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수 Nov 15. 2018

슬퍼하지 마, 그래도 이만큼이나 추억이 있는걸

레오와 마리를 보내며

어느새 20여 년의 시간이 지났다.

강아지를 좋아하던 아이를 위해 드디어 애완견을 입양하기로 했다.

진열장 안에 두 마리가 덩그마니 앉아있다 아내와 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는지 일어나 낑낑대며 몸놀림을 한다.

마치 자기를 봐달라는 듯이, 그런데 문득 두 마리가 모두 참 어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중 한 마리는 제법 토실토실했고, 다른 한 마리는 잘 짖지도 않고 가냘파 보이는 게 애리 애리 했다.

어느 놈을 고를까 망설이다 이내 비리비리한 놈으로 집어 들고 집으로 왔다.


도대체 한 달이나 되었을까 싶은 어린 녀석을 내놓다니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그날부터 먹이를 불려서 주고 이거 저거 챙겨주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자 제법 힘이 나는지 짖기도 하고 곧잘 까불어 댄다.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10여분을 뛰어다니며 반갑다고 환영행사를 한다.

세상에나 누가 내게 그리 반가움을 표했단 말인가.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도 강아지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방에 처박혀 거실에 밥 먹으러 나왔다 들어가면 다음날 학교 갈 때까지 얼굴 조차 볼 수 없었는데 "강아지가 낑낑대는데 왜 그러는지 좀 봐줄래"라고 하면 강아지를 어찌했길래 그런 거지 라며 뛰쳐나온다.

강아지가 우리 집에 입양되고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아들 얼굴 보는 거였다.

그때부터 강아지는 우리 집 귀한 식구가 되었다.


처음 우리집에 와 목욕을 한 후 레오 모습들
레오는 창가에서 햇빛을 쪼이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지요.


강아지 이름은 레오라고 했다.

밀림의 왕자 레오.

예전 만화영화 주인공 이름이기도 했던 터라 이 강아지와 잘 맞는 이름이라 생각했다.

한 달여 정도 지나면서 이름을 부르면 알아듣는 건지 이름을 부르면 제법 알아듣는지 달려오곤 한다.


레오가 우리 집에 들어와 처음으로 목욕하고 찍은 사진을 보니 날짜가 2001년 1월 7일이다.

처음 레오를 입양하고 일 년 정도를 혼자 지내다 보니 식구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고 나면 혼자 집을 보는 게 무척이나 힘이 들었던지 한참을 짖어댔다.

아파트에 살다 보니 다른 집에서 시끄러워했을 텐데 다행히 아무도 뭐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레오가 혼자 지내는 게 너무 안쓰러워 강아지 한 마리를 더 입양하기로 했다.

레오가 수놈이다 보니 이번에는 암놈을 입양하기로 했다.


레오를 데려오고 일 년이 조금 더 지난 시점에서 두 번째 강아지를 데려왔다.

두 번째 녀석은 데려올 때 6개월 정도 지난 터라 제법 고집도 있어 보였다.

레오를 위해 준비된 식탁과 개껌 등 놀이기구를 집에 처음 당도하자마자 모두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개껌을 씹고 물도 먹고 먹이도 먹고, 그런 그 녀석을 레오는 저만치 떨어져 바라만 보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 굴러온 거지라는 표정으로 새로운 꼬맹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번째 강아지 이름은 마리라고 했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생각한 게 아니라 매디치 가문의 마리를 생각해 이름을 그리 지었다.

레오와 마리, 둘의 관계가 무척 재미있을 것이라 고대를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예상대로 레오는 점차 마리에게 반응을 보이더니 이내 친해진다.

마리 역시 처음에는 모두 자기 차지처럼 오만함을 보이더니 이내 둘만의 관계를 즐기려는지 하나씩 양보도 하고 같이 놀기까지 한다.

볼수록 귀엽다는 순간들이 내내 이어졌다.


마리가 처음 우리집에 오던 날 마리는 무척이나 우아했지요.
마리가 두살 되던 해에 새끼를 낳았다.


마리가 우리 집에 입양 온 지 2년 정도 지난 즈음 레오와 마리는 새끼를 낳았다.

한 마리는 수놈이고 한 마리는 암놈이었다.

마리의 모성애는 눈물을 자아낼 만큼 대단했다.

거의 한 달여를 꼼짝 않고 있는 자리에서 꼼짝 않고 잘 먹지도 않으면서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지켰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식구들이 모두 밖에 나갔다 돌아와 보니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상자를 만들어 임시 새끼들 숙소를 만들어 주었덨는데 그걸 어찌 넘어갔는지 한 마리가 자기 집 밖으로 나와 현관문 쪽으로 떨어져 숨을 거두고 말았던 거였다.


그걸 아는지 마리는 다른 한 마리를 지키고 낑낑대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내내 안타까운 날들이 그렇게 여러 날 지났다.

마리는 다행히 기력을 되찾고 남은 한 마리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어미와 새끼는 서로 떨어지지 않고 내내 붙어 지냈다.

그러다 두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가까운 친구에게 새끼를 분양했다.

마리는 그 후 우울증을 앓는지 강아지와 함께 지낸 상자로 만든 집과 갖고 놀던 인형에 유난히 집착을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 마리는 건강을 되찾고 레오도 건강하게 병원 한번 다녀오는 일 없이 지냈다.

그 사이 레오와 마리의 새끼는 15살 정도 되던 해에 죽었다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마리가 17살이 되었다.

그리고 마리는 피부에 종양이 생겨 한 달에 한 번꼴로 세 번이나 수술을 하고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마리가 떠나던 날 우리 부부는 외출했다 저녁에 돌아왔는데 들어오자마자 마리를 안아주었는데 아내 품에 안겨 괴성을 지르더니 금방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하루 종일 물 한 모금 먹지도 못했을 텐데 미안하고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 마리는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그 후 일 년을 혼자 쓸쓸히 지내며 레오는 마리의 흔적을 좇아 다녔다.

생각보다 감성이 많은 레오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해서 그런지 우리 식구들과 제법 감성을 전하고 받는 그런 관계를 유지해 왔다.

어떤 때는 마치 지가 사람인양 뭐라 하기도 하고 대들기도 하고 창피해할 줄도 알고...



그런 레오가 드디어 한 달여 전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레오를 마리 곁에 묻고 돌아오려니 참 쓸쓸하고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아내는 미리 하도 울어서 눈물이 나오지도 않는다 했는데 집에 돌아와 가끔씩 몰래 훌지럭 거린다.


레오와 마리가 누워있는 곳에 단풍이 참 곱게도 물들었다.

아침이면 산등성이 너머 아침햇살이 비춘다.

그 사이로 단풍 든 나무들이 바람에 살며시 인사하듯 흔들린다.


레오와 마리가 떠났지만 함께 지내며 참 많은 추억들을 남기고 갔으니 가끔씩 기억과 추억이라는 설합을 열어 향내 맡으며 지낼 수 있어 아쉽지만 좋다.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의 편린들이 오래된 항아리 속에 가득하다면 그리 슬퍼만 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을까.

지난 시간이, 함께 한 시간이 적지 않으니 그날들 만큼만이라도 기억하며 즐거워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건 아마 아름다운 동행이 되겠지.


레오와 마리, 그리고 나의 식구들,

모두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름들이다.

즐거운 추억을 남겨준 레오와 마리, 두 녀석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남은 시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아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짜와 가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