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수 Nov 17. 2016

브뤼헤(Brugge)의 작은 아씨들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벨기에  4


 베긴 수녀회(beguines)


‘아내’와 ‘수녀’, 둘 중 하나가 여자의 숙명인 줄만 알던 시기에 새로운 여인상을 찾으려는 ‘작은 아씨들’의 노력이 전개되고 있었다. 여성을 위한 대안적 종교운동으로 베긴 수녀회(beguines)가 1170년부터 1175년 사이에 지금의 벨기에 브라반트 리에쥐 교구에서 시작된 것이다.


베긴이라는 이름은 사제였던 ‘램버트 버규(Lambert le Begue)라는 신부의 이름에서 따왔는데, 베긴이라는 명칭은 “거룩한 여인들” 혹은 “종교적이고 경건한 여인들”을 뜻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단,’ ‘말더듬이’(stammerer), 또는 ‘베긴들이라 부르는 저속한 여인들’이라는 폄하적인 의미를 동시에 내포했다. 여하튼 베긴 공동체는 점차 유럽 전역에 급속히 퍼져나가 13세기 중반에 절정에 다다른다.


베긴 수녀회의 여성들은 세상과 단절되기보다 세상 속에서 함께 생활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헌신한 사람들이었다. 베긴 수녀회는 이들의 정신적  물질적 요구로 설계된 공동체로, 12세기에 시작되어 13세기에 이르러 지금의 벨기에 지역을 포함한 네덜란드 각 지역으로 확산된다. 그중에서도 플랑드르(네덜란드의 남쪽 저지대 지역)에 있는 베긴 수녀회는 도시와 어우러진 전형적인 농촌 형태로 설계되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 수녀회는 특히 플랑드르 문화지구에 고유한 스타일로 건축된 주거지를 가지고, 교회를 비롯한 부속 공간과 녹지 공간까지 확보한 건축물의 총체를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브뤼헤의 베긴 수녀회 건축물은 중세 시대 북서 유럽에서 발전한 베긴회의 전통을 잘 보여 준다.


베긴수녀회 입구에 붙어 있는 '베긴하우스' 안내 간판



1200년경 북부 유럽에서 베긴회 운동이 자연 발생적으로 출현하게 된 배경은,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던 13세기 초엽에 서유럽을 휩쓴 ‘종교의 부활(religious renewal)’이라는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수녀원에 들어감으로써 종교적 삶을 추구하던 다수의 여성들 외에도, 사람들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하지 않고도 그들 자신을 신에게 헌신하는 전형적인 ‘반종교적(semi-religious)’인 삶의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수녀도 아니고 단순한 평신도도 아닌 이러한 종교적 행위를 지향하는 여성 가운데, 베긴회 수녀원은 기도에 헌신하며 병든 자와 육체노동자를 돌보는 일에 전념하는 삶을 이끌기 시작했다. 수녀원은 대부분 도시 지역에 설립되었으며, 병원 근처와 나환자 병원 근처에 주거지를 마련했다. 특히 이곳에 들어와 일을 하게 된 여성들의 경우 미혼이거나 남편과 사별한 여성들이 종교적 서약을 하지 않고 사회 속에서 자유롭게 오고 갔으며, 원하면 언제든지 자유 의지로 공동체를 탈퇴할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1245년 플랑드르의 콘스탄티노플 마가렛 백작 부인은 브뤼헤에 베긴 수녀원을 설립하고, 부녀자들이 공동생활을 하면서 병자들을 간호하고 보호자 없는 소녀들을 집단 수용할 수 있도록 시설을 마련한다. 도움이 필요한 여성들을 돕기 위한 시설을 만들고 여성들 스스로 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베긴 수녀회가 이처럼 확장되면서 발전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베긴 수녀회가 지닌 유연성 때문이다. 단 한 번의 서원으로 여성의 일생을 수도원 속에 묶어 두지 않고, 결혼 가능성도 거부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인간으로서 여성의 자율성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베긴 수녀회에 대한 여성들의 기대감은 커져만 갔다.




여성들의 자발적인 종교 운동의 하나로 시작한 베긴 수녀회는 기존 수녀원처럼 남성 성직자의 감독이나 기존 교회의 위계서열에 얽매이지 않았다. 심지어 베긴 수녀회에는 설립자, 통치자, 규칙서, 특정 교리까지도 존재하지 않았다. 종교적인 공동체로서 그들이 가진 유연성과 자율성이 베긴 수녀회가 공동체로서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일 뿐이었다. 베긴 수녀회가 늘어나면서 13세기 후반 ‘베긴’들은 자연스럽게 ‘베긴 공동체’를 형성했다. 큰 베긴 공동체의 경우 특정한 교구로 지정되기도 하는 등, 점차 이전에 수도원이 행했던 독립적인 공동생활 단위를 갖추게 된다.


그러나 베긴 공동체의 성장에 걸림돌도 적지 않았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베긴 수녀회를 상당 기간 동안 로마 교황청이 용인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성직자들이 가지고 있는 뿌리 깊은 여성혐오증과, 제도권 교회가 가지고 있던 기득권에 대한 집착 등의 이유로 베긴 공동체는 결코 공인된 조직으로 용인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을 반영이나 하듯 베긴 초기 역사에 비교적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준 로마 교황청의 입장은 점차 악화되어 급기야는 13세기 중반 이후에는 급격하게 부정적으로 변한다. 우선, 1215년에 제4차 라테란 회의가 새로운 종교적 교단의 설립을 금지시킨 것도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 1233년에 내려진 ‘Gloriam virginalem’이라는 교황의 칙령이 베긴회를 포용해 주었지만, 13세기 중반 이후 베긴 공동체에 대한 입장은 크게 악화된다.


서원을 강요하지 않고 살던 베긴 여성공동체가 큰 문제를 야기한 것도 아니었는데도 비엔 회의(Council of Vienne, 1311-1312)는 베긴 공동체를 명확하게 금지 대상에 포함시킨다. 이에 따라 급기야 이듬해에 베긴 공동체의 재산을 몰수하고, 베긴들을 강제로 결혼을 하게 만든다.


<사진 설명> 베긴수녀회 지역내에 있는 작은 성당



여기서 그치지 않고 1421년 교황 마틴 5세는, “콜론의 대주교가 정한 규칙서 없이 종교의 이름으로 행하는 그 어떤 수녀원이든 모두 파괴하라”라고 명령한다. 이러한 풍파 속에서 다행히 살아남은 베긴들은 그나마도 종교개혁과 나폴레옹 전쟁을 겪으면서 대부분 와해되고 만다. 그 후 오랜 시간이 흐른 1970년 현재에 이르게 되면 수백 개에 달하던 베긴 공동체가 벨기에에 11곳, 네덜란드에 두 곳만 남고 이 역시 거의 대부분 사라지고 만다.


베긴 공동체는 13세기 여성들뿐 아니라 북부 유럽 사회에 페미니즘 발전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도 제도권 성직자들이 그토록 반대한 이유는 여성에 대한 권위적 남성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베긴 공동체가 추구하는 ‘사도적인 삶’(vita apostolica)이 그들의 권위를 제한하려는 의도와 부합되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쉽게 말해서 베긴 공동체는 종교적 탈을 벗고 주님의 뜻대로 살자는 복음주의 형태를 띠고 있기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휘황찬란한 금붙이로 감싸고 있던 성직자들에게는 눈엣가시처럼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 아니었을까라는 말이다.


일생동안 지켜야 할 서원을 하거나 특정한 교단에 속하지 않고서도 청빈과 자율이라는 가치에 기초해 종교생활을 영위했던 베긴 공동체, 이들은 ‘아내’와 ‘수녀’ 이외에 출구가 없었던 많은 여성들에게 세속적이고 봉건적인, 그리고 폐쇄적 종교생활 사이에서 분명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 주었다.


비록 ‘베긴이라 부르는 ’ 작은 아씨들‘이 놀림과 박해를 받으며 화형에 처해지기도 했지만, 베긴 공동체는 분명 ‘사도적 삶’(vita apostolica)을 희구하는 사람들에게 자율과 자유, 그리고 청빈과 섬김의 정신을 심어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스콜라 사상이 가장 크게 발전해 나가고 있던 바로 그 시대에 ‘작은 아씨들’, 즉 베긴들은 학문과 지적인 논리보다 직접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기를 원했다. 그렇기에 에크하르트가 말했던 것처럼 이들은 ‘lesemeister’가 아니라 ‘lebemeister’인 것이다. 쉽게 말해, ‘말로만 주님을 섬기는 사람’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었다는 말이다.




※ 참고 사항

베긴수녀회는 북부유럽의 페미니즘 발달사를 이해하는 첩경이다. 그런데 브뤼헤의 베긴수녀회는 1937년부터 베니딕트 수도원(the De Wijngaard Monastery )으로 그 용도를 변경했다. 지금은 단지 건물 중 일부만을 베긴회의 전통을 보여주는 징표로 사용하는데, 베긴회와 관련된 서류와 문서를 보관하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 참고서적

- 김재현, “메히트힐트(Mechthild of Magdeburg)를 중심으로 한 베긴회(Beguines) 연구”, 중세르네상스 영문학 제12권 1호, pp.43~65.

- Wikipedia/ Beguines and Beghards


브뤼헤 기차역


매거진의 이전글 파랑새의 고향 헨트(Gent)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