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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Dec 04. 2017

스톡홀름의 자유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스웨덴   1


스톡홀름 기차역에 당도해 시내 한복판에 있는 감라스탄(구시가지)으로 향한다. 가다 보면 시청사 건물도 보이고 다리를 건너면 스톡홀름에서 제일 오래된 교회도 보이고 감라스탄으로 들어가는 골목이 나온다. 주요 시설물들이 대부분 이 지역에 모여있다.


감라스탄 거리를 지나 왕궁 건물 사이로 산책하듯 거닐다 보면 국회의사당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된다. 스톡홀름에서 제일 오래된 교회가 보이는 지점에 이르게 되면 바로 오른쪽에 스웨덴 국립오페라극장이 보이고 그 맞은편에 노르브로 다리가 나온다. 그 곁에 중세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입구 근처에 웬 동상 하나가 투구 같은 모자만 쓰고 온 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두 팔을 벌리고 서있다. 문득 고개를 들다 마주친 사내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올 판이다. 가만 보면 무언가를 외치고 있다. 벌거벗은 채로!


그의 이름은 ‘솔산가렌’(Solsangaren: The Sunsinger). 이 동상은 1919년 칼 밀스(Carl Milles)가 아이샤 테이너(Esaias Tegnér)를 추모하기 위해 기념물 제작을 의뢰받고 1926년에 그리스 아폴로 신을 본떠 만든 청동상이다. 아이샤 테이너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시인, 그리고 룬드 대학교 그리스어 교수이자 주교였던 인물이다.


1846년 그가 죽은 후 테이너 추모위원회가 결성되고 이 위원회는 그를 기리기 위해 테이너의 반신상 제작을 계획하고 밀스에게 제작을 의뢰한 것이다. 밀스는 테이너 동상 제작을 구상하면서 단순히 사실적인 묘사보다 어떻게 하면 테이너가 지니고 있는 무한한 창조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한다. 밀스는 문득 테이너의 시를 떠올리고 그 작품에서 동상 제작에 대한 영감을 얻는다.


“그대를 위해 노래 부르리,

오 눈부신 태양이여”


* 동상 아래 제단기둥 한가운데 원형의 얼굴은 동상의 실제 인물인 '아이샤 테이너'의 얼굴이다.

‘솔산가렌’(Solsangaren: The Sunsinger) 동상

* 밀스는 후에 똑같이 생긴 동상 ‘Sunsinger’를 버지니아 Falls Church ‘National Memorial Garden’에도 설치를 했다.



밀스는 테이너의 시구를 바탕으로 동상 제작을 구상한다. 테이너의 동상은 처음에 생각했던 반신상이 아니라 전신상으로, 그리고 테이너의 시구에서 얻은 영감을 떠올리며 구태의연한 옷차림이 아니라 벗은 몸매로 표현하려 했다.


테이너 동상의 전반적인 구상은, 멋진 몸매의 젊은이가 높은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태양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빛나는 천체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이다. 밀스가 생각한 작품은 바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폴로 신의 모습 그대로다. 어쩌면 밀스는 로마의 보물 다비드상을 스톡홀름의 보물로 만들고 싶어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튼 처음에 이 작품에 대해 ‘알몸’이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많은 시민들이 찬성하였기에 결국 현재의 모습으로 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조각상은 그 후 스톡홀름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물로 자리 잡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벌거벗은 육체의 자유로움, 그리고 빛나는 천체의 환희, 이 모든 것이 정말 스톡홀름이 생각하는 자유와 일치하는 것일까? 주교였던 인물 아이샤 테이너를 기리는 방법으로 알몸이라니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스톡홀름 신드롬(* 1970년대 스톡홀름에서 인질극이 벌어졌을 때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범인에게 동조하게 된 현상을 일컫는 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 아무튼 한국에서 벌거벗은 주교 동상을 세운 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북유럽 신화의 지배자는 오딘, 그런데 저기 서있는 사람은 그리스 신화의 지배자인 제우스의 아들 아폴로, 바로 그 아폴로가 오딘의 나라에서 당당하게 위용을 뽐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하였는데 그야말로 반전이다. 그래, 작가의 고집 때문에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하자. 오딘의 나라에서 나는 오늘 아폴로를 흉내 내며 두 팔을 벌리고 그의 곁에서 똑같이 외친다. 옷은 입은 채로, “나는 오늘 자유다!”


*스톡홀름 기차역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가면 시청사 건물(이곳에서 해마다 노벨상시상식이 열린다.)이 나오고 감라스탄 입구가 나온다.

* 스웨덴 의회 건물과 '상원의원회관' 감라스탄 입구 골목

* 감라스탄 입구는 언제나 미술애호가들에게 멋진 그림의 소재가 된다.

* 감라스탄 골목과 스웨덴 왕궁

* 의회 건물 정면과  노르브로 다리, 그리고 국립오페라극장 건물이 보인다. 극장앞의 동상은 'Adolf Gustav 2세'(1594-1632),  17살에 즉위 후 그의 재임 시기에 가장 거대한 스웨덴 제국을 건설한다.  

선물가게에서 언제나 인기있는 '톰테'  인형과 나무 퍼즐들, 손으로 직접 만들어 똑같은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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