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인도네시아(발리)
“라와게데 등지에서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2013년 9월 12일 인도네시아 주재 네덜란드 대사는 지난 시기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한다. 실로 70여 년 만에 네덜란드 외무장관이 자카르타에서 열린 학살 추모식에 참석해 지난 학살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한 것이다.
17세기가 시작하면서 네덜란드는 엄청난 국력을 발휘한다. 제일 먼저 네덜란드를 지배하던 스페인과 독립전쟁을 벌이면서 승리를 한다. 네덜란드는 이 여세를 몰아 해외로 진출을 꾀한다. 이름하여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이를 발판으로 식민지 개척에 나선 것이다. 당시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제국주의 깃발을 내세우고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해외 식민지에서 부를 끌어오는 수법으로 부를 축적해 나간다. 따라서 네덜란드도 예외가 아니었다.
1602년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 동인도회사를 설립하고 340년간의 식민지 경영을 본격화한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1824년 인도네시아 전 지역을 직할 식민지로 만든다. 그러나 1942년부터 시작된 2차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네덜란드는 일본에게 인도네시아 지배권을 넘겨주어야만 했다.
* 한국의 불교사원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일주문과 유사한 형태의 건축물. 힌두교와 불교문화의 유산이 인도네시아 특유의 건축물을 만들었다. 마치 하나의 작품을 대칭으로 갈라놓은 것처럼 보인다. 인도네시아 사원이나 관공서 등 주요 건물 입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18,000여 개의 섬으로 구성된 나라이다. 그중에서도 인도네시아 중앙에 위치한 발리 섬은 ‘신들의 섬’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발리는 손꼽히는 관광지인데 유명한 울루와뚜 사원(uluwatu temple)이 절벽 위에 있다. 이곳은 영화 빠삐용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그 후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하고 물러가자 인도네시아는 재빨리 독립을 선포한다. 그러나 네덜란드 정부가 인도네시아를 재차 식민지화하려고 군대를 파견하고 4년간 인도네시아와 전쟁을 치른다. 1949년 12월 27일 결국 유엔의 중재로 인도네시아가 독립을 하지만 그사이 네덜란드군은 무고한 인도네시아 주민들을 적지 않게 살해한다.
특히 자바섬 위쪽에 위치한 술라웨시 섬 남부에서는 1946년부터 5천여 명이나 되는 주민들을 무차별 살해한다. 베스테를링 장군이 이끄는 네덜란드 동인도군(KNIL)이 1946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석 달 동안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벌인 결과다.
* 가루다는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새인데, 인간의 몸체에 독수리의 머리와 부리, 날개, 다리, 발톱을 갖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사람들은 태양신으로 알려진 가루다가 황금 날개에 태양을 싣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운반한다고 믿는다. 한편, 불교에서 가루다는 성스러운 새로 여겨지기에 타이와 인도네시아는 가루다의 형상을 국가 문장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 인도네시아의 인구는 2억 5천만 명 정도, 종교는 전 인구의 88%가 이슬람이다. 그러나 발리는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힌두교도가 85% 정도를 차지한다. 집이나 가게 앞, 그리고 거리에는 야자수와 바나나 잎으로 만든 그릇에 과일과 꽃을 담은 것을 놓아둔다. 이것들은 ‘짜낭’이라고 하는데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다.
* 저녁이 되면 엄청난 양의 ‘짜낭’이 거리 한 귀퉁이에 산더미처럼 쌓인다.
11차례나 진행된 베스테를링의 진압 작전은 네덜란드 내에서도 문제가 돼 결국 1948년 11월 베스테를링을 해임한다. 마을의 성인 남성들을 모아놓고 ‘의심스럽다’는 이유만으로 학살해 버린 사이코패스 같은 베스테를링의 잔인함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무자비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또한 자바 섬 서부에 위치한 라와게데 마을에서도 1947년 12월 주민 431명을 잔인하게 살해해 버리는 일이 벌어진다. 독립운동 지도자의 은신처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번에도 마을 남성들을 모아놓고 잔인하게 현장에서 처형해 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유엔은 1948년 1월 “치밀하고 무자비한 살해극이었다”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두 사건은 이미 국제적으로 논란이 된 사건들이다. 그러나 60여 년이 지난 2008년 9월이 되어서야 라와게데 유족 10명이 네덜란드 정부에 사과를 요구한다. 네덜란드 정부는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공소시효가 지난 일이라고 발뺌을 한다. 그러나 유족들은 네덜란드 법원에 네덜란드 정부를 제소한다. 그러자 2011년 헤이그 법원은 “이런 전쟁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유족들 손을 들어준다.
* 따나 롯(Tanah Lot) 사원, 따나는 땅, 롯은 바다라는 뜻의 발리 말이다. 발리인들은 바다에 이웃한 땅인 큰 바위 위에 세워진 따나 롯 사원을 신비한 섬에 세워진 사원이기 때문에 이 사원이 발리 섬을 보호한다고 믿는다, 따나 롯 사원은 16세기에 자바의 고승 니라타가 건립했다고 하는데 사원에는 썰물 일 때에만 접근이 가능하다.
* 타만 아현(Ayun) 사원. 1634년 처음 문을 열었는데 아현은 성전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사원은 발리에 있는 힌두교 사원 중 하나이다. 힌두교 사원내 건축물들이 남방문화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탑의 중심 부분은 석조로 만들고 각 층의 삿갓 같은 것은 짚으로 지붕을 만들어 덮었다.
이 판결로 네덜란드 정부는 사망자 1인당 2만 유로씩 유족들에게 지급하기로 합의한다. 하지만 네덜란드 정부는 보상금 지급을 계속 미루기만 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무책임한 행태”라며 네덜란드 언론들이 일제히 비난을 해대기 시작한다. 그제야 네덜란드 정부는 보상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2013년 8월이 되어서야 지급된 보상금은 라와게데가 아닌 술라웨시 학살 피해자 유족 10명에게만 전달했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네덜란드 법원이 ‘공식적인 사과’를 네덜란드 정부가 미적대는 사이에도 계속한 것이다. 헤이그 지방법원이 2016년 3월 11일 또다시 다른 유족 9명이 낸 소송에 대해 “네덜란드 정부가 학살 책임에 대해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 판결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미망인뿐 아니라 유자녀들에게까지 배상 범위를 확대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한 사회의 양심은 공정하고 올바른 법집행으로 보장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게 소위 ‘정의’라는 게 아닐까? 만일 네덜란드 법원의 올바른 판결이 없었다면 네덜란드 정부가 공식사과와 배상금 지불을 생각이나 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시 ‘정의가 무엇인가’라는 형식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의가 있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 주택가 구멍가게와 사원에서 만난 아이들
* 발리의 재래시장
우리 돈으로 2천6백여만 원 정도밖에 안 되는 배상금이지만 금액의 많고 적음보다 얼마나 당시의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가의 문제가 더 중요할 것이다. 그렇기에 돈 몇 푼으로 쉽게 용서할 수 없는 당시 상황을 네덜란드 정부의 ‘사과’를 통해 극복하려 한 주민들은 여전히 가족들의 억울한 주검을 떠올리면서도 네덜란드인을 용서하려 한 게 아니었을까?
아무튼 70여 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뒤늦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자 용서와 화해로 이를 받아들이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큰 결단력은 과연 진정한 용서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한 사과가 왜 필요한 것인지를 웅변으로 말해주는 듯하다.
* 배안에서 만난 인도네시아의 어느 신혼부부, 의상이 꽤나 화려하다.
* 조개껍질을 파는 섬마을 소녀들...
* 발리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인 초가지붕형태의 집, 초가지붕의 명칭을 Bale이라고 하는데 인도네시아 고유의 건축물에 흔히 사용한다.
* 인어아가씨
*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 발리에는 수백 가지의 춤이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춤이 바로 바울 댄스(Barong Dance)이다. 바롱은 발리 사람들이 믿는 초자연적인 상상의 동물로 선을 나타낸다. 발리의 종교관과 선악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무용이다.
* 바롱 댄스를 마친 무희들과 기념촬영.
* 발리 섬의 우붓(ubud) 지역은 발리 문화 예술의 중심지이다. 이곳에는 사원은 물론 박물관과 미술관, 카페 등 주요 시설물이 밀집되어 있다. 밤이면 휘황찬란한 조명으로 흡사 아테네 신전을 연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