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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Dec 27. 2017

핀란드 옛 수도 투르크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핀란드  6


1.


이른 아침 투르크(Turku)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헬싱키 숙소를 나선다. 한 인간이 어떻게 국가의 안위에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지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신기한 느낌이 든다. 시벨리우스도 그랬다. 그가 가진 잠재적 능력은 여전히 그가 숨을 거둔 후에도 핀란드인에게는 저력으로 작용을 한다. 그래서 그의 행적과 흔적을 좇는 중이다. 투르크에 있는 시벨리우스 박물관을 가려는 것이다. 


핀란드 수도는 헬싱키, 그러나 헬싱키가 처음부터 핀란드 수도는 아니었다. 핀란드는 1155년부터 1809년까지 654년간 스웨덴이 지배하는데 러시아와 전쟁에 패하고 그 권한을 러시아에게 넘긴다. 전쟁에서 승리한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1812년 스웨덴에서 가까운 핀란드 남서쪽에 있는 핀란드 수도 투르크(Turku)를 지금의 헬싱키로 옮긴다. 러시아에 가까운 헬싱키가 통치하기 쉽기 때문이었다.


스웨덴은 핀란드와 1323년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두나라 국경을 확정한다. 그 후 투르크에 스웨덴 군대가 머물 숙소와 핀란드 총독이 머물 성을 짓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핀란드는 본격적으로 유럽으로 편입된다. 하지만 투르쿠는 사실상 스웨덴 전초기지나 마찬가지였다. 


투르크에는 스웨덴 국왕 별궁을 건립하고 독일 상인들이 투르쿠에 몰려들면서 한자동맹 세력을 확대해 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스웨덴은 핀란드를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투르크 대성당을 건립한다. 이제 핀란드의 수도 투르크를 확실히 장악한 스웨덴은 핀란드를 스웨덴 공국으로 지위를 부여한다. 이러한 스웨덴의 전략적 정책은 1809년 스웨덴 지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1827년 투르크에 원인모를 화재가 발생한다. 도시 대부분이 불에 타버린 것이다. 마치 죽음의 도시인 양 말이다. 1812년 이미 투르크에서 헬싱키로 핀란드 수도를 옮기긴 했지만 투르크에는 핀란드의 많은 문화유산이 남아있기에 보전해야 할 가치가 엄청난 도시였다. 하지만 화재는 중세시대에 화강암으로 지은 건물들 조차 그 흔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오늘의 투르크는 예전 수도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작고 소담스러운 도시이다. 하지만 스웨덴 지배 650년이란 기간 때문인지 핀란드의 수도였던 트루크는 스웨덴 분위기가 많이 남아있다. 다행히 투르크에는 1640년 핀란드 최초로 설립한 대학이 있다. 그래서 도시는 대학도시답게 활기가 넘친다. 대학생들이 도시를 살리고 있다는 말이다.


* 투르크 중앙역과 카우파 광장, 슬라브어로 '시장'이라는 의미의 카우파 광장(Kauppatori)은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노천시장이 선다.

* 그리스 정교회에서 바라본 광장, 아우라 강변에 있는 대학 건물, 그리고 시립도서관 건물 

* 아우라 강은 꽁꽁 얼어있고, 그 건너편에 대성당(Tuomiokirkko)이 있다. 이 성당은 개신교 교회로 사용 중인데 14세기에 착공해 200여 년의 공사 기간을 거쳐 완성되었다. 투르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2.


투르크에 있는 시벨리우스 박물관을 찾아가면서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다. 헬싱키에 있어야 할 시벨리우스 박물관이 왜 투르크에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건 순전히 시벨리우스 친구 덕분이었다.


시벨리우스 친구이자 역사학자인 바론 악셀 카플란(B.A.Carpelan)은 1930년대 초반부터 당시 대학에 남아있는 시벨리우스에 관한 자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뿐 아니라 시벨리우스 자필 원고, 편지, 사진, 프로그램, 인쇄된 악보, 심지어 시벨리우스와 관련된 신문 기사와 각종 관련 문서까지, 시벨리우스와 관련된 자료들은 무엇이든지 모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음악박물관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그가 보관하던 모든 자료들은 자연스레 음악박물관으로 모이게 되었고, 그 후 1940년대 말 음악박물관에 어울리는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당시 안데르손 교수가 음악박물관 이름을 변경하는 권한을 부여하자 주저하지 않고 ‘시벨리우스 박물관’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당시 시벨리우스는 별다른 작품 활동을 하고 있지 않고 거의 대부분 시간들을 야르벤파에서 보내고 있었는데, 음악박물관에 전시할 자료들 상당수가 거의 시벨리우스와 관련된 것이었으니 시벨리우스가 동의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 이 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보물들은 바로 시벨리우스 악보들이다.


* 투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립 75주년 기념 음악회 포스터(콧수염은 시벨리우스의 상징이기도 하다.)

* 시벨리우스 박물관 입구



이 박물관은 2006년 3월에 수집한 자료들을 완전히 새롭게 정리해 전시를 시작한다. 핀란드 상징으로서 시벨리우스가 지닌 면모를 강조하는 형태로 박물관을 꾸몄다.(* 시벨리우스 박물관 참조: http://www.sibeliusmuseum.abo.fi/eng/museum/sibelius.php)


그런데 이번에도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곳을 방문한 날짜가 1월 25일인데 1월 5일부터 28일까지 문을 닫고 29일부터 새롭게 문을 열 예정이란다. 겨울철 비수기라 그런지 일정기간 동안 문을 닫고 내부 수리와 재정리 후 다시 문을 열 예정이란다. 시벨리우스 박물관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지 않고 온 게 잘못이었다.


발길을 돌리려니 진눈깨비가 한심하다는 듯 마구 뿌려댄다. 일단 근처 투르크 성당으로 발길을 돌린다. 투르크 성당은 투르크가 핀란드의 수도이던 시절 오랜 기간 핀란드를 대표하던 건축물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일요일이라 시간을 잘못 맞춘 것 같았다. 예배가 시작되어야 할 시각이 다가오자 입구에서 안내하는 사람들이 눈총을 준다. 교회 내부 증명사진을 하나 찍고 나오는 것도 눈치를 봐야만 했다.


어쨌거나 이제 시벨리우스를 좇는 작업은 거의 끝난 셈인가 보다. 투르크까지 와서 시벨리우스를 못 만나니 아쉽기 그지없다. 진눈깨비는 왜 그리 내리는지 날씨가 조금은 야속하다. 시벨리우스는 만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도시 외곽에 있는 투르크 성으로 간다. 성은 지난날의 영화를 그대로 담고 있는 듯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 투르크 성 안, 이 방은 핀란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방이다. 14세기부터 16세기 중반까지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바사(Gustav I Vasa)가 이곳을 두 차례나 방문(1530년과 1556년)하고 이곳에서 그의 아들 죤(John)에게 핀란드 공국의 군주로(공작) 임명을 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 투르크 성은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 중인데, 전시물품들은 대부분 14~15세기 목제품들이 대부분이다.

* 벽화가 모두 낡아 복구가 시급해 보였다.


 

3.


문득 투르크에 있다는 무민 테마파크가 떠올랐다. 고대사 박물관 관람을 대충 마무리하고 입구에서 안내하는 사람에게 무민 테마파크에 대해 간단히 들을 수 있었는데, 얼마 전에 신년 축하 프로그램이 있어 잠시 개장을 했지만 정식 개장은 여름이 되어야 한단다. 겨울철에는 문을 닫는다고 한다. (* 혹시라도 방문할 여행객들은 꼭 무민월드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를... 무민월드 홈페이지: http://www.muumimaailma.fi/en/home)


굳이 무민월드를 떠올리는 이유는 무민이란 캐릭터가 핀란드 신화에 나오는 트롤에서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칼레발라에 등장하는 작은 난쟁이들은 어여쁜 요정들도 있지만 괴물 같은 요정들도 있다. 마치 거인 같은 요정들은 요정이라기보다는 그냥 정령들이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아무튼 무민을 창조한 작가는 스웨덴계라서 그런지 사실은 핀란드 신화를 바탕으로 했다기보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트롤을 모태로 한 것이라는 게 정확할 듯싶다.


털북숭이 같은 트롤은 사실상 북유럽 신화에서 못된 성격을 지닌 캐릭터로 등장을 한다. 그런데도 트롤을 모태로 한 무민은 하마처럼 생긴 게 귀여운 모습이다. 하마인 듯 아닌 듯 뿔 없는 순록인 듯 보이기도 하는 무민은 어느새 북유럽은 물론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치솟고 있다. 


아무튼 무민(Moomins)을 만들어 낸 토베 얀손(Tove Jansson: 1914~2001)은 처음 무민을 세상에 내놓을 때 핀란드가 아닌 스웨덴 언어로 글을 쓰고 소개를 했다. 거의 스웨덴 무민처럼 등장을 했기에 사람들은 오랫동안 스웨덴 무민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다 한참 후에야 무민을 핀란드어로 번역을 한다. 


이제는 핀란드 사람들도 무민이 핀란드 캐릭터임을 알게 되었고 전략적으로 무민을 핀란드 대표 캐릭터로 사용을 하고 있다. 심지어 거의 모든 소비재에 무민 캐릭터를 덧씌우고 무민이란 이름으로 도배를 하고 있다. 처음부터 핀란드 캐릭터였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그게 독립된 국가의 위상 덕분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 무민 커피와 사탕, 그리고 인형 등등

* 투르크의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은 역시나 투르크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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