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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Dec 28. 2017

스웨덴 최북단 도시 키루나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스웨덴  8


1.


키루나(Kiruna)는 스웨덴 최북단에 위치한 도시이다. 인구는 18,148명(2010년 기준), 시 문장에 철과 번개가 그려져 있을 정도로 광업은 시의 주요 산업이다. 그래서 도시 이름도 사미어로 번개를 뜻하는 "기론"(Giron)이란 말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키루나는 북극권이 시작하는 곳에서 북쪽으로 14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그래서 해마다 5월 30일부터 7월 15일까지는 백야 현상이, 매년 12월 초부터 다음 해 1월 초까지는 극야 현상이 일어난다. 북극권에서만 가능한 현상들이다.


키루나는 스웨덴 북부 라플란드(lapland)에 속하는 곳이기도 하다. 라플란드는 ‘라포니아’(laponia)라는 라틴어에서 비롯되었는데 ‘라퐁’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경멸적인 용어(라퐁의 스웨덴어 어원은 ‘넝마를 걸친’을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라퐁 대신에 사미(Sápmi)라는 말로 대체되었지만 이 지역은 외부에 ‘라포니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졌고 지금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다.(* 마치 이누이트를 에스키모라고 부르듯이)  


라플란드에 거주하는 사미인들을 ‘Sámi’, ‘Sápmi’, 또는 ‘Saami’라고 표기를 하는데 이들이 바로 스칸디나비아 원주민들이다. 스칸디나비아 최북단 라플란드(Lapland)에 거주하는 사미인들은 노르웨이와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와 러시아에 대략 8만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그중에서 4만여 명의 주민들이 노르웨이에. 스웨덴에 2만여 명, 핀란드에 6천여 명, 러시아에 2천여 명, 그리고 만여 명 정도가 라플란드와 시베리아 지역을 떠돌며 유목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색칠한 부분이 사미족 거주지역이다.

사미족은 약 1만 년 전 해빙기에 스칸디나비아 반도 북부와 러시아 콜라 반도에 자리를 잡았다. 따라서 사미족은 유엔이 소수 원주민 부족으로 공식 인정을 했다. 사미족은 ‘콜트’라는 전통의상을 입고 사미족 고유언어를 갖고 있다. 그리고 사미인들은 1950년대부터 사미연합을 결성해 자치권 투쟁을 벌였고 1993년부터 독자적으로 사미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사미의회는 소수민족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해 북유럽협의회를 결성하기도 했다.


사미인들은 ‘라부’(lávvu)라는 원뿔형 천막에서 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라플란드에서 라부가 있는 곳을 보면 대개의 경우 사미인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생각하면 틀림이 없다. 또한 사미인들은 라플란드 지역에서 순록과 함께 살아왔다. 이 순록들은 모두 자연 상태에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집단 양식을 하는 가축들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사미인들에게 순록은 생계를 이어주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반려자의 역할을 하는 가축이기도 하다.


그런데 라플란드 지역에서 사미인들이 기르는 순록들은 모두 52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사육하고 있는데 만일 스웨덴의 키루나 지역으로 가서 얼음호텔이 있는 유카리야르비로 간다면 그곳은 ‘탈마’ 사미마을로 부르는 지역이다. 이처럼 사미족 마을은 모두 순록을 사육하기 위해 일정한 지역을 배정해 놓고 고유명칭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 곳에서나 임의로 방목을 할 수가 없다.


* 사민인들의 하루 일과는 순록과 함께 시작한다. 사미인들에게 순록은 가축 그 이상이다.

* 사미인들은 '라부'에서 생활하며 순록과 함께 유목생활을 해 왔다. 최근에는 농장 운영을 많이 한다.

* 키루나에 있는 사미족 순록 농장



2.


17세기가 되면 각국 정부들은 쓸모없는 땅으로만 알았던 라플란드의 얼어붙은 땅과 모피, 어획량이 풍부한 북해 해역에 많은 관심과 탐욕을 드러낸다. 특히 스웨덴은 1634년 라플란드 지역에서 은 광맥을 발견하면서부터 이 지역에 대해 본격적으로 식민화 작업을 서두른다. 스웨덴 왕국은 라플란드의 주인인 ‘라폰스’(넝마를 걸친 사람들이란 비아냥 조의 말)들에게 세금을 납부하도록 강요를 했고, 루터파 교회는 애니미즘 신봉자들인 사미인들에게 개신교로 개종을 강요하며 잔인한 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스웨덴 정부는 사미족 샤먼(무당)이 사용하는 신성한 북을 불태웠고 때로는 샤먼들을 불태워 죽여버리는 일도 빈번히 저질렀다.(* 1693년 샤먼 라르스 닐손을 공개적으로 불태워 버린다. 이런 일은 아이슬란드에서 개신교 개종 과정에서도 빈번히 발생했다. 기독교 선교를 위한 일이라면 가톨릭 신부를 불태워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유목민인 사미인들을 스웨덴과 노르웨이(1905년 스웨덴으로부터 독립), 그리고 소련과 핀란드(1917년 러시아로부터 독립)는 유목민의 장거리 이동을 금지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스웨덴 거주 사미족 수천 명은 남부 지방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고, 스웨덴 정부는 사미족 동화 정책을 시도하기까지 한다. 이에 따라 학교에서는 부족 언어를 구사하는 사미족 아이들이 체벌을 받았고 심지어 배척을 당하기도 했다.


사미족 자녀들은 강제로 부모와 분리돼 기숙학교에 배치되어야 했고, 규격에 맞춰지기 위해 수많은 사미인들이 성을 바꾸고 부족의 전통 언어인 사미어까지 자녀에게 전승하지 않는 일도 발생했다.(* 사미족 언어에는 ‘전쟁’이라는 단어가 없다.)


* 키루나에 있는 사미박물관 자료들, 사미인들이 쓰는 모자는 순록의 뿔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라플란드 지역을 찾아온 남쪽의 개척자들을 몸서리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극한의 날씨였다. 결국 ‘라프마르크 선언’(1673)을 선포하고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소작세와 군 의무마저 면제를 해준다.  이것은 다행히 사미인들에게도 적용이 된다. 덕분에 라플란드에서 순록치기 사미인들과 소작인들이 서로 낯을 붉히지 않고 함께 지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라플란드 지역에서 사미인들과 외지인들이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사미족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내적으로는 사미인들에 대해 생물학적 인종주의가 강조되면서 사미족의 신체적 왜소함을 빗대어 백인들이 바이킹 후예임을 강조하는 백인우월주의를 드러내는 일이 빈번히 자행된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1970년대에 이르러 사미인들이 정치적 해방운동을 시작한다. 예컨대 노르웨이에서는 사미족이 알타 강 댐 건설 계획에 강력하게 저항했는데(1980), 이 투쟁은 1984년에 사미인권위원회(Sámi Right Council) 이름으로 “사미인들의 18가지 법적 지위에 대하여”라는 노르웨이 정부 보고서(NOU 1984)를 처음으로 발간하게 만든다.


그 후 이 일은 계속해서 1989년 노르웨이에서 최초로 사미족 의회를 탄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에 영감을 받아 핀란드(1996)와 스웨덴(1993)에서도 사미족 의회가 생겨난다. 2000년에는 사미의회연합(Sámi parlamentálralaš ráđđi)을 설립해 라플란드 지역의 사미족들이 공동대처하는 방안을 강구한다.


노르웨이는 원주민에게 더 많은 권리를 부여하도록 권장하는 ‘국제노동기구 169번 협약’에 1990년 이후 비준한 유일한 국가이다. 노르웨이는 자국 최북단 행정구역인 핀마르크(Finmark: 인구 7만 3천, 면적 4만 6천㎢)의 85%에 해당하는 지역에 최대한의 자치를 부여했는데, 이 핀마르크 행정구역은 2005년 이후 사미족 의회와 행정자치단체가 공동 관리하고 있다.


* 노르웨이 사미의회 건물(노르웨이 케이토카이노 소재) 과, 핀란드 사미의회 건물(핀란드 이나리 소재)

* 스웨덴 사미의회 건물(키루나 소재), "모든 사미인들을 위한 사미의회"라는 제목의 사미의회 소개 책자

* 빨강, 초록, 노랑, 파랑 4가지 색깔과 태양을 상징하는 둥근 원이 그려진 사미족 깃발이 인상적이다.



3. 


키루나는 요즈음 도시 이전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바로 키루나 광산 때문이다. 키루나는 세계 최대의 지하에 있는 철광이다. 스웨덴 국영철광회사(LKAB)는 1만 8천 명에 달하는 이 도시의 주민들 중 2천여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광산이 주택들 아래 1,400m 깊이에 위치해 있다는 게 문제이다. 키루나 인근 도시 말름베리에트에서도 똑같이 지하 광산으로 도시 침하 현상이 발생해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똑같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키루나 도심을 최소한 3km 이상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현재 가동 중인 광산 16개가 2030년에는 자그마치 50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철광석 채굴량이 2030년 1억 5천만 톤으로 현재보다 거의 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스웨덴이 이처럼 철광석 생산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는 “유럽이 전 세계 철의 20%를 소비하면서도 자체 생산량은 4%에 불과하고, 그중 90%를 키루나 광산에서 생산하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이미 지난 19세기 말 철광석 수출을 위해 노르웨이의 나르비크까지 국가 예산의 13%를 들여 철도를 잇는 사업을 완수했다. 엄청난 사업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사미족 의회는 키루나를 지키기 위해 도시 이전 계획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인간의 탐욕 때문에 도시가 피폐해지고 망가져 간다는 주장이다.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지 두고 볼 일이다. 어쩌면 도시 이전 계획이야말로 스웨덴 국내문제가 아니라 인류문명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 참고자료


- 위키백과

- Sámediggi(sametinget), The Sámi parliament in Norway.

- The Sami in Finland, The Sámi parliament in Finland, 2012.

- SÁMi magasiidna, 2017/2


* 스톡홀름에서 키루나로 가는 비행기에서 바라본 라플란드, 눈 덮인 벌판만 보이지만 생태자원 보고이다.

* 키루나 철광산 입구와 키루나 시내 거리,

* 키루나 대학 건물과 기숙사 건물들(기숙사는 방학 때 호텔로 사용한다.)

* 키루나 교회와 시청사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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