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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수 Nov 24. 2016

플란다스의 개, 그리고 루벤스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벨기에  7


1.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 호보켄(Hoboken) 마을에 네로라는 소년이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네로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화가가 되고 싶어 하지만 집안이 가난해 그림물감 조차 살 수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네로는 버려진 개를 데려와 파트라슈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파트라슈는 할아버지와 함께 우유 수레를 끌며 우유배달을 한다. 


네로는 시내 성당에 있는 루벤스가 그린 예수님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데, 성당의 그림은 돈을 내야만 볼 수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네로는 미술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는다. 입상을 하면 상으로 물감과 돈을 준다는 얘기에 네로는 미술 대회에 그림을 제출한다. 하지만 재료를 살 돈이 없어 널빤지에 목탄으로 그림을 그려 제출한다. 


그런데 네로가 좋아하는 여자 친구 아로아의 집에 불이 난다. 그러나 아로아의 아버지는 네로가 한 짓이라고 의심을 한다. 이때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시고 네로는 방세를 내지 못해 살던 오두막에서 조차 쫓겨나고 만다. 크리스마스 전날 미술대회 입상자 발표를 하지만 네로의 이름은 없다. 힘없이 발표장을 나오다 네로는 길에서 아로아 아버지 지갑을 발견하고 아로아네 집으로 가 지갑을 돌려주고 온다.


크리스마스에는 성당에서 무료로 그림을 개방하기 때문에 네로는 그림을 보러 간다. 그러나 네로와 파트라슈는 이미 며칠을 굶은 상태였기에 성당에 도착한 네로는 루벤스의 그림 앞으로가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는 그림 속 예수님을 보면서 네로와 파트라슈는 서로 얼싸안고 죽음을 맞는다.


'십자가에 매달리는 예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크리스마스날 아침 네로와 파트라슈가 성당에서 죽은 채 발견되자 아로아의 아버지는 미안한 마음에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마을 사람들은 교회의 특별 허가를 받아 네로와 파트라슈를 제단 아래에 장사 지낸다.(* 실제로는 네로와 파트라슈가 제단 아래에 묻히질 않았으니 찾으려 하지 마세요. 소설이니까. 그런데도 진짜로 그 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플란다스의 개’를 쓴 작가는 영국 작가 위더, 그녀의 본명은 M. L. 라 라메(Marie Louise de la Ramée)인데, 그녀가 안트베르펜을 여행한 후 전해오는 이야기를 듣고 개와 소년을 주인공 삼아 1872년에 소설을 써 출간한다. 그러나 ‘플란더스의 개’를 진짜 유명하게 만든 계기는 따로 있다.


‘플란다스의 개’는 후지 TV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방송을 시작하자 유명해지기 시작한다. 쿠로다 요시오 감독이 제작한 ‘플란다스의 개’는 1975년 1월 5일부터 12월 28일까지 1년간 세계명작극장 시리즈의 하나로 방송을 했다. 


이 작품이 방송되자 일본 관광객들은 앞다투어 안트베르펜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때부터 안트베르펜은 ‘플란다스의 개’의 도시로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안트베르펜 어디에서도 플란다스의 개와 관련된 상징물을 발견할 수가 없다. 단지 플란다스의 개에 등장하는 루벤스의 그림 몇 점이 노트르담 성당에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을 뿐이다.


플란다스의 개에 등장하는 주인공 네로와 파트라슈의 죽음이 문득 한국 애니메이션 작품 오세암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어린 고아 소년 길손이의 죽음과 오버랩되면서 떠오른다. 어린 소년들의 순수 감성이 드러나는 작품들은 모두가 동질성을 가지고 있나 보다. 마치 천사들의 환영처럼 말이다. 


노트르담 성당에 있는 루벤스의 작품 '십자가에 올려지는 예수‘ 그림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보인다. 혹시 그 개가 바로 파트라슈가 아닐까라는 별난 상상을 해본다. 그만큼 플란더스의 개는 그 자체가 안트베르펜의 상징으로서 여전히 우리들 어렸을 적 기억을 되돌려 놓는 마력이 스며있는 듯하다.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성당 제단에 그려진 루벤스의 '성모승천' 
루벤스의 또다른 '성모승천' 작품, 이 작품은 오스트리아 비인 예술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2.


안트베르펜에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높은 노트르담 성당이 있다. 1352년 착공해 1521년 완공된 이 건물은 높이 123미터의 첨탑을 가진 고딕 성당으로 벨기에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1533년 화재가 나고, 1565년과 1581년에 종교개혁 과정에서 개신교도들이 성상파괴를 주도하여 불운을 겪기도 한다.


이 성당에는 ‘플란다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루벤스의 작품 ‘십자가에 매달리는 예수’(The Raising of the Cross: 1609-1610)를 비롯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The Descent from the Cross: 1611-1614)(* 이 작품은 당시 엔트베르펜 시장이자 길드 조합장이던 로콕스(N. Rocockx)의 요청으로 루벤스가 그렸다.), ‘예수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Christ: 1611-1612), 그리고 ‘성모의 승천’(The Assumption of the Virgin: 1625-1626)의 4개 작품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중앙 돔 천장에 있는 ‘성모승천’은 루벤스가 그린 작품이 아니고 코르넬리스 슈트(Cornelis Schut)라는 다른 사람의 작품이다. 이 성당에는 루벤스의 작품 이외에도 플랑드르 후기 화가들이 그린 작품들도 20여 점이 함께 전시되어 있어 성당 안은 마치 갤러리를 연상시키는 분위기이다.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창문에는 롬부트의 1503년 작품 ‘최후의 만찬’(Last Supper)이 그려져 있다.


노트르담 성당을 찾았을 때 네로가 돈이 없어 그림들을 보지 못했다는 그 그림들을 필자는 요금을 지불하지 않고 공짜로 보았다. 5시에 성당 전시실 입구 문을 닫는데 간신히 10분 전쯤에 도착해 사정을 해대니 자물쇠를 들고 있던 수녀가 얼른 보고 나오라며 입장료도 안 받고 그냥 들여보내 준다. 그 10여분이 내겐 1시간 이상의 느낌으로 아주 길고도 긴 느낌이었으니, 어쩌면 네로가 그렇게 긴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하다가 떠나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가슴 한편이 저려온다.


<사진 설명>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성당이 소장하고 있는 플랑드르 화가들의 작품, 모두가 성서이야기를 주제로 그린 작품들이다. 



여하튼 그림들은 ‘Quinten Metsijs부터 Peter Paul Rubens까지’라는 주제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참고: www.dekathedraal.be) 그림들은 양쪽 기둥에 이열로 주욱 걸려 있다. 이 그림들을 보면서 성당의 그림들을 따라 제단 앞쪽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문득 내가 지금 어느 상상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는 그런 기분을 느끼는 순간 어느 틈엔가 내가 그림 속 세상에 들어와 있는 착각이 들었다. 그림 속의 사람들이 점점 살아 움직이면서 내게 말을 걸어올 듯이 다가온다. 예수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 그 곁을 지켜보던 강아지 한 마리까지 모두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고 함께 가자고 한다. 오랜만에 맛보는 기분, 황홀경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루벤스의 세 폭 제단화(Triptych)  ‘십자가에 매달리는 예수’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에서 루벤스는 좌우 패널에 독립적인 그림을 그리던 전통을 따르지 않고 중앙 패널의 공간을 좌우에 확장해 시야를 확대하는 이탈리아 방식을 채택하였다. 그리고 화면의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으로 대각선 방향으로 놓인 십자가에 눕혀진 예수의 몸과 같은 방향으로 구부러진 좌측 패널의 여인의 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강한 공감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화면을 가득 메운 군상들의 표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힘은 그림 속 주인공인 예수의 수난을 더욱 강렬하게 부각할 뿐 아니라 루벤스의 강렬한 열정(passion)까지 느끼게 해준다. 


피터 폴 루벤스, 그는 엔트베르펜에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 스타일을 가져와 17세기 플랑드르 예술을 바꾸어 놓았다. 그의 작품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정확한 사실성과 강력한 역동성을 표현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루벤스라는 사람이 더욱 궁금해진다. 


그동안 없었던 네로와 파트라슈 동상을 지난해 만들어 성당 옆 골목에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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