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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Nov 10. 2017

절규의 도시 오슬로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노르웨이  6


1. 자연의 위대한 절규


오슬로를 갈 때에는 맑은 날을 골라 갈 일이다. 그래야 '절규'를 잘 볼 수 있다. 박물관에 있는 뭉크의 작품 ‘절규’가 아니라 뭉크가 보았던 오슬로 항구의 '핏빛 같은 절규’ 말이다. 그걸 보지 못하고 뭉크의 절규를 보았다고, 입센의 자유를 알게 되었다고, 그리그의 페르귄트를 들었다고 하지 말아라. 모두가 신화 속 거인들이 뿜어내는 불같은 열정이 만들어내는 판타지가 바로 ‘절규’이니 말이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그중에서 가장 긴 해안을 가지고 있는 나라 노르웨이. 일 년 중 3개월 정도만 해를 볼 수 있고 나머지는 언제나 컴컴하고 추운 나라. 태양보다 비를 더 많이 만나게 되고 푸른 하늘보다 흰 눈을 더 많이 만나는 나라. 그래서 스칸디나비아의 수호신 스카디처럼 산악지방을 돌아다니며 스키라도 타야 직성이 풀리는 나라, 자칫 무료함과 우울증에 빠져들 수 있는 음습한 기후와 산악지형은 우리를 ‘절규’하게 만든다.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피카소를 누르고 세계 최고 경매가를 세운 뭉크의 ‘절규’, 무엇이 ‘절규’를 절규하게 만든 것일까? 경매에 나온 작품에는 뭉크가 느꼈던 감정을 시로 써서 액자 아래에 붙여 놓았다.


절규 /  뭉크


나는 친구 두 명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석양이 깔렸고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곤 멜랑꼴리 한 기분이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멈춰 섰다.

검푸른 색 위에서 죽을 정도로 피곤했다.

피오르드와 도시는 피와 불 사이에 걸려 있었다.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고 난 뒤에 남았다.

극도의 불안 속에 떨면서…

그 순간 난 자연의 위대한 절규를 느꼈다.

(이 시는 1892년 1월에 남긴 일기이다.)


그런데 이 절규는 예언이라도 하듯 그의 말대로 “피오르드와 도시는 피와 불 사이에 걸려 있었다.” 2011년 7월 22일 오슬로 정부청사에서 폭발물을 터뜨려 8명을 숨지게 하고 인근 우토야 섬에서 열린 노동당 청소년 캠프에서 누군가 총기를 난사해 69명을 숨지게 한 희대의 살인극이 벌어졌다.

'절규' 개인소장품 액자 아래에 붙어 있는 뭉크의 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슬픔과 불안, 그리고 기쁨과 환희는 어쩌면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뭉크의 ‘절규’는 역시 오슬로 항구의 핏빛 같은 저녁노을을 보고 난 후 보아야 그 기분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오슬로에서 비 오는 날 뭉크의 절규를 박물관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아쉬운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 피빛으로 물든 오슬로 항구의 저녁노을

* 오슬로 항구와 시청 앞 공원



2. 뭉크의 절규와 우리의 절규


1868년 겨울, 뭉크의 모친은 8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결핵으로 죽음을 맞는다. 그때 그녀의 나이 겨우 30세였다. 그녀는 일곱 살의 소피에, 여섯 살의 에드바르드, 세 살의 안드레아스, 두 살의 로이라, 11개월 된 잉게르 이렇게 다섯 아이를 두고 갔다. 뭉크가 여섯 살의 나이로 맞게 된 엄마의 죽음, 그런데 뭉크가 13살이 되던 해에 그동안 엄마를 대신해 오던 소피에 마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어린 시절 뭉크는 분명 내면에 적지 않은 혼돈과 심리적 우울증을 겪으며 유아기를 보냈으리라는 걸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뭉크가 청년이 되면서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파리로 간 이후부터 그의 삶의 궤적은 분명 달라진다. 우선 뭉크가 파리에서 보았던 것은 여러 대가들을 만나면서 ‘그림은 살아있는 인간을 그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뭉크는 오슬로로 돌아와 극작가 입센과 노르웨이 소설가 크누트 함순 등과 사귀며 그들의 사상에 심취하며 그들과 사회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특히 헨리크 입센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친밀감을 느끼고 입센의 작품에 삽화를 그리기도 한다. 뭉크는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통해 끊임없는 생명을 추구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결코 절망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예견하게 된다.


뭉크가 24살이 되던 1892년 9월 24일, 뭉크는 베를린에 거주하고 있는 노르웨이 출신의 화가 아델스텐 노르만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전시 초청장이었다. 독일에서의 작품전시회는 성공을 거둔다. 그 후 뭉크는 1893년부터 1908년까지 15년간 독일에서 생활하며 유명 화가로 자리를 잡는다.


* 아래 작품들은 모두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것들 중에서 뭉크의 작품들만 골라 게재한다.

1) Madonna, 1894-95   2) Inger in Black and Violet, 1892   3) The Day After, 1894

1) The Girls on the Bridge, 1901   2) Man in the Cabbage Field, undated   3) Death in the Sickroom, 1893

1) Self-Portrait with the Spanish Flu, 1919   2) Rue Lafayette, 1891   3) The sick child, 1885-86

1) Mother and Daughter, 1897-1899   2) Dance of Life, 1899-1900

1) Seated Nude, 1913   2) Ashes, 1894   3) Winter om the Fjord, 1915



그러나 얼마 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게 되자, 히틀러 정권은 북유럽 국가들을 회유하기 위해 뭉크에게 협조를 부탁한다. 뭉크는 이를 거절한다. 괴벨스의 찬사는 순식간에 경멸로 바뀌게 되고 그의 그림은 박물관에서 떼어내 헐값에 내다 팔리는 처지가 된다.


뭉크의 그림뿐 아니라 세잔, 고흐, 고갱, 마티스, 피카소, 브라크, 샤갈, 등 외국 작가의 작품들도 경매를 통해 처분해 버리고, 나머지 작품들은 괴벨스의 지시 아래 불태워 버린다.(1939년 한 해 동안 1,004점의 유화, 3,825점의 수채화, 소묘, 그래픽 작품들이 불탔다). 이런 행위는 점령지 파리에서도 발생한다. 1943년 파리에서 600여 점에 달하는 피카소, 미로, 클레, 막스 에른스트 등의 아방가르드 작품들이 불에 타버린다.


2차 세계대전이 전개되면서 독일은 노르웨이를 점령한다. 나치는 또다시 뭉크에게 손을 내민다. 그를 통해 혹시나 노르웨이인들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뭉크는 또다시 나치에 대한 협력을 거부한다.


에드바르트 뭉크, 이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절규’라는 작품은 기억을 할 것이다. 이 작품은 뭉크가 자신의 인생을 바탕으로 자신이 느끼고 있는 불안과 공포를 구체화시킴으로써 상징적으로 표출하고자 한 것이다. 뭉크의 ‘절규’가 단지 개인적인 절규가 아닌 것이다. 유럽 사회구조가 지닌 우울증과 구조적 신경쇠약, 결국 그 때문에 뭉크가 절규하게 되었음을 공감하게 된다. 우리 사회의 ‘절규’도 뭉크가 겪었던 사회와 결코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 오슬로에는 시청사가 명물이다. 건물이 멋있어서가 아니다. 사각의 시멘트 건물을 의미 있는 건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건물 앞쪽에는 여러 노동자들을 동상으로 만들어 함께 사는 사회임을 강조하고 건물 뒤편에는 그들 선조들이 믿었던 절대자 오딘, 즉 북유럽 신화 이야기를 작품으로 형상화해서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신화는 신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때 신화는 전통이 되고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다. 개신교 국가가 민간신앙(Pagan)을 공공장소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마음 씀씀이를 무어라 평해야 할까?  역시 절규의 도시 오슬로답다고 해야 할까?


광장에서 바라본 시청사(광장과 전망대에 설치한 동상은 모두 비겔란드 작품),  시청사 건물 앞에는 여러분야  노동자들을 동상으로 만들어 설치했다.(아래)

* 북유럽 신화를 그림으로 조각한 작품들을 시청사 뒤편 건물 회랑에 붙여 놓았다. 개신교(루터교) 국가인 노르웨이가 북유럽 신화를 시청사 디자인으로 작품화해 전시해 놓은 것은 자신들의 뿌리가 어디인가를 암시하는 중요한 증거이다.

오슬로 시청사 건물, 좌우 회랑에 북유럽신화 이야기를 작품으로 형상화 해서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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