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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Nov 08. 2017

베르겐의 작은 거인, 그리그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노르웨이  4


1. 솔베이지의 노래가 들리는 곳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 하노라 늘 고대 하노라


애잔한 음률로 시작하는 솔베이지 노래, 누구나 한 번은 학창 시절 불렀을법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그리그(Edvard Grieg: 1843.6.15.~1907.9.4.)를 생각하면 먼저 이 음악과 함께 자연스레 아름다운 노르웨이 풍경이 떠오른다. 


그리그는 베르겐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그리그가 13살 되던 해 독일 라이프치히로 유학을 떠나 1858년부터 4년간 슈만과 멘델스존의 도시에서 낭만주의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졸업 후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작곡가들과 교류하면서 민족주의 음악에 심취하게 된다. 


공연장 곁에 있는 그리그 동상

그리그는 차이콥스키나 드보르작 같은 음악가들과 동시대에 살았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섬세한 서정시인 같은 면모를 지녔다. 그의 키가 153cm라는 사실은 은연중 그의 성격과 특징을 상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졸업한 그리그는 잠시 귀국을 하는데, 이때 그리그는 같은 노르웨이 출신의 동년배 작곡가 노르드라크를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눈다. 노르웨이 국가를 작곡한 노르드라크는 그리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한편, 그리그는 소프라노 가수이자 사촌 누이동생인 니나 하게룹(Nina Hagerup)과 결혼(1867년)을 한다. 그동안 그리그는 니나와 로마를 여러 번 방문해 대작곡가가 되기 위한 꿈을 키워왔는데 로마에서 자신의 가곡을 불러줄 가수를 찾지만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실망을 한다. 하지만 그리그는 자신의 곡을 불러줄 성악가는 바로 니나라고 생각하고 니나를 위한 작곡을 시작한다. 


* 그리그 생가 거실에 있는 니나의 초상화와 그리그 흉상



다행히 로마에서의 공연은 성공을 하고 두 사람은 결혼을 한다. 그리고 이듬해에 니나와 함께 코펜하겐으로 가서 여름을 보내며 딸을 낳는다. 그 사이 덴마크 음악계의 거장 닐스 가데와 교류를 갖으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게 되는데, 이때 작곡한 곡이 리스트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혼'이라고 극찬한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 Op.16‘이다. 오늘날 피아노 협주곡으로서 최고의 찬사를 받는 곡 중 하나이다.


이곡에 대해 굳이 노르웨이 민족음악에 대한 의지를 담은 대작이라는 평 따위는 필요 없을 듯싶다. 너무 많이 알려져 있다는 이유 말고도 이 곡은 이미 1970년 작 ‘Song of Norway’라는 영화의 배경음악이자 주제곡으로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영화 참조: https://www.youtube.com/watch?v=7xdJAsJbwGc )


여하튼, 노르웨이의 전통음악과 민속 소재에 대한 그리그의 정열과 신념은 더욱더 노르웨이 전설 속 이미지를 찾아가게 되었고 노르웨이 대자연 역시 그의 음악에서 주요한 소재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특히 노르웨이 민요에 깃들어 있는 화음으로부터 그리그는 신비로운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만들려 한다. 그러던 순간 입센의 부탁으로 악극 페르귄트를 작곡하게 된다. 드디어 그리그의 ‘페르귄트’(1876 초연)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이다.


페르퀸트에 등장하는 트롤


입센의 민속설화를 소재로 작곡한 솔베이지 노래는, 환상적이며 운명을 노래한 흥미진진한 악극이다. 그 줄거리는, 집을 나선 페르귄트가 인도와 아메리카 대륙 등을 여행하며 불가사의한 일들을 겪고, 벼락부자가 되어 돌아오는 길에 풍랑을 만나 무일푼으로 고향에 돌아와 솔베이지 품에 안겨 숨을 거둔다는 이야기이다. 애잔하게 들리는 숲 속 새들의 노랫소리, 이때 등장하는 페르귄트와 솔베이지. 누구나 기억하는 멜로디는 여전히 우리를 달뜨게 한다.


그 후 그리그는 오슬로 음악원 부원장, 필하모니아 협회의 지휘자 등을 겸하면서 작곡에 몰두한다. 1867년에는 오슬로 음악협회를 조직하여 7년간 지휘자로 활약했고, 1874년부터는 고향 베르겐과 오슬로를 오가며 음악생활을 한다. 


1880년 이후에는 고향인 베르겐으로 이사를 하고 1907년 지병인 결핵이 심해져 64세로 숨을 거두게 된다. 그리고 1928년 5월 그리그가 살던 집은 그리그 박물관이 되어 다시 태어난다. 그의 유골은 작업장 아래에 있는 절벽 한가운데 안치해 놓았다.


* 그리그 기념관 조감도(2번이 입구 쪽)와 그리그 기념 조형물 




2. 거인의 집 트롤하우겐


‘트롤하우겐’, 이곳은 베르겐에 있는 그리그의 생가이다.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거인족 트롤이 사는 집이란 뜻을 가진 트롤하우겐, 153cm의 체구를 가진 그리그는 어쩌면 거인이 되고 싶었던 게다. 아니 작지만 그리그는 분명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거인처럼 위대한 거인이다. 


그의 집을 찾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려니 조금은 힘들다. 30여분이나 헤매면서 가는데 어디에서도 이곳을 찾아가는 이정표를 볼 수 없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트롤하우겐 주소 하나만 가지고 비 오는 날, 그것도 주룩주룩 내리는 날 그리그 생가를 찾아가려니 좀 거시기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어물어 겨우 도착한 트롤하우겐은 다른 방문객도 없이 안내인 혼자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안내인은 내게 이것저것 묻더니 따라오라며 우산을 들고 안내소를 나선다. 안내소에서 5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그리그 생가는 언제나 안내인과 함께 가야 한단다. 나만을 위한 안내를 해 준다니 묘한 기분을 자아낸다.


생가는 온통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있다. 생가 곁에는 푸른 잔디를 입힌 노르웨이 전통가옥 형태로 지은 음악당(189석)도 있다. 1985년부터 문을 연 이 음악당은 여름 내내 음악회가 열린다. 집 옆으로 난 작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그리그가 작곡을 할 때 이용하던 작은 오두막이 나오는데, 그 안에 피아노 한 대와 긴 의자 등이 놓여있다.


* 그리그 생가와 2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실내 공연장, 바다를 향해 바위틈 사이에 건물을 지었다. 

* 그리그가 작곡을 할 때 사용한 통나무집, 바다를 향해 책상이 놓여 있고 그 곁에 피아노와 소파가 있다. 



트롤하우겐은 그리그가 오슬로에서 돌아와 니나와 여생을 보내기 위해 마련한 2층짜리 집이다. 집 안에는 그리그가 살아있을 때 쓰던 것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작곡에 사용하던 피아노와 오선지, 낡은 만년필 등도 그가 쓰던 장소에 그대로 있다. 


그리그와 니나는 생가 우측으로 난 작은 길을 내려가면 보이는 절벽 가운데 안장되어 있다. 바다가 보이는 곳에 묘를 마련해 달라는 그의 유언을 따라 바다가 보이는 절벽 한가운데를 파내고 그리그 부부를 안치했다. 부부는 그곳에서 나무 사이로 보이는 바다를 내다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 그리그와 니나가 묻혀있는 절벽 바위, 바다가 보이는 절벽 중간을 파내고 그 안에 부부를 안치했다.

* 그리그가  아침마다 걸었던 집 주변 산책길, 바다로 이어진 산책길 역시 그리그가 자주 찾던 곳인데 그가 묻힌 절벽에서 맞바로 보이는 곳이다.




* 매년 봄이면 그리그 생가에서 베르겐 음악제가 열린다. 베르겐 음악제는 그리그가 1898년부터 시작했는데, 1953년부터 베르겐 축제로 규모를 확대해 지금까지 열리고 있다. 음악, 춤, 문학, 비주얼 아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북유럽 문화 축제이다. 매년 4월 말에서 5월 초까지 2주에 걸쳐 트롤하우겐을 비롯한 베르겐 시내 곳곳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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