 가니 시내 지도를 얻을 수 있는 안내소가 나온다. 그곳에서 비를 피할 겸 잠시 자료들을 뒤적이는데 문득 눈에 들어오는 정보가 눈에 띈다.


뭉크 작품들을 베르겐 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아닌가. 비가 내리고 있으니 케이블카를 타고 산으로 올라가거나 배를 타고 피요르드 관광을 하는 것 모두 귀찮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무조건 뭉크가 기다리는 갤러리로 발길을 향한다.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은 15세기를 전후해 한자동맹에 가입해 북유럽 해상무역 거점도시로 번성한다. 당시 노르웨이 수도는 베르겐이었다. 그러나 20세기를 맞으며 크리스티아나(현재의 오슬로)가 커지자 노르웨이 수도를 베르겐에서 크리스티아나로 옮기고 이름도 오슬로라고 바꾼다. 


그 덕분에 베르겐에는 여전히 옛 수도다운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베르겐 포구 근처에 보이는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모두 그때의 건축물들이다.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박물관과 기념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중 뭉크가 기다리는 건물을 수소문 끝에 찾아냈다. 어느새 온몸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베르겐의 구시가지



2. Rasmus Meyer Collection


‘Rasmus Meyer Collection’, 베르겐에 있는 예술박물관 이름이다. 베르겐의 거상 메이어(R. Meyer: 1858–1916)가 유럽과 오슬로를 오가며 노르웨이 작가들 작품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리고 1924년 베르겐 예술박물관을 일반에 공개한다. 한 사람의 집요한 노력으로 노르웨이의 명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예술을 흠모하는 마음을 담은 노력은 유명 작가의 작품 이상으로 빛난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 후세에 편히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건 그야말로 축복이다.


베르겐 예술박물관은 작품들을 3개의 건물에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그중 3번째 건물 ‘KODE 3’에 뭉크를 비롯해 19~20세기 노르웨이 주요 화가들, 특히 노르웨이 화단의 대부격인 달(J. C. Dahl: 1788-1857)의 작품들 대부분을 볼 수 있다. 다른 곳은 가구와 현대 노르웨이 예술가들 작품들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베르겐 예술박물관 KODE 3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17세가 되던 1880년부터 2년간 뮌헨에 있는 왕립 디자인학교를 다닌다. 이때 크리스티안 크로흐(Christian Krohg)의 지도를 받는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뭉크의 ‘아침’(1884) 같은 초기 작품들이다. 그 후 뭉크는 1885년부터 파리에서 생활을 하는데, 파리에서 뭉크는 새로이 자신만의 시각적 언어를 가지고 인간 내면의 깊이와 분위기를 표현하려 고심을 한다. 


이때 뭉크 작품에 나타난 가장 특징적 현상은, 그의 작품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독특한 시각적 표현들, 즉 뭉크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선과 독특한 형태의 색, 형상들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특징들은 ‘Summer Night’(Inger on the Shore, 1889)라는 작품에서부터 볼 수 있다. 오슬로의 아스가르드 해변에서 그린 ‘피요르드 해안선’ 역시 뭉크가 어떻게 자연풍경을 가슴에 담고 변해가는 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1908년 뭉크는 신경쇠약 치료차 자발적으로 코펜하겐에 있는 야콥슨(Dr. Jacobson’s Clinic) 병원을 찾는다. 1909년에 그린 자화상은 바로 이 병원에서 그린 것이다. 이 그림에서 뭉크는 새로운 낙관론을 드러낸다. 열린 창문 앞에 앉아 강한 색을 사용해 굵은 질감으로 칠을 했다. 무언가 전율을 느끼게 하는 그림이다. 지금까지 병약했던 느낌은 어디에도 없다. 


1900년대 초반 뭉크의 그림들은 그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가 즐겨 그리던 죽음 같은 소재들과 병약함, 질투 같은 것들은 보다 긍정적인 삶의 모습들로 바뀐다. 이제 그것들은 더 이상 그의 소재가 아니다. 어느 틈엔가 뭉크는 독일 바이탈리즘(Vitalism)에 고무되어 있었다. 그래서 태양의 긍정적인 느낌을 그대로 담은 일광욕, 신선한 공기, 건강과 음식, 그리고 운동 같은 것들을 그리기 시작한다. 이것들은 그동안 뭉크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주제들이었다.


* 뭉크의 사진과 뭉크 초상화(1895/ 석판화)


한편, 뭉크는 목판화, 석판화, 유화, 심지어 동판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뭉크는 이들 기술을 통해 3가지, 즉 빛과 구도, 그리고 색에 대한 새로운 효과를 꾸준히 탐구해 나간다. 특히 그의 목판화 기술은 예전에 일상적으로 보았던 목판화들과는 분명 많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의 그림들을 보면서, 문득 그에게 붙여진 ‘정신병적 쇠약함’이란 고정관념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뭉크를 팔아먹는 ‘장사치’들이 사용하는 ‘좋은 수식어’라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다. 


※ 뭉크 관련 내용은 ‘라스무스 메이어 컬렉션’ 제공 자료에서 발췌




※ 여기 게재하는 작품들은 모두 뭉크의 작품만을 선정했다. 쉽게 볼 수 없는 뭉크의 초기 작품들이라 더욱 귀한 느낌이다. 박물관측 협조로 플래시 없이 촬영했기에 일부 작품사진에 빛 반사 현상이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실내조명상태가 부적절해 나타난 현상이니 양해 바란다.


1: Madonna, 1902, Lithograph.   2: The Sick Child I, 1896, Lithograph

1: Madonna-Eva Mudocci, undated, Lithograph    2: Jealousy, 1896, Lithograph    

3: Man's Head in Woman's Hair, 1896, Woodcut.

1: 절규, undated, Drawing      2: 그랜드 카페의 입센, 오슬로 1902, Lithograph 

1: Moonlight I, 1896, Woodcut.  2: The Kiss, 1895, Etching.  

3: Death in the Sickroom, 1896, Lithograph  

Separation II, 1896, Lithograph   2: In the Man's Brain, 1897, Woodcut

1: Halvard Stub Holmboe, 1887, Oil on canvas   2: Karen Bjolstad, 1885-86, Oil on canvas

3: Inger in Sunshine, 1888

1: Andreas by the Window, 1883, Oil on canvas    2: Separation I, 1896, Lithograph   

3: Morning, 1884, Oil on canvas 

1: Landscape, 1890, Oil on canvas   2: Moonlight on the Beach, 1892, Oil on canvas 

3: Sunday in Asgardstrand, 1891, Oil on canvas

1: Summer Night. Inger on the Beach, 1889, Oil on canvas   

2: Woman in three stages, 1894, Oil on canvas

1: Spring Day on Karl Johan, 1890-91, Oil on canvas   2: Seated Young Woman, 1892, Oil on canvas   3: Evening on Karl Johan, 1892, Oil on canvas

1: House in Moonlight, 1893-95, Oil on canvas   2: From Nordstrand, 1891, Oil on canvas

3: Woman Combing her Hair, 1892, Oil on canvas

1: Summer Night, 1893, Oil on canvas   2: Melancholy, 1894-96, Oil on canvas

1: Four Stages of Life, 1902, Oil on canvas   2: Seated Nude with her Back Turned, 1896, Oil on panel   3: Nude in Profile towards the Right, 1898, Oil on canvas

1: Man and Woman, 1898, Olje pa lerret   2: Jealousy, 1895, Oil on canvas

1: At the Deathbed, 1895, Oil and tempera on canvas   2: Marie Helene Holmboe, 1898, Oil on canvas   3: Female Portrait, 1898-99, Mixed media on canvas

1: Children Playing in the Street in Asgardstrand, 1901-03, Oil on canvas   2: The Woman on the Jetty, 1902-03, Oil on canvas   3: Bathing Boys, 1904-05, Oil on canvas

1: Olga og Rosa Meissner, 1907, Oil on canvas   2: Winter Landscape from Thuringen, 1906, Oil on canvas   3: Self-Portrait in the Clinic, 1909, Oil on canvas

1: Walter Rathenau, 1907, Oil on canvas   2: Morning Yawn, 1913, Oil on canvas

3: Weeping Woman, 1907-09, Oil on canvas

1: From Asgardstrand, undated, Oil on canvas   2: Mrs. Schwarz, 1906,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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