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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Jan 07. 2018

라플란드와 사미족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핀란드  8


1. 사미족 보호구역


스칸디나비아 북부지역, 이곳은 흔히 라플란드(Lapland)라고 부른다. 물론 스웨덴과 노르웨이, 그리고 핀란드가 부르는 명칭이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그리 불러도 무방하다. 이 지역의 특징은 빼곡히 자라는 나무들과 바다 같은 호수, 그리고 그리 높지는 않지만 스키를 탈 수 있을 정도로 제법 고도를 갖춘 산악지형 등을 갖추고 있다.


이곳은 빈 땅이 아니었다. 영혼 가득한 땅으로 이미 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사미족이라고 했다. 그들은 숲의 요정이 되었고 호수를 지키는 정령으로,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지키는 영혼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이 땅에 사미인들 이외의 다른 족속들이 자리를 잡고 주인행세를 시작한다. 그들과의 치열한 투쟁은 언제나 사미족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이 났다. 인구 십만도 안 되는 라플란드 사미족에게 바이킹이라는 저력을 지닌 사람들은 결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 후 사미인들은 지배자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사미인들이 믿는 종교는 미신으로 배척당하고 거주지는 제한되어 함부로 이동조차 힘들게 되었다. 점점 더 사미인들의 자치권은 제한되고 축소되기 일쑤였다. 유럽 유일의 원주민이라는 특징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되고 만다. 단순히 지배 논리만이 통치의 기본 조건으로 자리를 잡는다. 모든 것이 그렇듯 지배와 복종의 논리만이 권력으로 치환되고 지배의 정당성으로 자리를 잡는다.


사미인들은 점차 자치권을 얻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몸부림을 치게 된다. 그 첫 번째 결실이 거주지 이동에 관한 것이었다. 현재 사미인들 대부분은 일정한 지역에 거주해야 한다. 일종의 보호구역인 셈이다.


사미인들의 거주지역은 사슴(reindeer)을 키우는 지역을 기본으로 정한다. 따라서 '사미마을'이라는 이름에는 일반적 의미로 부르는 '마을'이라는 단어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사미마을’은 실질적으로 경제와 행정적 책임을 반영한 조직체이다. 이 말은 정해진 공간에 거주한다는 것은 이 지역 내에서 사슴을 키우고 관리하는 일까지 모두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무 곳에서나 사슴을 키우는 일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1) 북극권 지역에 있는 사미족 거주지역, 2) 푸른색 부분이 사미족 거주지역, 3) 핀란드 사미족 보호구역

1) 사미족 보호구역 팻말, 2) 유럽 내 자치요구 분쟁 지역, 사미족 거주지역이 가장 넓고 인구가 제일 적다.



이와 관련해 볼 때 2016년 스웨덴 옐리바레 법원의 판결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스웨덴 라플란드 지역 내에서 사미족이 배타적인 사냥권과 조업권을 가진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미족은 1993년 스웨덴 정부가 토지개혁의 일환으로 사미족 영토에서 일반인들이 사냥이나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허용하자, 고유의 권리를 빼앗겼다며 법적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스웨덴 법원은 사미인들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사미 의회는; “사미인 이외의 사람들이 우리의 땅이나 자연자원, 우리의 전통문화나 문화재를 자신들의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라고 선언한 바 있다. 따라서 핀란드나 스웨덴 사람들이 사미인들의 문화를 과대 포장해 원주민의 삶인 양 체험상품을 판매하는 것 역시 사미 민족문화에 대한 저작권 위반이라는 주장이다. 자신의 문화적 권리에 대한 권한과 책무는 그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사미족 거주지역 내에서 진행되는 적지 않은 문화체험 상품이나 관련 체험행사들이 그렇기 때문에 비합법적이라는 말이다.


아무튼 스웨덴에는 51개의 사미마을이 있다. 중부지방 이드레(Idre) 부터 핀란드 북부 지방에 이르는 곳까지 퍼져 있다. 그중 33개의 마을은 산악지방에 있고 10곳은 숲지대에 있다. 이들 지역적 차이는 얼마나 이동 권한이 있는가 하는데 달려있다. 예를 들어 숲에서 사슴을 사육하는 사미인들은 일 년 내내 정해진 숲에서만 순록을 사육해야 하는데 산악지형에서 순록을 방목하는 경우에는 산에서 내려와 숲이 있는 서쪽이나 동쪽 해안가로 이동을 해 순록을 사육할 수 있다. 사슴 먹이와 관련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8개 마을은 소위 ‘양보’ 마을(concession village)이라고 부르는데 이곳은 모두 비사미인들이거나 동물 소유주들을 대신해 가축을 사육해 주는 전문 동물 사육 마을이다. 키루나에는 6곳의 산악 사미마을과 1곳의 숲마을이 있다. 유카스야르비(Jukkajärvi)에 있는 마을은 가브나 마을이라는 지역에 있는 탈마(Talma) 마을이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다.


스웨덴에서 가장 큰 사미족 마을은 스웨덴 최북단(핀란드 국경지대에 가까운.) 요크모크(Jokkmokk)라는 지방자치구역에 있다. 그곳 마을 크기는 13,485 평방킬로미터이고, 그곳에는 300명의 사미인들과 95개 순록 사육 기관이 일을 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15,500마리의 순록 사육을 허가받아 키우고 있다. 현재 스웨덴에는 27만 마리 정도 순록을 키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을 사육하는 사람들은 대략 5천여 명 정도 되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스웨덴 거주 사미인들 중 전통적으로 사슴 사육을 가업으로 이어받은 경우는 10% 정도뿐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나머지는 최근 추세에 따라 현지인들과 비슷한 직업을 찾아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1917년은 핀란드가 러시아로 부터 독립한 해이자,  북유럽 라플란드 원주민 사미족 대표들이 처음 만난 해이기도 하다. 1) 사미족 대표 첫 만남 기사, 2) 자치 100주년 기념공연 안내 포스터

* 1200년에 이미 사미인들이 대형 사슴농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 1989년부터 라플란드 사미족 거주지역 국가에 사미 의회를 설립하기 시작했다.



2. 사미족 국가와 국기


한편, 사미족은 국가기념일(national day)을 정해 기념하고 있는데 모두 11개의 기념일을 제정해 기념한다. 그중에서도 2월 6일은 사미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경일이다. 이날은 사미인들이 1917년 처음 스칸디나비아 북부 지역의 4개국(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러시아) 대표들이 남쪽과 북쪽의 경계를 넘어 처음으로 노르웨이 트론헤임(Trondheim)에 모여 사미회의(sámi congress)를 개최한 날이다.


사미인들은 그들 고유의 국기도 가지고 있다.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 그리고 초록색 4가지 색을 사용하고 있다. 이 깃발은 아스트리드 볼(Astrid Båhl)이 디자인을 했다. 이 깃발의 모티브는 샤먼의 북에서 가져왔고, 남부지방 출신 사미 작가 안더스 펠너(Anders Fjellner)가 사미인들을 태양의 아들과 딸이란 내용으로 쓴 ‘태양의 자손들’이란 시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붉은색은 사랑과 온정을, 초록은 자연을, 노랑은 태양을, 그리고 파랑은 삶의 근원을 나타내는 물을 상징한다. 그리고 각각의 색을 하나의 원으로 감사고 있는 것은 통합의 정신을 표현한 것인데 이것은 태양과 달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사미인들은 국가도 가지고 있다. 국가는 ‘사미가족의 노래’(Sámi soga láulla)라는 제목으로 부르는데 사미족의 공식 국가이다. 국가의 가사는 초대 사미 의회 위원이었던 이삭 사바(Isak Saba)가 썼고 작곡은 노르웨이 작곡가 아른 쇠를리(Arne Sørlie)가 담당했다. 국기는 모두 1986년 오레(Åre)에서 개최된 제13차 사미 의회에서 추인되었다. 그리고 국가의 멜로디는 1992년 헬싱키에서 개최된 사미회의에서 추인되었다.

* 사미족 국기와 사미족 국가, 국가 가사(Same soga laula)가 실린 1906년도 신문

* 사미족 전통의상, 모자와 장갑 등

* 100여 년 전 사미인들 생활모습, 사미인들이 사용하는 천막 라부(lavúu)를 배경으로 촬영했다. 오른쪽은 전통복장을 한 사미족 어린이들이 오로라를 바라보는 모습의 80년 전 우편엽서.




3. 사미족 노이디와 샤머니즘


사미족 주술사 노이디(noaidi)는 사미족 사회에서 영적인 존재와 자연 세계의 중재자로서, 그리고 사회와 종교의 중재자로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노이디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누군가 그 일을 맡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근이 들었거나 가정에 우환이 생겼을 때, 또는 사냥을 나갈 때 등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누군가 노이디가 될 수 있다.


노이디의 임무는 당연히 신과 접신을 하고 신의 노여움을 풀어주는 일을 한다. 노이디는 전문직이기 때문에 가업으로 계승되기도 하며 지역 내에서 특별히 선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노이디는 정신적인 자질과 자기통제력을 가진 자라야 한다.


사미인들이 기독교 신자가 되기 이전에는 노이디(샤먼)를 미신이나 마술, 또는 우상숭배라는 이름으로 천시했다. 따라서 교회와 국가기관은 이들에게 왕의 기독교도가 될 것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미인들은 기독교인이 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뿐더러 자신들이 살고 있는 자연과 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기독교라는 종교의 부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17세기 말 교회는 드디어 사미인들에게 그들이 추종하는 종교(미신으로 분류된)의 신과 결별할 것을 경고한다. 그리고 사미인들을 겁박하기 위해 스웨덴 북부 지역인 아레플로그(Arjeplog)에 사는 사미인들이 존경하는 60살 된 노이디 라르 닐손(Lars Nilsson)을 사형에 처한다. 그가 ‘우상숭배 법’을 위반했다는 이유였다.


1693년 어느 봄날 라르 닐손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스웨덴 왕국의 관리들이 그가 보는 앞에서 그동안 그가 지니고 있던 사슴뿔로 만든 북채와 신을 부를 때 사용하던 북(magic drum)을 불속에 던져 태워버린다. 잠시 후 라르 닐손도 불구덩이에서 죽음을 맞는다.


* '우상숭배 법'을 위반한 죄로 화형을 당한 사미족 샤먼 라르 닐슨, 샤먼이 사용하는 사슴뿔로 만든 북채와 북

* 샤먼이 사용하는 북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모양이 다르다.



샤먼으로서 노이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샤먼으로서의 능력을 가지고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개인들은 하늘의 신과 소통을 하게 된다. 이때 샤먼이 북을 치고 춤을 추고 주술을 외운다. 그런데 샤먼이 사용하는 북은 지역에 따라 약간씩 다르게 만들었다.


기독교인들은 이 북을 이교도(Paganism)의 상징으로 보았다. 그래서 기독교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많은 북들을 17~8세기에 파괴한다. 대략 70개의 북들이 현재 유럽 여러 나라 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북들은 대개 350년에서 400년 정도 된 것들로서 기독교로 개종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불에 태워 없애버렸는데 다행히 살아남은 것들이다.


중세시대에 가톨릭 교회는 사미인들이 믿어온 종교를 개종시키려 했다. 기독교의 보급과 교회권의 강화는 국내 정치력을 과시하는 한 부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에서 시작된 기독교 개종과정은 제일 먼저 1346년 토르니오(Tornio)에서 사미인에게 세례를 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후 교회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사미 거주지역에 강제로 교회를 짓기 시작한다. 18세기에 이르면 노르웨이 해안가와 스웨덴 사미인들 거주 지역에 교회의 수가 급격히 늘어난다. 그러나 이에 저항하는 움직임도 만만치 않았다. 가장 특기할만한 종교운동은 라스 레비 래스타디우스(Lars Levi Laestadius: 1800-1861)가 주도한다. 자신들의 종교와 기독교와의 갈등이 점차 치열해지면서 적지 않은 희생도 따랐다.


사미인들에게 종교 개종을 요구한 것은 비단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만이 아니었다. 지금의  러시아 북서쪽에 위치한 콜라반도의 사미인들 역시 당시 러시아 정부로부터 정교회로 개종할 것을 강요받는다.


러시아 오소독스 교회는 15세기에 이르러 콜라 반도(Kola)와 페트사모(Petsamo)에 거주하는 사미인들을 개종시키기 시작한다. 정교회는 사미 신화에 대해 관대한 문장을 사용하면서 접근을 시도했다. 그것은 특히 사미 문화의 한 부분으로서 정교회의 신앙을 확립하기 용이하게 하려는 술책이기도 했다. 정교회의 개종 작업은 주로 지금의 핀란드 라플란드 동쪽 중심도시 넬림(Nellim)에서 진행되었다.


* 현재 사미인들은 TV와 라디오, 신문과 잡지 등 모든 미디어를 이용하고 있다. 1) 노르웨이에 있는 사미 의회 건물에 TV와 라디오 방송 시설을 설치하고 정규방송을 한다. 건물은 사미족 천막 라부를 본떠 지었다.

1) 사미어로 첫 라디오 방송을 하는 모습, 2) 사미인 뎃상 작품들, 3) 파리에서 공연하는 사미족 출신 가수 소피아 얀녹(Sofia Jannok)




4. 사미 문화


예술이란 것은 문화의 생명력을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삶의 방식은 여러 예술적 행위를 통해 구현된다. 사미인들은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그리고 직접 손으로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이런 다양한 문화적 산물들은 사미인들의 정신을 자극하고 민족혼을 일깨우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특히 사미어로 쓴 문학작품들을 발간하는 일은 대단히 의미 있는 작업이다. 그뿐 아니라 사미어로 부르는 음악활동 역시 그들만의 문화를 강화하고 전파하는 일로 대단히 유용한 수단이자 방법인 것이다. 그리고 연극은 물론 미술작품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문화적 작품 활동을 통해 사미인들은 자신들을 표현해 왔다.


1723년 처음으로 해외 작가의 눈에 비친 사미족 기록이 알려지기도 했다. 영국 작가 어브리 머트레이(Aubry de la Motraye)가 영국 왕 죠지 1세(King george I)를 위해 사미인들의 삶에 대해 민속학적인 글을 남긴다. 그가 쓴 글에서 사미인들은 고유한 생활방식을 가지고 생활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특히 사민인들의 전통적 종교에 대해 자세히 기술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미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사미어는 대단히 중요한 구실을 한다. 사미인들은 우랄알타이 계열의 뿌리를 지닌 사미어를 오랫동안 사용해 왔는데 사미인들이 거주하는 스칸디나비아 라플란드 지역마다 약간씩 다른 방언들을 사용한다.  


그동안 국가 정책으로 사미인들에 대한 동화정책을 실시해 왔기 때문에  적지 않은 사미인들이 그들의 언어를 잃어가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대략 절반 정도만 자신들의 언어인 사미어를 사용하고 나머지는 현지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미어는 동부지역 언어와 중부지방, 그리고 남부지방 언어로 구분하고 있는데 지역들마다 방언이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사미어에는 한 가지 특별난 언어적 특징이 있다. 사미어에는 눈 상태(snow condition)를 설명하는 단어가 300여 개가 있다고 한다. 사미인들은 자연과 기후조건을 설명하는 단어들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사미인들은 증오(hate)나 전쟁과 관련한 단어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언어에서 조차 자연친화적인 국민성을 알 수 있으니 참 적은 숫자의 민족이지만 엄청나게 큰 울림을 주는 민족임을 느끼게 해준다.


SÁMI FOLK MUSIC: Máddji, "Dawn Light", https://youtu.be/46WW3D5a_TU


1) 이나리에 있는 박물관 포스터, 2) 사미어 방언 지도, 3) 사미족 거주지역에는 항상 국기가 걸려 있다.

* 핀란드 라플란드 중심도시 이나리에 핀란드 사미 의회 건물이 있다. 사미의회 안내판과 실내 도서관

* 이나리 중심가는 사미 공화국 같다. 사미족 상징 같은 4색기가 펄럭이고 사미어 간판을 사용한다.



○ 사미족 연혁


1200: 노르웨이 베프센(Vefsen) 지역에서 대규모 사슴농장 출현

1910: 처음으로 작가 요한 투리(Johan Turi)가 사미어로 쓴 작품 ‘Muitalus samiid birra’ 발행

1917: 첫 번째 스칸디나비아 전체 사미족 대표 회의 개최, 핀란드 독립

1947: 첫 번째 사미어 라디오 뉴스를 오우루(Oulus)에서 방송. 그리고 핀란드가 파트스요키 삼각주 지역(Paatsjoenniska)을 소련에게 팔다.(지금의 핀란드 넬림(Nellim)과 인접한 러시아 지역)

1953: 스웨덴 요크목(Jokkmokk)에서 사미인들 회의 개최

1956: 북극권 사미회의 구성

1969: 사슴농장법 제정, 정부가 사슴 농장 설립을 위해 대출을 해주도록 관련 법 제정

1973: 새로운 주거법 채택으로 사미인 주택 개량이 가능해지다.

1984: 자영농가법 제정

1987-1988: 도날드덕 사미어 만화책 발행

1989: 노르웨이 사미 의회 설립

1993: 스웨덴 사미 의회 설립

1996: 핀란드 사미 대표단 명칭을 사미 의회로  변경




○ 참고 자료


- Sámi Pariiamenet Document, “Oappástuva!”

- Sámediggi, Elected assembly for the Sámi people in Norway

- SAMi magasiidna, 2017/2

- The Sami in Finland

- Wikipedia

- www.samediggi.fi 

- http://nutti.se

- 이나리 박물관(Inari SIIDA) 자료


* 핀란드 북부 라플란드는 사미어로 Sápmi, 핀란드어로 Lappi라고 한다.  3) 노르웨이-핀란드 국경 표지판

사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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