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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Sep 20. 2016

아이슬란드의 발키리 비요크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아이슬란드  10


발키리를 닮은 여인비요크



1.


노르드 신화를 정리해 바그너는 ‘니벨룽겐의 반지’라는 작품을 만든다. 이 작품의 백미는 시그문트와 시구르드(지그프리드)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영웅에 관한 이야기는 웅장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영웅 시구르드는 시그문트의 배다른 아들이자 덴마크 왕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눈에 띈다. 이 부분은 덴마크가 북유럽 신화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려는 속셈처럼 보이기에, 신화가 왜곡되는 과정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아무튼, 아버지인 시그문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노력하던 시구르드는 무서운 악의 화신인 용을 만나 싸움을 벌이게 되고 드디어 용을 죽인다. 용의 피를 마시고 신비한 힘을 갖게 된 시구르드는 불사의 몸이 된다. 그런데 이 시구르드가 드디어 오딘이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지고 만다.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함정에 빠진 것이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전당, 즉 오딘이 지배하는 곳인 아스가르드에는 오딘을 지키기 위해 미녀 여전사들이 등장한다. 이 여전사들은 전장을 돌아다니다가 용감하게 싸운 전사들의 혼을 인도해 아스가르드의 발할라로 데려오거나 오딘의 가호를 받은 영웅을 수호하다가 죽음의 운명을 부여한 다음 발할라로 데려가기도 한다. 그녀들을 발키리라고 부른다. 오딘을 받드는 무장한 처녀 전사들은 아주 매혹적이고 아름답다. 하지만 때로는 아주 잔인하기도 하다. 아름다운 발키리가 저승사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오딘이 거처하는 아스가르드에 있는 신들의 전당 발할라, 우측에 늑대를 곁에 두고 있는 오딘이 보인다. Valhalla(Emil Doepler, 1905)



아무튼 발키리 중에 브룬힐데라는 여전사가 있었는데 시구르드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둘은 오딘이 파놓은 사랑의 덫에 걸려 첫눈에 반하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서로가 다른 남자와 여자를 택해 결혼을 하게 되고 그들을 이어줄 줄 알았던 시그문트에게 물려받은 시구르드가 지닌 마법의 반지는 오히려 둘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빚고 만다. 절대반지의 주문에 걸려든 것이다. 그 후 절대반지는 라인강 어딘가에 깊숙이 던져져 지금도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노르드 신화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여인들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의 시선을 끈다. 영웅들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영웅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아름답고 뜨거운 사랑이야기가 노르드 신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아름다움 뒤에 숨어있는 장미가시를 조심해야 할 일이다. 발키리가 언제 잔인한 심성을 드러낼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진 설명> 왼쪽: Valkyrien(Emil Doepler, 1905), 오른쪽: 발할라로 죽은 자를 데려오는 발키리들(Lorenz Frølich, 1906)



2.


인간 여성 전사들을 발키리로 비유하는 경우도 많다. 바이킹 사회에서는 남자 못지않게 여자들도 무장하고 전투에 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바이킹들의 지도자는 보통 아름다운 왕녀이거나 고귀한 신분의 여인, 또는 특출한 능력을 지닌 여성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발키리는 아스가르드의 발할라를 지키며 죽은 자들을 오딘이 있는 발할라로 데려오거나 오딘을 지키는 임무를 수행한다. 바이킹 전사로서 발키리 여인을 숭배하는 경우는 어떤 능력을 지닌 여인들을 추앙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발키리 중에 가끔 오딘이 사는 궁전을 지키다 말고 인간이 사는 중간계로 내려와 백조 날개옷을 벗고 목욕을 하고 다시 천상계로 돌아가는 발키리도 있는데, 이때 누군가 그녀의 옷을 빼앗아 감추게 되면 돌아가지 못하고 그 옷을 가진 인간과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판박이다. 


이런 신화가 의외로 세계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그렇기에 남자는 어딜 가나 똑같다고, 그래서 관음증이 어쩌고, 또 구스타프 융의 집단 무의식의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는 등 여러 해석들이 난무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지극히 자의적인 해석으로만 보인다. 그냥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면 이상한 걸까? 그런데, 혹시 우리의 ‘선녀와 나무꾼’에 등장하는 선녀도 어쩌면 천신을 지키던 그런 발키리가 아니었을까라는 궁금증이 드는 건 또 왜일까?

 

<사진 설명> 왼쪽: The Valkyrie's Vigil (Edward Robert Hughes, 1906) 

                    가운데: The Ride of the Valkyris(John Charles Dollman, 1909)

                    오른쪽: Valkyrie(Herman Wilheim Bissen, 1835), 뉘 칼스버그 박물관 소장(코펜하겐) 


Valkyrie(Stephan Sinding, 1908), 처칠 공원 설치작품(코펜하겐)



우연히 아이슬란드 케플라비크 공항 인근 선술집에 걸린 사진들을 보면서 문득 발키리를 떠올린다. 사진 속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아이슬란드가 자랑하는 가수 비요크, 그녀는 지난 2004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올림픽 개막식에서 여신으로 등장해 'Oceania'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들아, 와서 내 젖을 먹으라”면서 은총을 내린 장본인이다.


북구 아이슬란드의 레이캬비크에서 50년 전에 태어난 비요크, 아담한 몸매의 여인이지만 그녀의 어설픈 연기와 그녀의 ‘빠다’냄새가 나지 않는 목소리는 어쩌면 거인족 출신의 발키리를 쏙빼 닮았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녀를 일컬어 진짜 글래머 가수라고도 했다. 


그녀는 영화 ‘어둠 속의 댄서’에 출연해 칸영화제에서 수상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연기를 얼마나 잘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음악에 대한 또 다른 열정을 볼 수 있는 영화임에 틀림이 없을 것 같다. 발키리를 닮은 비요크의 노래와 연기, 영화 ‘어둠 속의 댄서’에서 진면목을 만날 수 있다. 


2000년 봄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여 화제가 되었던 영화 "어둠 속의 댄서"(Dancer in the Dark)는 라스트 폰 트리어 감독과 비요크(셀마 예스코바 역) 주연으로 빛을 본다. 이 영화는 1964년, 소위 법치국가라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잔인한 인권 살인의 실상을 보여준다. 최근에 미국 경찰의 마구잡이식 구타와 발포로 인한 살인행위와 결코 다르지 않다.


12살 데뷰 당시 열창하는 비요크



주인공인 셀마가 아들의 눈을 고치기 위해 공장에서 일을 하다 억울하게 실인 누명을 쓰고 구속이 된다. 변호사 수임료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그동안 아들의 개안수술을 해주려고 모아놓은 돈을 쓸 수가 없어 끝내 이를 거절하고 만다. 변호사는 수임료를 받을 수 없게 되자 그녀 곁을 떠나가고 만다. 결국 그녀는 교수형을 당하고 만다. 


영화는 특별히 예술성이나 짜임새 있는 기획력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비요크라는 한 여인의 연기와 음악에 대한 열정, 특히 탭댄싱에 대한 감독의 연출이 극히 감각적인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데 문득 그녀의 연기를 보면서 또다시 오딘의 호위무사 발키리가 떠오른다. 그녀는 영화에서 아들을 지키고 보듬어야 하기에 죽음도 불사한다. 그래서 교수형을 당하면서도 다른 이들에게 평화를 갈구하는 기도를 한다. 신화 속 발키리처럼 비요크가 연기를 하고 있지만 어쩌면 아이슬란드를 지키는 수호신처럼 노래하고 춤을 추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춤추고 노래하는 동안에는 그 어떤 슬픔이나 비극도 비껴가는 듯싶다.


※ 어둠 속의 댄서(총 140분)는 모두 3편(60분+60분+20분)으로 나뉘어 있다. 아래 링크를 누르고 들어가면 3편 모두 공짜로 내려받아 볼 수 있다.


http://www.drama24.co.kr/bbs/board.php?bo_table=MOVIE2&wr_id=2343


비요크의 첫번째 앨범 사진들



3.


어린 시절 비요크는 노래를 위해 열정을 쏟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노래뿐 아니라 국제적인 인권에 대한 관심을 음악으로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그녀는 아이슬란드가 식민지였던 이유에서 비롯된 것인지 다른 나라들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강력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2008년에 비요크가 상하이에서 열린 그녀의 볼타(Volta) 투어 공연에서 티베트 독립을 위해  ‘Declare Independence’라는 노래를 부르던 중 “티베트, 티베트”를 외쳐대자 중국 공안당국이 달려들어 제지하면서 국제적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후 그녀의 중국 공연은 모두 취소가 된다.


그뿐 아니라 그녀는 ‘Declare Independence’를 덴마크 식민지인 그린란드와 페로제도에 바치기도 했다. 그로 인해 페로제도에서 덴마크 정부와 마찰을 일으킨다. 또 그녀는 일본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두 번이나  ‘Declare Independence’를 부르며 코소보 독립을 위해 이 곡을 헌정한다. 이 때문에 세르비아에서 열린 ‘Exit 페스티벌’에서 예정되었던 그녀의 공연이 신변 안전상의 이유로 취소가 된다.


이처럼 그녀의 목소리는 단지 음악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이제 국제적인 ‘발키리’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슬란드 정부까지 나서 그녀에게 애정공세를 펼친다. 아이슬란드 정부가 그녀에게 국가의 이름을 널리 알린 공로로 집을 한 채 선물한 것이다. 그녀에게 선물한 집은 그녀를 연상시킬 만큼 특이하다. 레이크야비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작은 화산섬에 그녀의 집이 있다. 그런데 섬 안에는 달랑 그녀의 집 한 채뿐이다. 이런 집은 그야말로 그녀가 주인공인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집이 아닐까? 


발키리를 닮은 여인 비요크, 그녀는 이제 아이슬란드를 위해서, 아니 전 세계를 향해 외친다. 자유가 아닌 것은 모두 거짓이라고. 자유를 위한 투쟁과 억압이 있는 곳에 그녀는 언제든 달려가 발키리처럼 투쟁도 불사할 것임을 노래한다.




※ 비요크에 대해 레이크야비크 공항 인근에 있는 아이슬란드 ‘록앤롤 박물관’(The Icelandic Museum of Rock ’n’ Roll)에서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박물관 주소는, Hjallavegur 2, 260 Reykjanesbaer/ Keflavik, Iceland, 입장료는 10유로이다. 박물관은 일 년 내내 입장 가능하지만 개장 시간은 낮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다.



4.


아이슬란드를 떠나며, 북유럽 신화의 땅 아이슬란드가 조금은 부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화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또 신화를 닮은 미래를 만날 사람들, 그렇기에 세계 행복지수 3위라는 지위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우리의 신화가 단단한 빙하처럼 굳어질까? 아니 언제가 되어야 우리의 신화가 활화산처럼 한반도를 뚫고 온천지로 솟구칠 것인가? 신화를 간직하지 못하고 신화를 저버리는 민족에게 희망은 사치일 뿐이다. 


이제 또 아이슬란드를 떠나 북유럽 신화의 또 다른 무대, ‘페로 제도’로 간다. 신화가 어떻게 이기적으로 왜곡되는지, 아니 어떻게 신화가 뿌리를 내리고 발전해 나가는지를 계속 찾아보도록 하자. 신화는 바로 그 나라의 역사이자 문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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