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네덜란드 황금기 화가들
황금기의 화가 메추의 그림들을 보면 볼수록 그림들 분위기가 묘하게도 페르메이르 작품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음은 공연한 기우일까?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메추의 작품에 대해, “메추는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의 영향을 받았다”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I.
가브리엘 메추(Gabriel Metsu: 1629-1667), 그는 네덜란드 황금기 풍속화가이다. 1629년 라이덴에서 태피스트리 제작자이자 화가인 자크 메추(ca. 1588~1629)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메추가 언제 어디서 세례를 받았는지는 불분명하다. 추측컨대 당시 급격히 번지고 있던 개신교 운동의 영향으로 가톨릭계 비밀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1648년 메추는 19세에 헤리트 다우와 함께 라이덴 화가 길드의 창립 회원으로 등록을 한다. 그러나 2년 후 갑자기 회원활동을 중단한다. 그 후 메추는 아마도 위트레흐트에서 가톨릭계 화가 니콜라우스 크뉘퍼(Nicolaus Knüpfer)와 얀 베닉스(Jan Weenix)에게 미술교육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메추는 1655년경 암스테르담으로 거주지를 옮긴다. 그는 암스테르담 외각에서 살았는데 인근에 설탕 정제업자인 삼촌 필립스 메추의 조카들이 살고 있었기에 그들과 가까이 모여 살았다. 1658년에 메추는 아버지가 도예가이고 어머니가 화가인 마리아 데 그레버 인 이사벨라 드 볼프와 결혼을 한다. 그 후 메추는 암스테르담 시내로 거주지를 옮기고 그곳에서 라이덴을 오가며 헤리트 다우(Gerrit Dou, 1613-1675)에게 미술 지도를 받는다. (* 헤리트 다우, 1613-1675: 렘브란트 첫 제자로 강렬한 명암대비와 세밀화로 유명한 네덜란드 황금기 풍속화 화가)
1) 타이틀: 사창가의 탕자(ca. 1650), Private collection/ 부분
2) The Triumph of Justice(ca. 1655-1660), Mauritshuis, The Hague
3) The_Intruder(ca.1661),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4) Crucifixion(1660-1665), Musei Capitolini, Roma
그의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렘브란트의 제자에게 배운탓인지 초기작들에서 렘브란트의 빛에 대한 감각과 감성을 오마주한 작품들도 보이고 동시에 페르메이르의 작품들과 비슷한 화풍의 그림들을 보는 듯한 착각을 갖게도 한다. 그러나 점차 네덜란드 가정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속과 장면들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만의 화풍을 표현해 내려고 한다.
메추는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면서 렘브란트와 얀 스테인, 페르메이르 등의 영향을 받았으나 특정 화풍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소재와 화풍으로 그림을 그린다. 어쩌면 다양하다는 그 점이 메추의 가장 특징적인 제작기법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다양하고 풍부한 색채로 사실적인 풍속화를 그리면서 네덜란드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안탑깝게도 메추가 한창 자신의 전성기를 채색해 나가던 시절, 나이 38세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가 남긴 작품은 모두 133점이다.
II.
"오랫동안 일관된 스타일, 기법, 또는 한 가지 주제에 집착하지 않는 매우 절충적인 예술가"라는 평가가 그에게 부여된 평가이자 칭송이라 해야 할 듯하다. 그의 133점의 작품 중 연대가 표시된 작품은 14점뿐이고 나머지는 그의 활동시기가 짧기 때문에 대략적인 제작 연대 추측이 가능할 수 있겠다.
5) The Lacemaker(1663), Gemäldegalerie Dresden
6) The Sick Child(1659), Rijksmuseum Amsterdam
7) Lady at the Virginal(1660-1667),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Roterdam
그의 작품 중, 암스테르담 레이크스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병든 아이'(1659)는 메추가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대단히 존경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페르메이르가 즐겨 사용한 그림 구도와 색감의 조화가 그대로 드러난 작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메추가 초창기에 그린 페르메이르 작품의 오마주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인해 어느 틈엔가 페르메이르의 <물 주전자를 든 여인>을 1877년에 경매시장에서 메추의 작품으로 잘못 알고, 판매되기도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만큼 메추의 작품들에서 페르메이르에 대한 오마주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메추의 그림 중 가장 훌륭한 컬렉션이라고 할 몇몇 작품들은 18세기에 영국 사업가 헤리트 브라암캄프(Gerrit Braamcamp)가 소유했다. 그는 'Man writing a Letter'(1662-1665)와 'Woman reading a letter'(1665) 를 포함하여 모두 8 작품의 그림을 소유했다.
8) Man Writing a Letter(1662-1665), National Gallery of Ireland
9) Woman Reading a Letter(1665), National Gallery of Ireland
지금은 그의 사후 'Man writing a Letter'(1662-1665)와 'Woman reading a letter'(1665) 두 작품을 아일랜드 더블린 국립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그런데 ‘편지를 쓰는 남자’와 ‘편지를 읽는 여인’이 한 쌍으로 그려진 작품인 듯 하기에 누군가와 편지를 쓰고 받았으니 관련되는 이야기가 있음직 할 듯해서인지 아일랜드 더블린 국립미술관은 특별히 이 두 작품을 소중하게 아주 귀한 대접을 하고 있다.
한편, 그의 그림을 보면, 적어도 10여 개가 넘는 작품들이 카펫(테피스트리)을 그려 넣었고 모델도 같은 모델이 등장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메추는 그의 작품에 언제나 악기나 세밀하게 묘사된 꽃무늬와 구름무늬 띠 카펫과 강아지나 닭 같은 동물 등을 등장시켜 당시 네덜란드 사회의 일상생활의 한 단면을 보여주려는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풍습의 묘사는 페르메이르의 그림 속 장면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여전히 갖게 한다.
10) A Young Woman Composing Music and a Curious Man(1662-1663), Mauritshuis, The Hague
11) Man and Woman sitting at the Virginal(1660), The National Gallery, London
12) The Cittern Player(1660), Bridgeman Art Library, London
또한 그의 그림 속 벽면에는 바다 풍경이 있고 테이블과 바닥에는 페르시안 카펫이 깔려 있다. 테이블 위의 카펫(테피스트리)은 일부는 주홍색이고 일부는 자주색인 격자무늬 모양의 칸막이로 나뉘기도 한다. 카펫 테두리의 진한 파란색은 비교적 자주 볼 수 있는 소품은 아니고 상대적으로 고가의 제품으로 보인다. 그의 그림 속 소품들 역시 페르메이르가 보여주는 그림 속 소품들과 거의 유사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작품들 중 적지 않은 그림들이 보면 볼수록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작품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어쩌면 비슷한 연배의 두 사람이 그리 멀지 않은 라이덴과 델프트에 있다 보니 서로에 대한 이름은 들어볼 만하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어느 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이 날을 잡아 메추는 페르메이르를 방문하고 그의 작업실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페르메이르를 앉혀 놓고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 본다.
그래서인지, 메추의 작품 중에서 페르메이르의 작품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페르메이르의 아틀리에처럼 왼쪽 창가의 빛을 받은 그림이 적지 않고, 한 사람, 또는 두 사람이 테이블을 중심으로 서있거나 앉아 있는 모델들이 있고, 3) 작업실 그림의 벽면에는 그림 액자가 걸려 있는데 거의 페르메이르가 그린 작품 속 액자그림들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대부분 당시 플랑드르 지역 화가들이 그린 풍경화를 그려 놓았다.)
13) Woman feeding a cat(ca.1662-1665), Rijksmuseum Amsterdam
14) Viginal player and Singer(1661), Musée du Louvre, Paris
15) Portrait of a Lady(1667), Minneapolis Institute of Art, Minneapolis
* 그림 모델은 암스테르담의 거상 Jan Jacobszoon Hinlopen의 두 번째 부인 Lucia Wijbrants
심지어 페르메이르 작품들에 자주 등장하는 물품들 중에서 테이블 위를 덮고 있는 페이스트리까지 거의 비슷한 무늬의 페이스트리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작업실 바닥에는 페르메이르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방안 바닥에 격자무늬 대리석이 깔려 있는 것도 마치 페르메이르 작업실에서 그린 것처럼 똑같아 보인다.
뿐만 아니라 메추의 'Man writing a letter'와 페르메이르의 '우유 따르는 하녀' 작품 벽면 맨 아래쪽을 보면 띠장식처럼 새들이 그려진 타일이 똑같이 그려져 있다. 메추와 페르메이르의 작품에 등장하는 악기들 역시 비슷하게 버지널과 첼로, 류트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가브리엘 메추, 그의 초상화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페르메이르처럼 그가 그린 작품 중 단 한 점에서 그의 모습, 더구나 그의 부인과 함께 그린 그림에 깜짝 출현(?)을 했다. 바로 'Portrait of the Artist with his Wife Isabella de Wolff in a Tavern'(1661)이다. 그림 속 남자와 여자는 다름 아닌 '선술집에서 식사중인 가브리엘 메추와 그의 부인'이다. 그리고 왼편에 희미하게 하녀의 모습도 보인다.
그림 속 풍경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메추의 생활은 어느 정도 경제사정이 그런대로 여유있는 생활을 했을 성싶다.
17) A Baker Blowing his Horn(ca.1660-1663), Private collection
18) L'Armurier(ca.1650-1660), Rijksmuseum Amsterdam.
19) The Old Drinker(1657-1658), Rijksmuseum Amsterdam
메추가 보여주는 작품 중 눈에 띄는 또 다른 작품이 하나 있다. 1661년 경 메추는 암스테르담의 상인 얀 J. 힌로펜의 후원을 받으며 그림 작업을 순탄하게 해 나갈 수 있었기에 그의 호의에 대한 답례로 그의 가족을 두 번 이나 그린다.
작품 하나는, 'Hinlopen familie'(1662, Gemäldegalerie, Berlin)이고 또 다른 작품은 'Visit to the nursery after the birth of Sara Hinlopen'(1661,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이다. 힌로펜 가정의 그림은 가족의 단체사진(?) 같은 모습이지만 아이와 부인이 착용한 의상의 오렌지 색은 마치 귀족 가정의 흔치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상인 힌로펜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또 다른 작품인 '유아원 방문'은 힌로펜의 딸 ‘사라 힌로펜’(Sara Hinlopen)이 태어난 다음 “유아원을 찾아온 방문객(?)을 맞이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메추의 작품 중 가장 크고 훌륭한 작품으로 칭송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유아원’은 비현실적으로 큰 규모로 상상의 방을 배경으로 한다. 어린아이의 아버지는 방문객에게 공손하게 환영인사를 하고 있고, 하녀는 이 귀한 방문객을 위해 의자를 가져온다. 접견실 내의 벽난로는 암스테르담 관공서에서 흔히 보는 것과 비슷하다. 벽에는 홀란드 해안의 바다 풍경이 커다란 액자에 담겨 있고, 테이블과 대리석 바닥에는 페르시안 카펫이 있다.
테이블 위의 테피스트리는 페르메이르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테피스트리와 동일한 무늬의 카펫인데 붉은색으로 수놓은 무늬와 진한 파란색 테두리를 두른 고급스러운 페피스트리로 보인다. 메추 그림의 시그니쳐라고 할 수 있는 강아지도 유아원에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당시 이 그림은 힌로펜의 집 접견실에 걸려 있었는데, '유아원 방문'은 당시 힌로펜이 지니고 있는 지역 사회에서 그가 가진 강력한 지위와 역할을 암시하는 듯하다.
이외에도 메추의 그림들을 보면 볼수록 그림들 분위기가 묘하게도 페르메이르 작품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음은 공연한 기우일까?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메추의 작품에 대해, “메추는 렘브란트와 페르메이르의 영향을 받았다”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거의 비슷한 연배의 두 젊은 화가들이 당시 서로의 그림에 대한 비법을 공유하는 일을 과연 했을지 어땠을지가 진짜 궁금하기만 하다.
더구나 메추와 페르메이르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비슷한 시기에 하늘의 별이 되었으니 두 사람의 운명은 어쩌면 미리 정해놓은 궤도를 함께 달려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21) Visit to the nursery after the birth of Sara Hinlopen(1661),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