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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Nov 30. 2017

발키리가 만드는 오로라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노르웨이  13


1. 사랑의 불빛, 오로라


여명을 뜻하는 오로라의 어원은 1621년 프랑스 과학자 피에르 가센디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명의 신 아우로라(AURORA)를 본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영어로는 노던라이트(Northern Light), 라틴어로는 '여명을 닮은 북녘의 빛'이라는 의미의 오로라 보레알리스(Aurora Borealis), 그리고 북반구와 다르게 남반구에 나타나는 오로라는 '오로라 오스트랄리스(Aurora Austrails)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어쨌든, 오로라는 양 극지방에서 모두 볼 수 있다.


바이킹족은 오로라를, "오딘의 친위대이자 전쟁의 여신 발키리가 죽은 전사들을 천국으로 데려갈 때 그녀가 가지고 있는 방패에 반사된 빛"이라고 생각을 했다. 북유럽 신화를 따르던 바이킹족이었으니 오로라가 보일 때 아마도 죽은 자들을 발키리가 데리고 신들의 전당인 아스가르드로 데려가는 중이라고 믿었을 것이리라. 그래서 오로라가 진한 빛을 발하면 발할수록 많은 전사들이 발할라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겠다.


그런데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발키리중 가장 유명한 발키리는 다름 아닌 부른힐데 일 것이다. 그녀는 또한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뛰어난 영웅 시구르드(지그프리트)와 사랑을 하면서 결국에는 시구르드를 죽음으로 이끌고 만다. 덴마크 왕자였던 시구르드는 바그너의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 주인공으로 등장하면서 지그프리드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오딘의 명을 어긴 발키리 부룬힐데가 그 벌로 잠에 빠져 있는 동안에 잠자는 그녀를 본 순간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마녀의 꾐에 빠져 부룬힐데는 오히려 시구르드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된다.


* The Valkyrie's Vigil(1906, Edward R. Hughes), * Walkyrien, (1905, Emil Doepler)



발키리들의 이야기는 흔히 인간과 사랑을 하면서 비극적 종말로 끝을 맺는다.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뛰어난 대장장이인 볼룬드는 핀란드 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다. 그런데 어느 날 형제들과 집 근처 호숫가에서 백조 옷을 벗어놓고 아마로 옷을 짓고 있는 발키리들을 만난다. 삼 형제는 모두 발키리들과 결혼을 해 살게 된다. 그러나 9년이란 시간이 지나자 발키리들은 전사로서의 본능이 되살아나 결국 오딘이 있는 발할라 궁으로 되돌아가 버리고 만다.


결국 그 누구도 발키리들과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했다. 오로지 아스가르드의 계율에 따라, 오딘의 명에 따라 발키리들은 여전사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야만 했다. 그러기에 발키리는 언제나 사랑하는 연인들에게 까칠한 팜므파탈 모습만 보여주고, 언제나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오로라를 뿜어댔으리라. 오로라가 빛을 발할 때마다 또 다른 발키리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열정이 그렇게 오로라로 빛을 내며 타버리는 게 아니었을까? 밤하늘 별빛 사이로 밝은 빛을 내며 춤추듯 꿈틀대는 오로라를 보게 되면 누군가의 사랑이야기가 떠오르는 건 어쩌면 발키리들의 사랑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북유럽 신화뿐 아니라 스칸디나비아 북쪽에 사는 원주민 사미족에게도 오로라에 얽힌 전설이 있다. 사미족은 북극여우가 불꽃처럼 반짝이는 눈송이를 꼬리로 흩뿌릴 때 오로라가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들은 오로라(북극광)를 '여우 불'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누이트족은 오로라를 살해된 아기들의 영혼이라고 믿으면서 오히려 불길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누이트족 옛이야기에는 북극광이 나타나면 쿵하는 소리나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고 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실제 강한 오로라 발생 시 소리가 난다고 한다.)


사실 오로라는 태양에서 방출된 플라스마가 지구의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로 진입하면서 주변의 산소 또는 질소 분자와 마찰을 일으켜 나타나는 빛이다. 이 때문에 태양의 흑점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날 때 오로라를 더 쉽게 볼 수 있다. 지구가 거대한 자석이라는 사실이 새삼 흥미롭다.


* 트롬쇠 오로라 관광단과 함께 한 시간 반이나 걸려 바닷가로 나갔지만 오로라는 바다(남동) 쪽이 아닌 마을(북서) 쪽으로 나타났다.  8시경 도착해 2시간 이상 오로라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오로라(aurora)는 주로 태양에서 방출된 입자(전자 또는 양성자)가 지구 대기권 상층부의 기체와 부딪쳐서 빛을 내는 현상인데, 대부분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로 진입할 때 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명의 신 오로라의 이름에서 유래했는데, 태양신 아폴로의 누이동생이 바로 오로라이다.


대부분 오로라는 짙은 초록색이나 연두색을 띠고 있다. 간혹 붉은색이나 노란색, 또는 푸른색을 띤 오로라가 보이기도 하는데, 대기 중 산소가 많으면 초록색, 나트륨 가스가 있으면 노란색, 질소가 많으면 붉은색을 띠게 되어 다양한 색깔의 오로라가 나타난다.


오로라는 초저녁부터 새벽 시간대에 걸쳐 밤중 내내 관측되지만 가장 화려한 형태는 특히 자정 무렵을 전후해 나타나기 때문에 오로라는 마치 새벽을 알리는 전령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오로라(aurora)는 로마 신화에서 매일 새벽 태양이 솟아오를 수 있도록 하늘의 문을 여는 역할을 하는 새벽의 여신이라고도 불렸다.


한편, 오로라를 잘 볼 수 있는 지역은 남북 양극 지방의 지구자기 위도 65∼70도 범위에 있다. 이 지역을 오로라대(auroral zone)라고 한다. 오로라 대보다 고위도(극관 지역)나 저위도에서 오로라 출현 빈도는 감소한다. 그러니 무조건 위도가 높은 곳으로만 가려고 하기보다 적당한 위도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오로라를 잘 볼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다.


노르웨이에서는 북위 68도에 위치한 로포텐(Lofoten)과, 북위 70도에 위치한 트롬쇠(Tromsø)가 북극권에 위치해 있어 오로라를 잘 볼 수 있는 지역이다. 백야가 진행되는 여름철만 아니라면 언제나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들뜨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고약한 날씨가 생각보다 오래, 자주 이 지역을 괴롭히고 있으니 부디 겨울왕국의 여신께서 트롬쇠에서 좋은 날씨를 점지해 주시기만을 고대해 본다.

 




2. 트롤과 도깨비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


노르웨이 트롬쇠(Tromsø)에서 그리던 오로라를 만났으니 일단 노르웨이를 떠난다. 노르웨이 북쪽은 조만간 다시 찾을 것이다. 스칸디나비아의 비밀이 이제부터 하나씩 벗겨질 것이다. 그러니 마음 놓고 트롬쇠를 떠나자.


이른 아침, 아침이래야 9시 출발 비행기인데도 북극권에서는 해가 11시나 되어야 뜨니 한밤중 같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아무튼 하늘로 솟아오른 비행기는 잠시 후 수평을 유지하더니 곧장 오슬로를 향해 날아간다. 창밖은 여전히 어둡기만 하다. 얼마를 지났는지 서서히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오슬로에 가까워지자 비행기는 낮은 고도를 유지하며 오슬로 인근을 선회한다. 간밤에 내린 눈 때문인지 밖은 온통 하얗다. 태양은 붉은빛을 뿜어내기 시작하고 긴 그림자를 만든다. 잠시 후 오슬로 공항에 도착하게 되면 눈밭에 그려진 그림자 길이만큼 노르웨이에 대한 그리움의 길이도 길어질 듯싶다.

노르웨이 항공사 비행기

드디어 오슬로 공항에 도착한다. 그런데 문득 타고 온 비행기를 보니 어여쁜 여인네가 그려져 있다. “진짜 노르웨이인 소냐 헤니(Sonja Henie)”라고 쓰여 있다. 노르웨이 항공사 소속 비행기에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운동선수나 예술가들을 비행기에 그려 넣어 홍보를 하고 있다. 내가 탄 비행기에는 소냐 헤니(Sonja Henie)가 그려져 있다.


소냐 헤니, 스케이팅 선수이자 영화배우인 그녀는 1969년 10월 12일 파리에서 응급 비행기로 오슬로로 이송 도중 사망한다. 그녀는 1912년 4월 8일 오슬로에서 태어나 1927년 15살의 나이로 세계 피겨 스케이팅 선수권 대회 여자 싱글에서 우승한다. 그 후 1932년과 1936년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10회 연속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대기록을 세운다.


1940년, 그녀는 사업가인 다니엘 토핑(Daniel Topping)과 결혼을 하고 히틀러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평판이 안 좋았다. 그래서 1949년 남편과 이혼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미국에서 비행사인 윈트롭 가드너(Winthrop Gardner)를 만나 재혼을 하는데, 1956년 또다시 이혼을 하고 만다.


* 트롬쇠 인근의 풍경들, 1월 말 이곳은 거의 10시가 넘어야 해가 뜬다.

해 뜨기 직전 하늘의 수평선
요툰헤임 상공을 지나면서...



같은 해에 그녀는 노르웨이 선박왕 닐스 온스타드(Niels Onstad)와 또다시 재혼을 한다. 얼마 후 두 사람은 미국에서 노르웨이로 돌아와 그동안 모은 예술품들을 전시할 박물관을 개관한다. 그러나 안탑깝게도 1968년 그녀는 백혈병 진단을 받고, 다음 해에 57세로 생을 마감한다. 막상 그녀를 알고 나니 비행기에 그려진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어찌 생각할지 궁금하기만 하다. 소냐 헤니, 그녀 역시 오로라 불빛을 만들어내는 발키리가 아니었을 가라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다.   


오슬로 공항에 도착해 문득 떠오른 노르웨이 이미지는 역시 거인족이 사는 나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르웨이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을 트롤의 후예라고 생각하며 바이킹 자손으로서의 명예와 자긍심을 부추기는 모습은 어쩌면 부럽기까지 하다. 그러니 헨릭 입센의 페르귄트 작품에까지 등장을 하였겠지만... 몽상가인 페르 귄트가 여행을 하다 트롤을 만나게 되는데, 트롤은 이때 페르귄트가 주변의 지저분한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의 눈을 뽑아버린다. 참 착한 괴물이다.


트롤(Troll)은 스칸디나비아와 스코틀랜드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한 거인족이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요툰헤임에 살던 거인들이 신들과의 전쟁에서 참패하자 동굴로 숨어들어 근근이 살아가게 되어 무능한 트롤이 되었다고 한다. 원래 요툰헤임은 거인의 나라를 뜻하는데 오늘날 노르웨이 중앙의 빙하를 안고 있는 고원이 이 이름으로 불린다.


어쨌든, 요즘에는 트롤이 장난꾸러기 이미지가 강하게 표현되어 동화 속 트롤은 이미 무서운 괴물이 아니라 어린아이들과 친근한 대상이다. 어찌 보면 우리네 도깨비 같은 존재가 바로 트롤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득 우리네 도깨비와 트롤이 한판 승부를 펼치면 누가 이길지 그것이 궁금해졌다.


* 1월 말의 노르웨이 오슬로 주변 풍경들, 온통 눈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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