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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Oct 31. 2016

룩셈부르크에 전해오는 멜루지나 이야기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룩셈부르크  2


1. 남자의 사랑과 여자의 운명


지그프리드(Siegfried) 백작은 알제트 계곡에서 우연히 마주친 멜루지나에게 첫눈에 반한다. 멜루지나의 아름다운 자태는 물론 그녀의 황홀한 노랫소리에 지그프리드 백작은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녀를 떠날 수 없어 지그프리드는 결국 멜루지나에게 청혼을 한다. 멜루지나는 결혼을 하기 전 한 가지 조건을 말한다. 그녀가 바위 투성이 보크(Bock) 지역을 떠나지 않을 테니 매주 토요일 그녀가 혼자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절대로 그녀가 방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려고 하지 말라고 한다. 이 약속을 지켜달라는 것이 그녀가 내건 유일한 결혼 조건이었다.


지그프리드는 그녀의 요구조건을 들어주었고 그녀를 위해 룩셈부르크 북부지역에 위치한 보크 주변의 땅을 사들여 성을 쌓아 그들의 보금자리를 만든다. 그러나 지그프리드는 어느 틈엔가 악마와 거래를 하고 만다. 멋진 성을 짓기 위해 지그프리드는 자신의 영혼을 악마에게 파는 바보 같은 짓을 한 것이다. 악마가 지그프리드에게 멜루지나가 의심스러우니 잘 지켜보라고 한 것이다.


지그프리드와 멜루지나는 아이들을 일곱이나 낳을 때까지 행복하게 잘 살았지만 지그프리드가 그녀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 관계는 서서히 변해간다. 지그프리드는 그녀가 토요일마다 방에서 혼자 무엇을 하는지 악마의 말대로 의심과 궁금증을 물리치지 못하고 결국 열쇠 구명으로 들여다 보고 만다. 한데 열쇠 구명으로 들여다본 지그프리드는 그만 경악을 금치 못하고 만다. 멜루지나가 방안에서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그 안에 앉아 있는데, 그녀의 상반신은 아름다운 여인의 몸매였으나 하반신은 커다란 물고기 꼬리로 뒤덮여 있는 게 아닌가.


<사진 설명> 중세시대에 제작된 멜루지나 삽화

출처: Thüring Ringoltingen : Die Geschichte der schönen Melusine. Germanisches Nationalmuseum Nuremberg. MS 4028, fol. 50 r. In: Erinnerungsorte in Luxemburg. Umgang mit der Vergangenheit und Konstruktion der Nation. Ed. by Sonja Kmec, Benoît Majerus, Michel Margue and Pit Péporté. 2nd Edition. Luxemburg: Éditions Saint-Paul 2008, p. 55.



자기를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 걸 눈치챈 멜루지나는 그 순간 재빠르게 보크(Bock) 계곡의 깊숙한 곳으로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 후 그녀는 7년에 한 번씩 화염에 휩싸여 거대한 용처럼 생긴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는데, 그녀를 다시 마법에서 벗어나 사람으로 돌아오게 하는 방법은 용감한 누군가 나타나 주기를 고대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한다. 더구나 그녀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 그녀의 입안에 있는 열쇠를 자신의 입술로 잽싸게 끄집어내 알제트(Alzette) 강으로 던져버려야 하는 일이었기에 불행히도 이 일은 지금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역시나 그녀를 믿고 그녀와 입맞춤을 해야 하는데 멜루지나를 괴물로만 생각하고 그녀를 믿지 못하니 그녀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는 게 아닌가. 그녀를 구하고 그녀를 차지할 위인이 진정 아무도 없단 말인가? 멜루지나는 자신을 마법으로부터 구해줄 용감한 사내를 보크 계곡 어느 깊숙한 곳에서 기다리면서 지금도 셔츠를 한 땀 한 땀 짜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는 7년마다 겨우 한 번씩 셔츠 한 땀을 짜기 때문에 언제 그 셔츠를 완성할지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만일 셔츠를 완성하는 날이 오면 그녀는 마법에서 풀려나게 되지만 대신 룩셈부르크 도시는 폐허가 된다고 한다.


여전히 알제트 계곡 어딘가에서 셔츠를 짜고 있을 멜루지나, 그녀가 셔츠를 완성해 룩셈부르크 도시가 파괴되기 전에 그녀를 구해줄 누군가가 과연 나타날까? 그녀를 구원해줄 용감한 사내를 기다리며 한 땀 한 땀 셔츠를 만들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그녀의 서글픈 사연이 애처롭기만 하다.


○ 참고

1) 알제트(Alzette) 강은 룩셈부르크 시를 감싸고 흐른다. 또한 룩셈부르크 시내를 관통하는 페이트루스(Peitruss) 강이 알제트 강으로 흘러든다. 페이트루스 강 언저리가 바로 알제트 협곡이다.

2) 보크(Bok) 지역은 알제트 협곡에 있는데 룩셈부르크 주거지역인 구시가지, 즉 그룬드(Grund)라고 부르는 도시 아랫동네의 북쪽 암반지역을 말한다.


<사진 설명> 룩셈부르크를 관통해 흐르는 페이트루스 강과 주택들, 멜루지나가 바위투성인 이곳 보크(Bok)지역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면서부터 룩셈부르크가 생겨났다고 한다. 이처럼 어떤 국가나 도시가 형성될 때 고유한 신화나 전설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 국가나 도시는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2. 멜루지나 이야기의 구조와 특징


멜루지나, 흔히 인어아가씨라고 부르는 물의 요정 전설은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만 공통된 줄거리는 대개 다음과 같은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어느 날 사냥을 하러 나간 기사가 우연히 강가에서 아름다운 요정을 만난다. 기사는 그녀를 보는 순간 반하고 만다. 기사는 그녀를 데려와 결혼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때 그녀가 기사에게 결혼 조건으로 한 가지 약속을 제시한다. 그녀는 기사에게 일주일에 한 번은 언제나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알려고 하지 말고 내버려둘 것을 요구한다. 기사는 그녀가 원하는 것을 처음에는 잘 따라주고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산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지나자 매주일 사라지는 그녀의 행동이 궁금해 사람들이 입방아를 찧기 시작하자 기사도 그녀의 행동이 궁금해 점차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 그러다 자신이 약속했던 금기사항을 어기고 만다. 즉, 매주일 사라지는 부인을 몰래 따라가 그녀의 방을 훔쳐본다. 기사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그의 부인이 원래는 물의 요정이었기에 그녀는 방안 욕조에 물을 가득 담아두고 그 안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녀의 상반신은 아름다운 여인의 몸매인데 하반신은 물고기이다. 그녀의 남편이 놀라는 순간 숲의 요정은 그만 분노와 슬픔에 잠겨 그를 떠나고 만다.


물의 요정 멜루지네(* 독일어권에서는 멜루지네(Melusine)라고 쓰지만 일반적으로 라틴어로 멜루지나(Melusina)라는 표기를 사용함으로 여기서도 멜루지나라고 쓴다.), 물의 요정의 의미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또한 물의 요정은 팜므파탈적 성격이 강조되는데 문명이 발달하면서 물의 요정 이야기는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자연 침해와 파괴에 대한 자연의 복수를 경고하는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바닷가에서 만나는 인어아가씨는 언제나 무서운 자연의 재앙을 대변하는 팜므파탈적 인어아가씨인 것이다.


여하튼 중세이래 물의 요정들은 자신의 세상을 떠나 인간 세상으로 올라와 세속적 행복을 누리기 시작한다. 이들 중 처음으로 독자적인 이름을 얻은 물의 요정은 바로 멜루지나인데 그녀는 위기에 처한 인간 남자를 구해주고 그와 결혼도 한다. 사회의 주도권이 성직자에서 기사 계급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산물로 보이는 이 이야기에서 멜루지나는 물질적 부와 다산을 통해 가문을 번성하게 하는 ‘위대한 어머니’의 전형이기도 하다.


<사진 설명> 멜루지나 석판화(Auguste Tremont)

출처: Bestiaire d'Ardenne. Les animaux dans l'imaginaire. Des Gallo-romains a nos jours. Ed. by Andre Neuberg-Bastogne: Musee en Piconrue 2006, p.135.



멜루지나는 그의 아들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몇몇은 유럽의 왕이 되었을 만큼 명문가의 시모(始母)가 된 당당한 요정으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지닌 반인반수의 물의 요정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남편인 왕의 가부장적 권위와 폭압으로 금기를 깨게 되자 용으로 변해 날아가 버리고 만다. 서구에서는 용이 악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생애에 이룩한 업적과는 대조를 이루는 비참한 말로이다. 집안에 불운이 닥칠 때나 멜루지네의 울음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온다는 것은 바로 멜루지나가 용으로 변하는 과정이 인간세상에서 여성 억압적인 상황과 상응하면서 강조되는 것이다.


한편, 중세의 계몽주의 시대가 지나고 낭만주의가 도래하면서 이성적 자연관에 대한 반발로 자연의 신비가 절대적 환상의 자의에 맡겨지면서 물의 요정들이 화려하게 부활한다. 그런 의미에서 룩셈부르크의 지그프리드 부인으로 등장하는 멜루지나는 다름 아닌 ‘위대한 어머니’로서 보다는 한 남자를 사랑하는 순애보적 여인‘으로 등장하면서 룩셈부르크 왕조의 다산을 기원하는 의미가 강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능력이 아무리 초인적이라 할지라도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구원을 받아 남편이 속한 인간사회에 편입되고 싶은 욕망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의 팜므파탈적인 특징 역시 단순한 못된 성질의 문제가 아닌, 기구한 수동적 운명체라는 점에서 오히려 순애보적인 특징으로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룩셈부르크 도시를 감싸고 흐르는 알제트강변의 주택들



3. 룩셈부르크 멜루지나의 신화적 기능


19세기에 이르러 룩셈부르크 작가들은 룩셈부르크의 신화와 전설을 정리하면서 룩셈부르크의 멜루지나 이야기를 체계화해 발표한다. 딕스(Dicks)라는 필명을 가진 에드몽드 라퐁테인(Edmond de la Fontain, 1823-1891)과 니콜라스 그레트(Nicolas Gredt, 1834-1909)는 “룩셈부르크의 신화와 전설”(Luxemburger Sagen und Legenden, 1882)이라는 책을 발간한다. 작가들은 이 책에 멜루지나 신화를 정리해 싣는다. 그 후 다른 작가들 역시 멜루지나와 인어아가씨에 관한 책을 편찬하는데 이를 통해 룩셈부르크의 인어아가씨 이야기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런데 여러 가지 유형의 멜루지나 신화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중요한 사항은 바로 금기사항이다. 대개의 경우 주인공은 이 금기사항을 어기게 되고 요정과의 관계는 파탄이 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물의 요정 이야기가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이다. 이를 바탕으로 여러 작가들이 조금씩 살을 덧붙이면서 이야기는 부풀려지기도 하고 각색이 되기도 한다. 여하튼 이런 멜루지나 이야기들은 대개 프랑스 전설을 기본적으로 따르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룩셈부르크 물의 요정’ 이야기 역시 15세기 초반의 프랑스 멜루지나 전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룩셈부르크 시내



중세시대에 멜루지나 신화는 3가지 기능을 한다. 첫 번째는 귀족 왕조의 가족 신화를 확립하는 기능을 하는데, 그들의 가계를 합법적이고 신성한 것으로 포장하는 기능이 그것이다. 이건 바로 룩셈부르크 가문의 경우에도 해당한다.


두 번째는 룩셈부르크 도시의 시조인 지그프리드 백작과 인어아가씨 멜루지나와의 결합은 룩셈부르크라는 도시를 신화적 내용으로 포장해 다른 민족과 차별화를 하는 역할을 한다. 즉 선택받은 민족임을 은연중에 강조함으로써 민족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효과도 지니게 된다는 말이다.


룩셈부르크라는 도시의 수호자이자 이 도시 최초의 여성 조상으로서 인어를 자신들의 어머니 같은 존재로 일체화함으로써 룩셈부르크 시민들은 다른 종족들과 다른 신화적 특징을 지닌 존엄한 시민으로 격상되는 효과를 누린다.


이런 의미에서 멜루지나 이야기는 19 세기에 그 중요성이 더욱 증가한다, 룩셈부르크가 독립을 하는 1860년대를 전후한 시기에 룩셈부르크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세우고 이웃한 국가들인 독일과 프랑스, 그리고 그동안 한나라처럼 지내온 벨기에와 네덜란드와 같은 나라들과 민족적이고 문화적인 경계를 설정하는데 작지만 강력한 국가적 정체성을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를 한다.


특히 세계 제1차 대전, 특히 제2차 세계 대전이 전개되는 동안 멜루지나는 룩셈부르크 정체성의 상징처럼 사용되고 또한 독일 침략자들에 대항하기 위한 이념적 틀을 확립하고 단결과 독립을 위한 결정적 동기처럼 사용됨으로써 멜루지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사진 설명> 룩셈부르크의 멜루지나 우표

출처: Stamp ed. by PT Luxembourg. Office des timbres. Série Contes et légendes. In: Erinnerungsorte in Luxemburg. Umgang mit der Vergangenheit und Konstruktion der Nation. Ed. by Sonja Kmec, Benoît Majerus, Michel Margue and Pit Péporté. 2nd Edition. Luxemburg: Éditions Saint-Paul 2008, p. 57.



4. 신화의 의미와 특징


신화, 또는 전설에 흔히 사용되는 주요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가 바로 특정의 내용을 금지하는 ‘금기’ 사항이다. 북유럽 신화나 그리스 로마 신화 등 어디에나 숨어있는 금기사항들은 신화적 내용을 장식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룩셈부르크 멜루지나 신화에도 나타나는 이물 교혼, 또는 이물 통혼에서 ‘금기’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다른 세상의 여인이 인간세상의 남자와 혼인을 하면서 어떤 일을 하지 말라는 금기를 제시하고 약속받는 일은 신적인 존재와 인간과의 만남에서 절대적으로 인간이 지켜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만일 인간이 그 약속을 어기면 신적인 존재인 요정은 본래의 세상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아이러니칼 하게도 언제나 신화 이야기에서는 금기를 깨뜨리는 일이 이미 예정되어 있어서 대부분 깨지게 되어 있다.  


멜루지나는 토요일마다 하루를 혼자서 지낼 것이니 자기를 찾지 말고 무엇을 하는지 알려고 하지 말라는 금기를 남편에게 제시하지만, 남편 지그프리드 백작은 결국 이 금기를 어기고 만다. 이 일로 인해 멜루지나는 원래의 모습으로 변해 남편과 아이들을 떠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궁금한 사항은 과연 멜루지나는 왜 그런 금기사항을 제시했어야 했을까라는 점이다. 멜루지나의 어머니는 페르지나이다. 어머니 역시 남편인 헬마스 왕에게 산후조리 기간에는 자기 방에 들어오지 말라는 금기를 제시했다가 남편이 이를 어기자 그를 떠난 일이 있었다. 후에 멜루지나가 주동이 되어 딸 셋이 아버지 헬마스 왕에게 복수를 하다가 아버지를 죽게 한다. 멜루지나의 변신은 바로 아버지를 죽게 한 죄에 대해 어머니가 내린 형벌이었던 것이다.


<사진 설명> 'Melusina of Luxemburg'(독일 조각가 Serge Ecker가 제작한 멜루지나 동상)



인간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그 남편이 죽을 때까지 멜루지나와의 약속을 지키면 멜루지나는 죽은 다음에 이 형벌에서 벗어나 영혼을 구원받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남편 지그프리드가 약속을 어겼기에 멜루지나의 구원은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이다.


신화에서 제시되는 ‘금기’라는 것은 그렇기에 언제나 절대적인 어떤 운명에서 벗어나거나 다른 생명체로 전환하기 위한 단서조항 같은 것이다. 그것을 지키지 못할 경우 그녀의 운명은 어쩔 수 없이 원래의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환원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는다. 그렇기에 신화를 읽다 보면 적지 않은 금기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금기들이 있어 이야기의 재미는 배가되고 신화로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금기는 비단 외국의 신화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신화나 전설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렁각시 이야기나 비단잉어 아가씨 같은 이야기들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금기’, 즉 조건을 제시하고 이를 어길 경우 남자와 여자는 이별이라는 과정을 격을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구조를 보여준다.


인어아가씨 이야기를 잠시 살펴보면, 어느 날 어부가 잉어를 잡아왔지만 차마 잡아먹지 못하고 독 안에 넣어두었더니 다음날 여인으로 변해 어부의 집에서 아침밥을 짓고 있더란다. 용왕의 딸임을 밝힌 여인은 자신을 사흘만 말미를 주면 인간이 될 수 있으니 어부에게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한다. 사흘 후 인간이 된 아가씨는 어부와 혼인을 하게 되고 큰 집과 재물을 어부에게 선물한다. 그러나 한 달에 하루는 절대로 자신이 방안에서 무엇을 하든지 절대 보아서는 안된다고 조건을 내건다. 남편은 그러마 했지만 호기심에 결국 방안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녀는 방안에서 큰 욕조에 물을 하나 가득 담아두고 잉어로 변해 헤엄을 치고 있더란다.


<사진 설명> Melusina Otranto Cathedral in Italy



남편이 몰래 들여다본 것을 눈치챈 잉어 부인은 그만 일 년만 기다려주었으면 자신이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면서 어부를 원망하며 아이들을 데리고 용궁으로 돌아가 버린다. 단순히 금기사항을 어긴 사례일 뿐 아니라 멜루지나 신화와 이야기 구조가 거의 흡사하지 않은가.


신화 이야기는 그렇게 이야기 구조가 유사하며 대부분 금기사항을 전제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마련인가 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금기사항, 그것을 이해하는 일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랑의 미로 인지도 모르겠다.


신화나 전설에 나타나는 두 번째 주요한 개념은 바로 물과 관련되어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다. 즉 모든 생명은 물이 있어야 잉태되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즉 물과 관련된 내용이 반드시 신화를 구성하는 기본으로 전제되어야 신화적 특징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물은 신화에서 생명이 태어나는 장소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물에 사는 요정이 지닌 능력 역시 생산과 종족 번식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한 국가나 지역의 구심체로서 물의 요정의 등장은 그 지역이나 국가의 번영과 발전의 기초를 제공하려는 의도와 관련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북유럽 신화와 이누이트 신화를 통해 보았듯이, 대부분의 신화들이 모두 물에서 생명이 잉태되고 바람이 불면서 생명체가 퍼져나간다는 이야기 구조를 보았다. 과학적으로도 생명은 물이 있는 곳에서 처음 출발하기에 우주탐사선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이 바로 어느 행성에 물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신화를 찾아가는 이유도 바로 어디에 어떤 물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그곳을 장식하고 있는지를 찾는 일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좋겠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도시와 산과 계곡, 그곳은 모두 나름대로 고유한 물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고 그곳에 사는 요정이나 정령들이 물에서 태어나 물에서 죽어가는 그런 이야기의 뼈대를 가지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산과 들,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싸며 흐르는 개울이나 냇물에는 분명 어떤 요정들과 정령들이 출현을 하는지 그것을 느끼고 즐기는 일이 여행에서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사진 설명> Anonym Gravure vun 1870

출처: Histoire de la Magie, P. Christian - Furne, Jouvet et Cie, Paris, 1870 p. 421.



세 번째 주요한 개념은 바로 여인의 운명과 구원의 문제이다. 멜루지나가 다른 물의 여인(Mermade)들과 다른 점은 무엇보다 출산과 변신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변신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변신은 신적인 능력을 나타내는 하나의 징표가 되기도 한다. 멜루지나는 처음부터 지그프리드의 상황을 잘 알고 초능력을 발휘했고 앞날을 예견했다. 또한 성을 새로 짓고 계속 특별한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신비한 출생과 신분을 과시하였다.,


멜루지나가 출산한 아들들이 모두 성장하여 높은 지위에 오르고 각자 훌륭한 가문을 이룬다. 그동안 멜루지나가 지그프리드와 헤어져 성을 떠난 후 남편 앞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밤마다 몰래 어린 아들을 찾아와 젖을 물리는 모습이 자주 유모에게 목격되었다는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이 이야기는 멜루지나가 어머니로서 지극한 모성을 지닌 여인상을 강조, 부각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겠다.


어쨌거나 멜루지나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만 아무리 가문을 일으켜 세우고 열성적인 활동을 하더라도 그녀는 남편을 통해서만 저주받은 운명을 구원받을 수 있다. 이 점은 여성의 운명이 남성의 손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부장적, 남성 중심적 사고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멜루지나 이후에 등장하는 물의 여인들 이야기에서도 이와 유사한 형태의 특징들이 발견된다. 멜루지나가 영혼의 구원 문제가 가장 비중 있는 가치의 문제였다면 인어아가씨들의 문제는 영혼 자체를 획득해야 하는 문제가 가장 비중 있는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왜냐하면 멜루지나는 이미 영혼을 가진 존재였던 반면, 이후 등장하는 물의 여인들, 예를 들면 슬라브 신화에 등장하는 루살카나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같은 요정들은 본래 영혼을 갖지 못한 존재로서 인간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서만 영혼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인어아가씨, 특히 슬라브 신화를 정리할 때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일단 오늘은 유럽의 작은 나라 룩셈부르크의 인어아가씨 멜루지나를 통해 아름다운 도시 룩셈부르크와 한 여인의 기구한 운명적 삶에 대한 것들을 정리한다. 부디 여행을 하면서 아름다운 요정 멜루지나의 영혼뿐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영혼까지 모두 구원받기를 바란다.


룩셈부르크의 저녁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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