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수 Sep 21. 2016

요정이 살고 있는 나라 페로제도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페로제도  1


“그리고 천사가 지나갔다”



저 멀리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바다는 마치 수은처럼 빛나고 있었다. 수평선 위에는 외롭고 작은 섬들도 보였다. 얇은 바위들이 겹겹이 쌓인 해안가는 마치 댄스홀 바닥에 흩어져 있는 모래알처럼 드넓은 바다로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바위 조각들은  예전 언젠가는 산이나 계곡에서 웅장함을 뽐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바위 조각들은 자연의 소리를 담고 있었고 사람들과 함께 그렇게 오랫동안 지내왔을 것이다.


실제로 그곳에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었다. 그곳에는 산과 계곡도 있고 험한 협곡과 피요르드도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주택가에는 부둣가와 창고, 그리고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거리와 자동차 도로도 있었고, 가파른 골목길과 정원, 광장, 묘지까지 다 있었다. 그곳은 거의 사람이 살기에 완벽할 정도인데 그 마을은 아주 오래된 도시였다. 이 마을에는 또한 작은 교회도 있었는데 교회는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몇 년 전 어느 바람이 부는 오후에 한 남자와 세 소년이 교회의 종탑에 올라 아이올리아 하프(* Aeolian harp : 바람으로 작동하는 현악기,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에서 악기 이름이 유래했다.)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있었다. 하프를 연주하는 사내는 교회에서 청소와 잡일을 도맡아 하는 하인 코르넬리우스 이삭센(Kornelius Isaksen)이었고, 곁에서 하프 연주를 듣고 있는 아이들은 그의 세 아들 모리츠, 시리우스, 그리고 어린 코르넬리우스였다.


아이들이 듣고 있는 음악을 연주하는 하프는 아이들 아버지 코르넬리우스 이삭센이 직접 제작한 것이었다. 아이들은 하프가 만들어내는 이처럼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교회의 종탑에는 이 남자가 만든 17개의 하프가 걸려있었다. 잠시 후 아버지는 종탑의 하프들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페로제도의 수도 토르샤븐 전경
'The lost musicians'에 등장하는 요정 타리라(Tarira)를 모티브로 제작한 동상

<사진 설명> 윌리암 하이네센이 쓴 소설 'The lost musicians'의 배경이 된 페로제도의 수도 토르샤븐의 이곳 저곳을 작품 속에 등장하는 요정 타리라(Tarira)는 도시의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며 잃어버린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찾아나선다. 페로제도의 첫인상은 윌리암 하이네센의 소설에 그려진 모습 그대로 내게 다가왔다. 작은 도시이지만 꾸미지 않아 더욱 예쁜 도시, 마치 요정들이 사는 그런 마을처럼 느껴졌다.



아이올리아 하프에서 마법의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아이들은 처음 듣는 소리에 어린 영혼들을 빼앗길 만큼 황홀경에 빠져 들었다. 아이들은 오늘 처음 듣는 하프 소리 말고는 일요일에 교회에서 연주하는 낡은 오르간의 삐삐 거리는 소리가 고작이었기에 하프에서 나는 아름다운 선율을 들을수록 그저 놀랄 뿐이었다.


이때 6살짜리 코르넬리우스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이 하프들은 누가 연주를 하나요? “

형 모리츠가 나서더니 대신 대답을 한다.

“당연히 바람이 하지”

“아니야, 천사가 연주를 해, 그렇지 아빠?”

둘째 시리우스가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빠를 빤히 쳐다보면서 아빠가 그렇다고 말해주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아빠는 시리우스에게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 아이들은 아빠의 그 말에 더욱 감동되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빠와 아이들은 종탑에서 아빠가 연주하는 하프 소리에 취해 모든 것을 잊은 채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구름과 바람처럼 드넓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이들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 교회 종탑에서 아빠의 하프 연주 소리를 들으며 꿈속을 헤매듯 하늘을 날며 환상적이던 그날 오후의 일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훗날 어른이 된 시리우스는 그날의 감동을 그가 쓴 시의 마지막 구절에 이렇게 적었다.

“그리고 천사가 지나갔다”



※ William Heinesen, The lost musicians, Translator: W. Glyn Jones, Cover illustration: William Heinesen, 1950, 중에서 발췌(번역: 박종수)


William Heinesen, The lost musician 1950년도판 표지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슬란드의 발키리 비요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