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뻬로우즈
리옹(Lyon)에서 40km 떨어진 아인(Ain) 평야 한복판에 자그마한 언덕이 솟아있고 그곳에 뱀이 똬리를 틀고 있듯이 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다. 마을 이름은 뻬로우즈(Pérouges), 이 마을에는 1200여 명 정도 주민들이 살고 있다. 아주 작은 마을이지만 이 마을이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뽑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듯하다.
마을은 중세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골목 어딘가에서 금방이라도 투구를 쓴 중세 기사가 긴 칼을 차고 말을 탄 채 달려 나올 것 같은 그런 분위기의 마을이다. 특히 마을 전체에는 지중해에서 가져온 자갈들을 촘촘히 박아놓아 분위기를 한층 고풍스럽고 특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에 있는 80여 개의 건물들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낡은 자갈길이 시작된다. 이 길을 따라 천천히 마을을 둘러보게 되면 마을 전체가 자갈로 꾸며져 있음을 눈치채게 될 것이다. 물론 15세기에 지은 목조건물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도로와 건물들은 당시 지중해에서 가져온 자갈로 지었다고 하니 대단하지 않은가.
뻬로우즈(Pérouges)에 사는 사람들은 뻬로우지앙(Pérougiens), 또는 뻬로우지엔느(Pérougiennes)라고 부른다. 그만큼 이 마을이 독특한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 마을이 처음에는 ‘뻬로지‘(Perogiae)라고 했는데 12세기에 이르게 되면 로마군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뻬로즈‘(Peroges)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된다. 그 후 이 마을에는 이탈리아 뻬로지아(Perotgias)출신 로마인들이 몰려와 정착하기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은 오랫동안 ’뻬로즈‘(Peroges)라고 불렀다. 그 후 1601년 이 마을이 프랑스에 귀속되면서 지금 사용하는 마을 이름 ’뻬로우즈‘(Pérouges)로 자리를 잡는다.
* 몇 년 만에 찾은 마을에는 없던 가게들이 생겨나고 관광버스를 타고 온 단체관광객들까지 보였다.
하지만 마을 이름이 정해지는 데는 대개 특별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 마을도 나름 특별한 이유가 있다. ‘뻬로우즈’ 마을에는 전해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붉은 돌’이라는 동화(* 중세시대에 희생양을 요구하면서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용 이야기)에 나오는 전설처럼 이 마을 곳곳에는 희생양이 되어 죽은 이들의 붉은 피가 배어있다는 것이다. 아마 이 마을에서 살던 주민들이 예전에 적지 않게 희생이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대목이다. 어쨌든 그때 흘린 희생양들의 피가 마을 곳곳에 스며있어 이 마을이 희생양을 바치던 장소라는 의미에서 ‘뻬로우즈’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시나 마을을 알리기 위해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아무튼 18세기가 끝날 때까지 뻬로우즈는 몇백 명 안 되는 주민들이 살았지만 독특한 직물을 생산해 내는 섬유 산업 덕분에 마을은 급속도로 발전해 주민수가 천명 이상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게 되면 갑자기 주민들이 급격히 감소해 100명도 남지 않게 된다.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20세기가 시작되면서 도로와 철도가 확장되고 이 마을에는 다시 사람들이 몰려들고 주택도 늘어나게 된다. 그 덕분에 오늘날 뻬로우즈는 드디어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는 영예까지 차지하게 된다.
이 마을이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된 이유는 중세시대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인기 있는 영화 ‘삼총사’를 비롯해 20여 편의 영화를 촬영했다고 한다. 그러니 중세시대 세트장 같은 분위기의 뻬로우즈에서 차라도 한잔 마시지 않고는 이제 프랑스 여행을 했다는 말을 해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조심스레 들기도 한다.(* 실은 프랑스 사람들도 이곳을 아직 그리 많이 알지를 못하고 있다는 게 함정.)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뻬로우즈. 이 마을은 자갈로 만들어서인지 정말 앞으로도 오래도록 아무 탈 없이 잘 보존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은 그야말로 “오래된 게 역시나 참 좋다”라는 생각뿐이다. 다른 곳도 아름다운 마을이 있을 테지만 이곳은 그 개성이 너무나 뚜렷하다. 보이는 모든 것이 자갈들이다. 바닥부터 담벼락까지 온통 자갈을 사용했다. 하지만 돌처럼 차갑고 딱딱하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그 때문에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차분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전해준다.
이곳에서는 거리가 아니라 골목을 걷는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골목이 거리이고 골목이 세상이다. 이 작은 골목길에 온 우주가 스며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작지만 엄청난 넓이에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과 내가 숨 쉬고도 남을 만큼의 넉넉한 우주 속에 내가 들어가 걷는다. 그러니 가능한 천천히 그야말로 느리게 걸으며 즐기는 게 중요하다.
이 마을에서 사람 사는 공간이 어떠해야 하는지, 내가 사는 마을은 내게 얼만큼의 즐거움과 낭만을 선사하고 있는지 새삼 느껴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잠시 모든 걸 잊어버리고 삼총사의 달타냥이 되어 멋진 환상여행의 나래를 펼쳐보는 것도 멋있지 않을까?
이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한 그림 같은 띠엘르광장(Place du Tilleul)에는 13세기에 지은 호텔 ‘올드 세인트 조지 하우스’(Old St. George House)가 자리하고 있고, 광장 한 복판에는 1792년에 심은 ‘자유의 나무’(Tree of Liberty)와 올드 뻬로우즈 박물관(Museum of Old Pérouges)이 자리하고 있어 이 마을 역사를 한눈에 즐길 수 있다. 더구나 올드 세인트 조지하우스는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이던 시절 G7 정상회담 때 일부러 이곳까지 찾아와 점심을 먹고 갔을 정도로 유명세를 지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번에는 이곳에서 잠시 빌 클린턴처럼 맛있는 요리로 입을 즐겁게 해보는 것은 어떨는지?
뻬로우즈에서는 무조건 즐겨야 한다. 그래야 이곳에 온 이유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골목골목을 지나다 보면 어느새 매력적인 중세 정원인 호투뤼스(Hortulus)와 뻬로우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전망과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으니 오랜만에 ‘나’를 잊을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사이트
- http://www.les-plus-beaux-villages-de-france.org/en/perouges
○ 가는 방법
- 승용차를 이용하면 리옹(Lyon)에서 40분 정도
- 시외버스를 이용하려면 리옹(Lyon)에서 132번, 또는 171번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