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수 Nov 30. 2016

카리타스 로마나(Caritas Romana)

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벨기에  9


1.


“로자 샤인(샤론의 장미)은 낯선 남자를 품에 안고 그에게 젖을 물린다. 사내는 오히려 그녀의 젖가슴을 피하려 도리질을 하며 어색해한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그에게 젖을 물리며 신비로운 미소를 짓는다.”


존 스타인벡은 1930년대 경제공황이 한창이던 시기에 미국 오클라호마의 농사꾼 조드 일가의 삶을 '분노는 포도처럼'에 그려낸다. 당시 미국 전역을 휩쓴 경제 공항의 여파로 살 길이 막연해진 조드 일가는 캘리포니아로 이주를 한다. 그러나 그곳은 이미 각지에서 흘러든 노동자들로 과일 따기 품팔이 조차 구하기 힘든 실정이었다.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고용주들과 그 앞잡이들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선교사 캐시가 주동이 되어 파업을 일으킨다. 그러나 캐시는 고용주의 앞잡이인 폭력단에게 살해된다. 그 장면을 목격한 조드가의 장남 톰은 캐시를 죽인 남자를 살해하고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떠난다.


이 소설은, 몰락한 소작농 조드 가족의 분노를 통해 풍요를 꿈꾸던 자본주의 아래 모든 꿈을 잃어버리고 고통하고 신음하던 약자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로 당시 뉴욕타임스 기자이자 작가였던 존 스타인 벡은 그의 나이 38세에 퓰리처상과 전미 서적상 조합상을 받는다.


화산재로 덮인 폼페이에서 발견된 벽화, Roman Charity, Unknown, 1세기 중반(폼페이)



그가 그리려 한 것은 단순히 소외된 자들의 분노뿐이 아니라 미국 사회의 구조적인 억압과 지배에 대한 반항과 분노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의 분노는 가진 자들에 대한 분노이자 헤어날 수 없는 가난에 대한 분노였던 것이다. 그런데 조드 가족을 삼킨 분노는 여전히 이 시대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외된 자들에게 반복해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비록 오늘의 분노가 절대적 빈곤의 그늘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 해도 여전히 육체적인 배고픔과 정신적인 목마름에서 자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30년대 대공황의 위기와 오늘날의 위기를 동일시할 수는 없을 테지만 포도처럼 영글어가고 있는 분노의 뿌리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지금도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는 또 다른 현대판 조드 가족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도 여전히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를 것이다. 오히려 이들의 기근과 허기는 더 깊은 정신적 기근과 허기를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지기 때문이니 말이다. 그래서 ‘분노’는 더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게 될 수 있다. 그건 어쩌면 마르크스가 예견한 자본주의의 몰락이라는 현상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Cimon and Pero, Hans Sebald Beham, 1544(오른쪽에 수직으로 써넣은 문구는, “나는 내 딸의 젖으로 살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여준 조드 일가의 인간적인 면모, 어쩌면 오늘 우리가 갖추어야 할 인간상이 아닐까? 소설 속 짐 케이시 목사는, “모든 사람은 누구나 다 커다란 영혼의 일부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의 말에 감화를 받은 조드 일가는 고통을 받으면 받을수록 서서히 자신과 가족만을 생각하던 ‘나’라는 차원에서 벗어나 타인을 형제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우리’라는 차원으로 도덕적 성장을 이룬다.


강인한 정신력과 모성애를 가진 조드 일가는 점차 이웃과 공동체, 나아가 인류를 생각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에게 밝은 미래를 제시해 준다. 특히 조드의 또 다른 분신인 그의 딸 로자 샤인이 보여주는 행위는 감동 그 자체이다.


로자 샤인이 아기를 사산하자 식구들은 망연자실 어쩔 줄 몰라하는 데 오히려 로자 샤인은 고통을 극복하고 아사 직전의 낯선 사내에게 닥아가 자신의 젖을 물린다. 이러한 그녀의 극적인 행위는 어쩌면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실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것은 단지 작품 속 주제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스타인벡이 말하려는 것은 어쩌면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따스한 울림 같은 자비로움을 이제는 그걸 끄집어내어야 한다는 외침 같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 어쩌면 무조건적인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자비로움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사회는 건강해지고 나에 대한 존중과 배려 역시 증가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La Chaite Romaine, Charles Mellin, 1628(루브르박물관/ 파리)



2.


루벤스는 1630년 나이 어린 신부 헬레나 푸르망을 아내로 맞더니 그녀를 자신의 작품 주인공으로 그려대기 시작한다. 그중 하나가 신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루벤스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주제를 찾아낸다. 바로 ‘카리타스 로마나’이다. 이미 1612년에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린 적이 있지만 푸르망을 아내로 맞은 후 루벤스에게는 샘솟듯이 푸르망에 대한 이미지를 그림으로 표현해 내려는 욕구가 생겨나고 있었다.


‘카리타스 로마나’(Caritas Romana)라는 제목의 그림 속 노인의 이름은 ‘시몬‘, 여인은 그의 딸 ’ 페로‘. 딸은 감옥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매일 찾아와 젖을 먹인다. 아버지가 죄를 지어 굶어 죽어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는데 감옥에서 굶어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다 못한 딸이 매일 감옥에 찾아와 젖을 먹여 아버지를 살린다는 이야기다. 그녀의 사랑에 감동한 로마 당국은 결국 시몬을 석방했다고 한다. 선정적인 그림이 숭고한 명화로 바뀌는 순간이다.


Cimon and Pero, P.P.Rubens, 1612.(예르미타시 미술관/상트페테르부르크)



루벤스가 형상화한 효성이 지극한 딸과 그 딸에 의지해 생명을 이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은 사실 보기에 따라 매우 충격적이다.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효심과 다 큰 딸이 아버지에게 젖을 물리는 흔하지 않은 모습은 루벤스의 생동하는 그림으로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아버지를 살리는 일이 우선임을 부각하기 위해 루벤스는 아버지 시몬에게 검은 옷을 둘러 그의 비극을 나타내고, 그의 딸 페로에게 붉은 옷을 입혀 자식으로서의 뜨거운 사랑을 표현한다.(* 그런데 루벤스 그림의 공통점 중 하나가 신화적 인물을 부각하기 위해 대부분 주인공들에게 붉은 천으로 된 옷을 입히고, 상대방에게는 검은 옷을 입혀 대비를 강조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Cimon and Pero, P.P.Rubens, 1630(레이크스 국립박물관/ 암스테르담)



그러데 루벤스가 1630년에 그린 ‘로마의 자비’는 루벤스의 엽색행각을 그린 게 아니냐는 호사가들의 비아냥 어린 소리들이 떠돌게 된다. 그림 속 여인은 그의 아내 푸르망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더욱 그런 반응들이 나돌았던 모양이다. 더구나 당시 루벤스의 나이는 53세였고 그의 아내 헬레나 푸르망은 16살이었기에 비아냥 조의 험담들이 나돌았던 게 아닐까? 아무튼 그 때문에 루벤스는 이 그림을 그린 후부터 사람들과 접촉을 꺼리게 되어 집안에서 지내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상황 윤리에 밀려 곤혹을 치러야만 했던 루벤스는 결국 죽은 후에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다. 루벤스의 두 번째 카리타스 로마나(1630) 작품은 “강력한 색채 대비와 캐릭터의 대립이 그림 속에서 충만하게 화합하는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또 하나의 명화로 부각이 된다.


아무튼 ‘카리타스 로마나’는 문학과 예술에서 중요한 소재임이 분명하다. 엄격한 로마의 법도 딸의 애틋한 효심에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는 인간주의를 표방하고 있기에 아버지는 딸의 수유로 생명을 건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품은 작품으로만 보자.


Roman Charity, Johan Zoffany, 1769,



3.


로마시대의 작가 발레리우스 막시무스(Valerius Maximus)는 AD 30년에 <고대 로마인의 기억할만한 행동과 격언들(Factorum ac dictorum memorabillium)이라는 책을 펴낸다. ‘카리타스 로마나’(Caritas Romana: 로마의 자비)는 바로 이 책 제 4권 5장에 실린 이야기이다.


당시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중세 기독교의 비인간적인, 즉 신성가족만을 위한 종교가 오히려 사회를 혼탁하게 하고 타락시키고 있던 상황을 이 ‘카리타스 로마나’(로마의 자비) 정신은 서서히 새로운 인간의 가치를 회복하는데 기여를 한다.


인간 중심의 소망과 행복을 추구하려는 르네상스의 가치는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의 공통주제로 자리를 잡게 되고 관련된 작품들이 연이어 나오게 된다. 그 결과 카리타스 로마나의 정신은 지난 세기 수없이 많은 예술작품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Roman Charity, Baroque painting of Italian School, 17세기.



이처럼 카리타스 로마나, 즉 로마의 자비는 16세기 루벤스뿐만 아니라 17~8세기에 이르는 동안 신고전주의 화가들이 앞다투어 그린 주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화가들이 이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 뿐만 아니라 이 주제는 단지 미술분야에서만 관심의 대상이 된 게 아니라 판화나 조각 작품에 까지도 영향을 주고 문학과 심지어 영화에서도 주요한 주제로 등장한다.


앞에서 살펴본, 1939년에 발표한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에서도 로마의 자비는 주요한 테마였다. 소설에서 ‘샤론의 장미’라는 이름을 가진 로자 샤인이 헛간에서 아사직전의 이름 모를 노동자에게 자신의 젖을 꺼내 물린다는 설정이 바로 그것이 아닌가.


들짐승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 그 늑대의 후손이 기원전 753년 로마제국을 건설한다. 그래서인지 ‘카리타스 로마나’(로마의 자비)가 이방인에게 젖을 물리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게 아닐까?


문득, 글을 쓰면서 과연 나는 ‘카리타스 로마나’를 내 작품의 주제로 녹여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다. 그건 어쩌면 우리에게 ‘안티고네’를 빙자한 교활한 사탄의 무리들이 온 천지를 장악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왼쪽: Caritas Romana, Gaspar de Crayer, 1620, Museo de Prado(마드리드)

오른쪽: Caritas Romana, Giovanni and Sirani, 17세기  


Caritas Roman, Louis Jean Francois Lagrenee, 1782(루브르박물관/ 파리)


매거진의 이전글 신화를 그리는 남자, 루벤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