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벨기에 13
1. 벨기에 여행의 참맛!
벨기에는 북부 네덜란드어 권역의 플랑드르 지역과 남부 프랑스어권의 왈롱 지역으로 크게 나뉜다. 왈롱 지역은 벨기에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1982년 설립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연합회가 벨기에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왈롱 지역, 그중에 특히 크루페(crupet) 지역을 꼽았다. 우리에게는 별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알려지지 않아서 더 좋은 곳이 바로 왈롱 지역이다. 왈롱 지역에는 분명 보석 같은 마을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왈롱 지역의 중심도시라고 할 수 있는 곳은 디낭이다. 디낭은 브뤼셀에서 자동차를 타고 남쪽으로 100km 정도 가면 만난다. 디낭은 그리 크지 않은 도시로서 주민 15,000명 정도가 사는 조용한 농촌마을 같은 느낌을 주는 도시이다. 디낭은 지정학적으로 뫼즈 강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는 작은 도시이다.
디낭은 로마시대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도시 이름은 여신 디아나(Diana)에서 유래했는데 디아나는 로마 신화에서 사냥의 여신으로 야생동물과 숲, 달을 관장하는 여신이다. 도시 이름처럼 디낭 주변은 그야말로 야생동물이 가득한 숲으로 둘러 싸여 있다. 자연적인 환경이 그 어떤 농촌보다 풍요로워 보인다. 그래서인지 영주들 성이 숲 속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마치 동화 속 요술공주가 살고 있는 듯한 그런 성과 수도원 건물들이 숲 속 도로를 지날 때마다 하나씩 나타난다.
브뤼셀 공항에 도착해 자동차를 빌려 디낭으로 가는 내내 멋진 숲과 달빛이 서린 고요한 강줄기를 따라간다. 특히 왈롱 지역의 관문이랄 수 있는 도시 나무르에 이르면 뫼즈 강변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한 성벽과 강변의 집들을 만나게 된다. 나무르 성곽에 올라 잠시 도시를 바라보며 고즈넉한 왈롱 지역의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도 좋다. 그리 숨 가쁘게 달려갈 필요는 없다. 왈롱 지역 분위기가 쉬엄쉬엄 여유를 부리는 그런 동네이니 말이다.
나무르에서 뫼즈강을 따라 디낭으로 가는 길 역시 가히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이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오픈카를 타고 달리면 딱이겠다 싶은 그런 도로를 달린다. 프랑스어로는 뫼즈(Meuse), 네덜랜드어로는 마스(Maas) 라고 하는 강을 끼고 달리는 길은 정말이지 멋지다. 뫼즈 강가에 펼쳐진 아름다운 강변 집들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문득 “뫼즈 계곡의 안개”가 떠오른다.
1930년 12월 뫼즈 계곡에 대기 오염과 환경 조건의 악화로 아황산가스 농도가 짙은 스모그가 발생한다. 벨기에 동쪽 리에주(Liège)에 가까운 엥기스(Engis) 지역에 안개처럼 심각한 공해가스인 스모그가 발생한 것이다. 스모그가 발생한 뫼즈 계곡은 인구 밀도가 높은 공장 지대이다. 이 지역에서 며칠간 발생한 짙은 스모그로 63명이 사망하고 수천 명이 입원을 했다고 한다. 사망자 대부분이 엥기스 공장지대에서 발생했다.
잠시 악몽 같은 엥기스 스모그가 떠올랐지만 다행히 자동차는 동쪽이 아닌 남쪽으로 향한다. 어느새 왈롱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역을 지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된다. 디낭에 도착하기 전 잠시 도로에서 벗어나 왈롱 지역의 보석이라는 크루페(Crupet) 성으로 향한다. 이 성은 숲 속으로 한참을 들어가면 나온다. 가는 내내 고즈넉한 숲길이 이어지고 강물이 흐르는 숲 속 길가에 피어있는 싱싱한 야생화들도 만난다. 숲 속 물소리가 들리는 개울가 언저리 어딘가에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는데 수도사들의 노랫소리인 듯한 합창소리가 들려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숲 속에서 수도사들의 합창을 듣게 되다니 이보다 황홀할 수가 없다.
그런데 크루페 성은 지금 수리가 한창이다. 성 자체는 생각보다 특별한 감흥이 느껴지지를 않는 소박한 형태의 성이다. 오히려 크루페 성을 오가는 길목 주변 풍광이 더 좋다는 느낌이다. 잠시 후 계속 숲 속 마을 크루페 성이 있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또다시 뫼즈 강변으로 나와 디낭 인근에 있는 숙소로 향한다.
드디어 오늘의 목적지인 디낭 못 미친 곳에 있는 숙소로 정한 마을 아네(Ahnée)에 도착한다. 이 마을 숙소에서 디낭은 5분 정도 거리밖에 안된다. 이곳을 숙소로 정한 이유는 단지 디낭만을 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왈롱 지역을 오가며 여러 곳의 명소들을 찾아다니기 좋은 베이스캠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며칠을 이곳에서 묵기로 했다. 더구나 숙소는 오랜만에 3층 집 전체를 혼자 쓴다. 주인은 브뤼셀에 머물고 있고 필자는 3층 집 중 3층 스튜디오를 사용하게 된다. 이 집의 진짜 매력은 잘 갖춘 주택인데도 외진 곳에 위치한 때문에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지 집주인이 부담 없는 가격으로 내놓았다. 하루 숙박비가 우리 돈으로 하루에 삼만 사천 원 정도밖에 안된다. 아무튼 모처럼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혼자 편하게 부담 없이 지낼 수 있으니 마음이 편해 좋다.
이제 이곳에서 머무르면서 왈롱 지역의 명소들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북쪽의 플랑드르 지역과 남쪽의 왈롱 지역의 경계에 위치한 몽스부터 다녀올 것이다. 이곳은 반 고흐가 청년 사절 고향인 준더레흐트(Zunderecht)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공장지대인 몽스(Mons)로 찾아와 공장지대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곳이다. 그의 선량한 체취가 묻어있는 몽스 역시 인근에 공장이 들어서 있는 공업지대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숙소인 아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석 같은 명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왈롱 지역이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로 대부분 한두 시간 내에 돌아볼 수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인 바로 벨기에 맥주의 본 고장임을 느낄 수 있는 마을과 수도원들이 여럿 있다. 한 시간 내 거리에 있는 벨기에 수도원 맥주 맛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현재 수도원에서 직접 양조하는 트라피스트(Trappist) 맥주로 등록되어 있는 맥주는 전 세계에 12개밖에 안된다. 이중 벨기에에 6개가 있고 그중 3개가 디낭이 속한 나무르 주에 있다. 그뿐 아니라 수도원에서 전해준 비법으로 제조한 수도원 맥주도 여러 개가 있다. 그러니 이를 마다한다면 왈롱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의미밖에 없을 것이다. 공항 대합실에 걸려 있던 “취할 준비되셨나요?”라고 써놓은 배너 광고를 떠올리며 역시 벨기에 여행의 진미는 바로 맥주와 함께 한껏 취해보는 일이 바람직하다는 스스로의 결론을 내린다.
다음날 이른 아침 새소리에 눈을 떠보니 날이 조금 흐리긴 했지만 일기예보는 맑음이라고 했다. 간단히 아침을 차려 먹고 드디어 남쪽으로 향한다. 가까운 곳에 그리도 고대하던 디낭으로 향한다. 잠시 후 디낭에 도착한다. 디낭에 도착하면서 시내 중심부로 들어가는데 제일 먼저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트럼펫 조형물들이 반긴다. 그리고 다리를 건너면 도시의 상징인 노트르담(Notre Dame) 대성당과 언덕 위의 요새 씨타델(Citadelle)이 버티고 서있는 것을 보게 된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1227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었는데 대성당 뒤에 있는 절벽 암석들이 무너지면서 일부가 파괴되어 고딕 양식으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가 1703년 또다시 이 성당을 파괴하는데 1821년에 네덜란드 지배를 받던 기간 중 재건축을 한다. 한편 뫼즈 강변 언덕에 있는 씨타델 요새 역시 비슷한 시기에 네덜란드가 만들고 군대 막사로 쓰기도 했는데, 1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과 프랑스군의 격전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하자 완전히 폐허가 되고 만다. 1914년 8월 23일, 디낭에서 674명의 시민들이 독일군에 의해 무참히 학살을 당한다. 그로부터 한 달 사이에 벨기에인과 프랑스인 5천여 명이 또다시 독일군에게 처형을 당한다. 독일군의 무차별적인 민간인 학살로 인해 1914년 한 해에만 1000명이 넘는 민간인이 죽고, 디낭 시에서는 700명 가까운 인명이 살해당한다. 벨기에의 적은 인구를 생각할 때 이 수치는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지금은 아름다운 도시 경관을 자랑하지만 지난 시간 속에서 디낭은 꽤나 깊은 상처가 아픈 역사로 남아있다.
아름다운 디낭을 보면서 지난 흑역사를 떠올리는 건 결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이를 딛고 일어나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밝은 모습은 외지인인 필자를 기분 좋게 해 준다. 특히 아름다운 디낭 거리와 골목 곳곳에 세워져 있는 멋진 색소폰 모형을 보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2. 색소폰의 고향 디낭
디낭은 색소폰(Saxophone)을 만든 아돌프 삭스(Adolphe Sax, 1814~1894)가 태어난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디낭 거리 곳곳에 다양한 모양의 색소폰이 즐비하다. 색색의 색소폰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는 이곳이 색소폰을 발명한 아돌프 삭스의 고향임을 알게 해 준다. 그래서 해마다 여름이면 디낭에서 재즈 축제를 열고 삭스와 색소폰 탄생을 축하한다.
삭스의 아버지는 디낭 출신의 악기제조상으로 여러 가지 관악기를 만드는 일에 종사를 했다. 아버지 어깨너머로 악기 만드는 법을 배운 삭스가 처음 만든 것은 베이스 색소폰이었다. 그는 이 악기를 1842년 베를리오즈에게 보여 주고 1844년 처음으로 관현악단에 포함시켜 시연하게 한다. 그 후 1846년 3월 20일 파리에서 마침내 그는 새로운 악기로서 색소폰 특허를 얻는다. 삭스는 원래 클라리넷과 플루트를 연주하며 파리에서 음악가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삭스는 1846년 자신이 발명한 악기를 오케스트라용과 군악대용 두 그룹으로 나누어 특허를 획득한다. 색소폰은 관악기들 중 가장 역사가 짧은 축에 속하는데, 삭스는 같은 군에 속하는 악기로 넓은 음역을 연주할 수 있도록 소프라니노, 소프라노, 알토, 테너, 바리톤, 베이스, 콘트라베이스 7가지를 취주 악용과 관현악용 2가지를 만든다. 그중에서 알토와 테너 색소폰이 여러 분야의 음악에 쓰이고 있다. 어쩌면 삭스는 색소폰만으로도 오케스트라가 가능하게 만들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소프라노 색소폰은 관이 곧지만 알토 이하는 상부와 하부가 S자형이고, 음색은 목관과 금관의 중간으로 폭넓은 육성적인 울림이 독특하다. 또한 저음 악기에서 고음 악기까지 음색의 통일이 잘 되어 있다. 연주법은 다른 목관악기보다 쉬운 탓인지 이 악기가 급속히 보급되어 퍼져나갔다.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색소폰이 클라리넷과 같이 하나의 리드가 들어있는 취구를 사용하는 악기이다 보니 금관악기가 아니라 목관악기로 분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색소폰을 처음 본 순간 빛나는 광채의 금속으로 만든 색소폰은 누가 봐도 금관악기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 색소폰은 목관악기이다.
색소폰은 그 모양새도 아름답고 목관악기 특유의 섬세함과 부드러움에 금관악기 특유의 강렬함까지 더해져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악기이다. 간혹 색소폰을 연주하는 소리와 모습을 보노라면 멋스러운 느낌이 든다. 그건 어쩌면 악기 자체의 생김새가 지닌 매력적 모습이 더해져 악기 연주자와 악기의 모양이 주는 조화로움이 악기 소리에 더해지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다.
디낭 중심부 골목 한편에 있는 삭스 기념관과 씨타델 요새를 둘러보고 시내 중심인 다리께로 다시 나온다. 디낭의 모습들을 증명사진처럼 찍어대다 문득 성당 바로 근처에 있는 멋진 간판의 레스토랑이 눈에 들어온다. 카페 레페(Cafe Leffe),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