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한마디 /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가”
"Cui bono"(kwi boʊnoʊ) 이 단어의 뜻은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가”라는 말이다. 따라서 ‘크위 보우노우’는 현대에도 법률과 수사학과 관련된 라틴어 질문으로 누가 범죄의 동기가 있을 만한지 찾아내기 위해 필요한 질문이라고 하겠다. 특히 숨은 동기를 찾아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하는 질문이라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다.
대개의 경우 처음에는 누구나 어떤 범죄 혐의가 있을 때 당연히 아니라고 하기 때문에 이럴 때 “누가 이익을 취하게 되는가”를 먼저 생각한다면 문제 해결 열쇠를 찾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더구나 혐의가 있거나 책임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개의 경우 전면에 나서지 않고 혐의를 부정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의문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구는 또한 "cui prodest"("크위 프로디스트: 누가 이익을 도모하는가")라는 말로 바꾸어 사용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이 어구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주로 금전적 이득을 추구하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기에 흔히 희생양을 내세워 관심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버리거나 하게 되면 이익을 얻는 범인은 항상 분명하지 않고 모호하게 숨어버리게 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특정 사건에서 금전적 이득과 관련된 부분을 중점적으로 파헤치는 일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로마의 연설가이자 원로 정치인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그의 연설 프로 로스치오 아메리노 84번째 부분에서 "cui bono"란 표현이 로마의 재판관인 루시우스 카시어스 롱기누스 라빌라가 만든 것이라고 언급했다. 로마 사람들이 매우 정직하고 현명한 재판관으로 평가했던 루시우스 카시어스는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가?"라는 질문을 습관적으로 했다.
재판관으로서 카시어스가 빈번하게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가?”라는 질문을 해댄 것은 분명 당시에 가장 중요한 질문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따라서 키케로 역시 이 문구를 그가 맡은 재판에 대한 변호를 할 때 활용함으로써 논리적 설득을 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이 말은 또한 최근 들어 많은 사회학자나 범죄심리학 등에서 이용을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는가”라는 말의 진의가 바로 어떤 행위의 의도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와 대화를 하거나 심지어 간단한 몸짓을 하는 경우라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대화나 몸짓이 궁극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정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다면 분명 그 당사자는 이익을 보는 것이기에 그에 대한 합당한 대응을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관련해 볼 때 우리 사회에서도 이 말, 즉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라는 문구가 반드시 적용되어야 할 곳이 있다. 최근 전직 대통령이라는 자의 수상한 행보가 백일하에 하나씩 드러나 소상히 밝혀지고 있다. 특히 자신의 가신이라고까지 여겼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자기가 모셨던 사람에게 불리한 증언들을 해대고 있다.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인간관계가 개판이라 해도 좋을 정도이다.
도대체 그런 사람을 그동안 그리도 모시고 감싸고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궁금증이 든다. 어쨌거나 거꾸로 생각하면 그런 사람들일수록 결말은 인간말종임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만고의 진리를 다시 한번 증명해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에 자연스레 “이익을 본 사람”을 쉽게 가려낼 수 있게 된다.
누군가에게 이익이 되는가라는 전제를 생각해 본다면 역시 그런 인간말종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되어있던 구조와 관계였기 때문에 결국 모두 들통이 나고 만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제부터 라도 인간관계에서 어느 한편에게 지나친 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만일 오늘 현재에도 똑같이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이익이 돌아간다면” 그건 또 다른 개판이거나 아니면 그에 합당한 보수를 정당하게 지급해야만 억울한 관계가 생기지 않을 것이란 점을 반드시 기억하고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하겠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