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광신주의
오래전 파리 대학에서 볼테에르의 연극 ‘자이르’ 공연을 한 적이 있다. 표지로 올린 사진은 그때 파리 학생식당 씨떼에 붙어 있던 포스터인데 지금까지 내 서재에 정중히 모셔놓았다. 이 포스터를 볼 때마다 볼테에르라는 인물을 생각하게 되고 그의 경고가 내 인생에도 좋은 교훈으로 남아있다.
포스터에 쓰여있듯이, 그가 말하려는 것은 바로 종교적 광신주의에 대한 것이다. 요즈음 유럽 역사 관련 영화가 판타지 성격의 영화가 많아지고 특히 십자군 전쟁까지 판타지로 만드는 솜씨들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십자군 전쟁에 관한 영화들 중 ‘자이르’는 가장 많은 소재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자이르(Zaïre)는 볼테르(Voltaire: 1694-1778)가 1732년에 발표한 희곡의 주인공 이름인데, 자이르(Zaïre)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자이르는 아주 어릴 적 기독교도인 아버지 루시난(Lusignan)을 따라 예루살렘에 오지만 아버지와 오빠 네레스탄(Nerestan)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혼자가 된다. 그 후 자아르는 무슬림의 손에 들어가 터키의 술탄 궁전에서 자란다. 어느덧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한 자이르는 젊은 술탄 오스만(Osman)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릴 적 잃어버린 아버지 루시난과 오빠를 찾는다. 오빠 역시 술탄의 노예로 잡혀와 있었다. 술탄 오스만은 자이르와의 결혼을 앞두고 자비를 베풀어 루시난을 석방한다. 루시난은 드디어 나레스탄 무리와 함께 프랑스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그런데 루시난은 자이르의 십자가 목걸이를 보고 자이르가 어릴 때 예루살렘에서 잃었던 딸인 것을 알게 된다. 또한 네레스탄도 그의 몸에 있는 독특한 상처 때문에 루시난의 아들인 것이 밝혀진다. 루시난과 네레스탄은 그들이 떠나는 날 자이르가 오스만과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자이르에게 결혼하기 전 기독교도로서 세례를 받도록 설득을 한다. 자이르는 이를 받아들여 세례를 받기로 한다.
네레스탄은 아버지 루시난과 마지막으로 자이르를 만나기 위해 은밀히 편지를 보낸다. 그런데 오스만이 그 편지를 가로챈다. 오스만은 자이르와 네레스탄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오해를 하고 자이르가 네레스탄을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기다린다.
오스만은 약속 장소에 나타난 자이르를 칼로 찔러 죽이고 잠시 후 나타난 네레스탄을 체포한다. 오스만은 네레스탄과 루시난으로부터 모든 사실을 듣고 미안한 마음에 자책감을 참지 못해 자이르를 찌른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사상가 볼테에르, 황제 마음대로 하는 정치 체제에 맞짱을 뜨면서 시민들의 권리를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프랑스 정부의 핍박으로 망명을 떠나는데 쉽게 조국으로 돌아가지를 못하다. 다행히 즉기직전 1778년 84세의 나이로 시민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으며 파리로 돌아오지만 해를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볼테르의 자이르는 자라(Zara)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로시니의 '이탈리아의 터키인'(Il Turco in Italia)에서는 자이다(Zaida)라는 집시 여인으로 등장하며 모차르트의 징슈필에서는 자이데(Zaide)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프랑스의 작곡가인 샤를르 에두아르 르페브브르(Charles-Édouard Lefebvre: 1843-1917)도 '자이르'(Zaïre)라는 4막의 오페라를 작곡한 바 있다. 역시 볼테르의 작품을 기본으로 삼은 오페라이다. 스페인의 유명 의류업체인 자라(ZARA)도 실은 볼테르의 작품에서 따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