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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Nov 10. 2017

나를 만나러 가고 싶다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노르웨이  7


1. 갈색 치즈와 호밀빵, 그리고 커피


인구 60만의 도시 오슬로, 중앙역에서 부터 왕궁까지 이어지는 칼 요한스 거리(Karl Johans Gate)를 따라 가면 이 거리 좌우로 대부분의 주요한 역사적 건물과 박물관 등을 만나게 된다. 이 거리 이름은 19세기 초 스웨덴과 노르웨이 왕을 겸한 칼 14세(칼 14세 요한)의 이름을 붙였다.


이 길을 단번에 가려고 잰걸음으로 걸으면 재미가 없다. 쉬엄쉬엄 가다 보면 예쁜 카페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적당한 곳에서 잠시 쉬면서 뭉크와 입센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그 분위기를 상상해 보는 것도 재미가 있을 것이다. 


그랜드호텔 카페에는 입센이 즐겨 앉았던 지정석을 아예 그가 썼던 똑같은 모자를 놓아 표식을 하고 있으니 그가 얼마나 그곳을 자주 찾았는지 짐작할만하다. 더구나 권위적인 입센을 꼼짝 못 하게 앉혀놓고 스케취를 하고 있었을 뭉크를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또 입센이 카페에 출근을 할 때 새둥지 같은 실크 모자와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검은 코트를 입고 뒤뚱거리며 걸었왔을 그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


오슬로는 그냥 지나가며 보는 도시가 아니라 천천히 걸으며 느끼고 즐기는 그런 도시이다. 그러니 오슬로에서는 절대로 거창한 어떤 것을 찾으려 하지 말고 슬며시 혼자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리며 걸을 일이다. 그러다 보면 귀여운 아기새와 절규하게 될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오슬로 특유의 갈색 치즈와 갓 구운 호밀빵, 그리고 향내 나는 커피는 덤이다.


* 기차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아케르스후스 요새, 이런 보물 같은 성채가 시내에 있다. 이 요새는 하콘(Håkon) 5세 때인 13세기에 적의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할 목적으로 지었다. 이후 이 곳은 왕실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오슬로 기차역과 오페라극장, 최근에는 기차역 바로 인근에 시립도서관을 신축 중인데 그 규모가 엄청나다.

* 오페라하우스는 2008년 4월 12일 개관을 했는데 ‘마법의 양탄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보통 때는 시민들이 오페라하우스 지붕에 올라가 산책을 즐기며 쉬는 공간이지만, 공연이 있는 날 이 지붕은 객석 역할을 한다. 지붕 위에서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기차역에서 칼 요한 거리를 10여분 걸으면 오슬로대학 건물이 나오고 그 앞에 뭉크의 동상(가운데)을 만난다. 대학교 부근에 맛있는 카페들이 여럿 있다. 뭉크는 2001년 발행된 노르웨이 1000 크로네(약 15만 원)의 주인공이다. 화폐 뒷면은 뭉크의 작품 ‘태양’을 넣었다. 오른쪽은 대학 건물 바로 인근에 국립미술관이 있는데, 전시 중인 Lorenzo Pasinelli의 Caritas Romana (1670)이다.   

* 칼 요한 거리의 야경, 가운데 멀리 왕궁이 보인다. 왕궁(우측)을 지나 10여 분만 가면 비겔란드 공원이다. 




2. 비겔란드 조각공원


오슬로에서 또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구스타브 비겔란드(Gustav Vigeland, 1869~1943)가 그 주인공이다, 칼 요한스 거리 끝에 있는 왕궁을 지나 10여분 더 가면 프로그네르 공원(Frognerparken)이 나온다.


구스타브 비겔란드는 1921년 오슬로 시와 특별한 계약을 한다. 오슬로 시가 작업실을 내어주는 조건으로 그가 제작한 작품들을 오슬로 시에 기증하기로 한다. 1943년 비겔란드가 숨을 거두자 20여 년간 제작한 작품들 모두를 공원에 설치한다. 작품들은 그가 직접 제작한 것들인데, 화강암으로 만든 212점과 청동작품 다수가 있다.


원래 공원 이름은 프로그네르 공원(Frognerparken)이지만 비겔란드의 조각 작품들이 전시되면서 그의 이름을 붙여 비겔란드 조각공원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에는 대부분 다양한 형상의 자세를 취한 인간들을 표현한 실물 크기 조각들이 설치되어 있다. 한 사람이 만든 작품들로만 채워진 공원으로서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큰 조각공원이다.


비겔란드와 노르웨이 정부가 계약을 할 때는 1921년, 이 때는 노르웨이가 스웨덴에서 독립 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노르웨이는 1905년에 독립) 그렇기에 비겔란드에게 혹시라도 독립이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특정 주제를 주문할 수도 있었을 텐데 공원 어디를 보더라도 그런 냄새를 느낄 수 없다. 이건 오슬로 시내 어디를 돌아다녀도 마찬가지다.


비겔란드 공원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그냥 보통 사람들 모습들이다. 어떤 이는 딸바보이기도 하고, 어떤 이는 다정한 연인 같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금슬 좋은 부부인듯한 그런 모습들을 만날 수 있을 뿐이란 말이다. 


* 비겔란드 공원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



이 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이 하나 있다면 세계에서 가장 큰 화강암 조각품인 모노리텐(Monolittan)이다. 높이가 17m나 된다. 멀리서 보면 그저 큰 기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121명의 남녀가 여러 형상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모습이다. 조각 속 사람들은 실제 사람 크기로 제작을 했는데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모든 삶의 과정을 보여준다.


야외 정원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리 양쪽 난간에는 인간의 일생을 표현한 58개의 청동 조각상이 있다. 그런데 가장 멋지다는 거인들의 분수(Giantsfountaint)는 아쉽게도 겨울이라 분수가 안 나오니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는 수밖에 없다. 


설치된 비겔란드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실제 인간들 표정을 빼닮았다. 기뻐하고 슬퍼하는 모습과 심지어 깔깔대며 웃는 모습들조차 그대로 보통사람들 그대로다. 인간가족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릴듯한 엄마와 아빠, 그리고 아들과 딸의 여러 모습들이 춤추듯 하늘을 향해 율동까지 보여준다. 


비겔란드는 조각가로서 뿐만 아니라 이 공원에 작품을 배치하는 일부터 가로수를 심는 일까지, 심지어는 화단 위치까지 그가 직접 모든 걸 기획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비겔란드 공원이다. 문득 우리나라에도 이런 공원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래서 내 모습을 빼닮은 작품 하나가 공원 어딘가에서 만나볼 수 있다면 나는 매일 그리로 가고 싶다. 나를 만나러!


※ 오슬로 시내 곳곳에, 특히 시청사 주변에도 비겔란드 작품이 설치되어 있다.


* 가운데 보이는 뾰족한 탑이 모노리텐


* 타이틀 사진 역시 비겔란드 작품(Dance, 1896)인데 국립미술관에 전시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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