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네덜란드 10
네덜란드 동남쪽의 끝 동네 ‘마스트리흐트’(Maastricht), 일부러 찾아가기 전에는 찾기 쉽지 않은 도시, 그런데도 이곳은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이 도시에는 어떤 매력이 있는 걸까?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마스(Maas)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 마스트리흐트(Maastricht)는 ‘마스 강을 건너다’라는 뜻으로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마스트리흐트 기차역에서 내려 잠시 강 쪽으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성 세르바스 다리’(St. Servaasbrug)를 건넌다. 강 너머로 보이던 도시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다리를 건너면서 우리는 이제 현재에서 과거로 들어가는 기분을 맛보게 된다.
마스트리흐트 도시의 중심에는 붉은색 종탑이 인상적인 성 얀 교회(Sint Jankerk)와 성 세르바스 교회(Sint- Servaaskerk)가 자리 잡은 프레이트 호프(Vrijthof) 광장이 있다. 프레이트 호프를 주변으로 레스토랑과 쇼핑 거리, 오픈마켓들이 자리 잡고 있다. 여름에는 이곳 마스트리흐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네덜란드가 사랑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앙드레 류(Andre Rieu)의 공연이 해마다 열리는데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매년 전 세계의 수많은 팬들이 모여든다고 한다.
인구 15만의 작은 도시지만 도시의 위풍은 당당하다. ‘마스트리흐트 조약’을 비롯한 유럽에서 벌어지는 주요한 국제적인 협약이 주로 이 고풍스러운 도시에서 맺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2년 2월 7일,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에서 유럽 공동체 가입국들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 유럽연합 창설을 위한 조약에 서명을 한다. 이 조약은 그 후 1993년 11월 1일부터 발효가 되어 유럽연합의 기초가 된다.
그런데 이 도시가 국제적 시선을 끄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2006년 영국 가디언지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방’이라고 소개한 교회가 바로 마스트리흐트에 있다. 이 교회는 13세기에 지어진 고딕 양식의 도미니크 교회(Dominicanenkerk)인데, 프랑스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18세기부터 교회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우여곡절 끝에 일반 용도의 장소로 쓰였다고 한다. 근래에는 심지어 자전거 보관소로 쓰이거나 마스트리흐트의 유명한 카니발 용품을 보관해주는 창고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2006년 마스트리흐트 시는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이 교회를 책방으로 개조해 문을 연다. 책방은 네덜란드의 서점 체인 ‘Selexyz’가 맡아 운영을 개시했다. '서점'으로 변한 ‘교회’. 800년이 넘은 국가의 문화재를 상업시설로 탈바꿈시킨 이 나라 사람들, 단지 실용정신의 극치라고만 해야 할까?
네덜란드에는 생각보다 엄청난 보물들이 많다. 로테르담의 큐빅하우스, 그래픽 디자이너 에셔(M.C.Escher)의 그래픽 작품들, 빈센트 반 고흐의 각기 다른 세 개의 침실과, 렘브란트의 그림 속 군인들, 그리고 델프트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 몬드리안의 ‘삼원색’까지... 모두가 세계 최고라 할만한 작품들이다.
헌데 중요한 것은 그것이 그림이든 건축이든 발상의 전환을 기본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그들의 작품 앞에 서면 엄숙해진다.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닌, 내면의 가치를 끄집어내어 시각화하는 디자인의 달인들이라고 해도 무방할 터이기 때문이다.
* 도미니크 성당과 성당 입구
* 성당 외관은 손을 대지 않고 내부에 3층으로 서고를 설치해 성당의 분위기를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가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열린 책가게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수 백 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문화재를 비록 서점이기는 하지만 상업적 용도의 목적으로 전환해 사용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여하튼 책방 내부는, 교회 건물 구조를 그대로 두고 철제로 서가를 만들어 세 개층으로 쌓아 올렸다. 건물 창을 통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빛을 그대로 활용한 지혜로움이 돋보인다. ‘Minimalist’ 답다고 해야 할까? 천장 프레스코화는 14세기 때의 그림인데 그동안 보완을 하지 않아 그런지 많이 낡았지만 3층 서고에 오르면 자세히 볼 수 있어 그런대로 좋다.
모처럼 서점 맨 위 서가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두어 시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밖은 비가 오는 중이니 마치 학교 도서관 서고에서 책을 보고 있는 그런 기분이 들어 참 좋다. 한참을 그렇게 책에 빠져있는데 문득 누군가 차를 마시는지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그만 잠에서 깨어나듯 원래의 나로 돌아온다. 어디선가 커피 향이 나를 유혹하니 더 이상 책만 보고 있을 수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신부가 하늘의 뜻을 전하며 권위와 권력을 누리던 옛 교회 제단자리에는 카페 '커피 러버스(Coffeelovers)‘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원래 제단이 놓여있던 자리에는 십자가 형태의 테이블이 놓여 있다. 마치 지금도 교회의 제단처럼 보이는 십자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고해성사하듯 누군가와 마주 않아 이야기를 나누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엄숙함으로 다가온다.
그렇게 책방에서 책을 보다 차를 마시고, 십자가의 교훈을 생각하고 또다시 책 속에 파묻힐 수 있는 곳, 바로 이런 곳이 천국이 아닐까?
책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보다 보니 어느새 비가 조금 수그러 들었는지 조용한 느낌이 전해온다. 책방을 나와 시청사가 있는 곳으로 간다. 시청사에는 여러 회의실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주말에 결혼식도 무료로 할 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시청사 회의실에서는 자주 국제회의가 열리기 때문에 주말에도 개장을 한다고 한다.
대학 쪽으로 가는 길목에 마차도 보인다. 저 마차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면 좋을 텐데 마부가 보이 지를 않는다. 하는 수 없이 그냥 걷는다. 길가에 성모 마리아 상이 보인다. 오래된 석고상처럼 느껴진다.
지난 16세기를 전후한 시기 네덜란드는 구교와 신교 간 갈등으로 우상파괴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당시 대부분의 구교 유산이랄 수 있는 성물들이 신교도들에 의해 파괴된다. 그러니 길거리에 성모상이 남아있다는 건 거의 상상조차 하기 힘든 경우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성모상이 길거리에 남아있는 걸 보면 이 도시는 분명 가톨릭 세력이 강했을 거라는 추측이 든다. 어쩌면 이 도시 좌우로 가톨릭 세력이 강력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가 둘러싸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겠다 싶다.
길을 가다 보면 또 다른 성당을 만난다. 작은 도시임에도 성당이 많다. 잠시 쉬기에는 교회만큼 좋은 곳이 없는 듯하다. 이곳은 성 세르바스 성당(Sint- Servaaskerk)이다. 성당 안은 어느 곳이나 그렇듯 기도소가 마련되어 있다. 촛불, 그리고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 빛과 그림자, 부조가 새겨진 마리아상, 스테인드글라스에 있는 마리아... 역시 유럽은 여신의 나라이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파이프 오르겔 연주가 시작되었다. 연주자가 어쩌면 젊은 신부님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흐의 칸타타가 생각보다 격렬하게 연주되고 있었다.
이제는 비도 그치고 쉴 만큼 쉬었으니 대학을 찾아간다. 여행을 할 때 가능한 그 지역의 대학을 찾아가는 습관이 있다. 우리의 대학과 전혀 다른 분위기가 좋다. 학문하는 분위기를 느끼고 잠시라도 그들과 학문에 대한 분위기를 공유하는 게 참 좋다. 잠깐이지만 유학하는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건 나만의 행복 산출법이라고 해야겠다.
마스트리흐트 대학(The University of Maastricht), 우리나라처럼 한 곳에 대학 건물이 모여있는 게 아니기에 대학을 찾아간다는 말이 다소 어패가 있을 것이다. 사실상 대학의 일부만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의 대학처럼 정문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저 단과대학, 또는 단일 학과 건물에 붙어 있는 작은 표지판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그게 유럽 대학의 특징이다.
도시가 작으니 거의 도시의 주요 지역 대부분이 대학 건물로 사용하는 듯하다. 두리번거리다 어느 건물에 문이 열려있길래 불쑥 2층을 향해 돌진을 한다. 누군가와 마주치자 오히려 상대방이 놀란다. 사정을 얘기하고 건물 내부나 연구실을 볼 수 없냐고 사정을 해 보지만 저녁 늦은 시간이라 사람들이 대부분 카페 쪽으로 나갔다며 문을 잠그고 자기도 나가는 참이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와 그와 동행을 했다.
* 시내 번화가와 시청사 건물
* 마스트리흐트 도심지
유럽의 여름은 늦은 밤인데도 늦게까지 훤하다. 그곳에서 포도주 한잔에 취기가 올라서인지 오랜만에 한참을 그들과 수다를 떨었다.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마스트리흐트 대학은 역시 네덜란드가 자랑할만한 대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인 생각에, 우리나라 학생들이 유학을 간다면 이 대학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트리흐트 대학의 공식 명칭은 'UM'(The University of Maastricht), 1976년도에 설립되어 15,000명 정도의 학생과 3,500명의 직원이 있다. 다양한 전공과 창의적 교육을 추구하는 UM, 모든 강의는 영어로만 진행하기 때문에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지원이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한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대학의 교육 포맷이 국제적인 문제를 설정하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학습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역시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와 논의가 진행되는 것, 그것이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의 진면목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우리처럼 일방적인 강의를 계속하는 한 그건 학원 수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지 않은가 말이다.
외형적으로는 마스트리흐트 대학이 우리나라 대학과 비슷한 규모라고 생각이 들지만, 또 다른 한 가지 차이나는 것이 있다. 바로 교직원 숫자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거의 10배가 넘는 수의 직원들을 보유하고 있다. 도대체 그 많은 직원들은 다 무슨 일을 할까? 아니 우리나라 대학들은 왜 직원들을 그렇게 적은 인원으로 운영을 하는 것인가. 쓸데없는 질문이 자꾸 떠오른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지만 이건 부러워도 너무나 부럽다. 직원들이 있다면 하지 않아도 될 행정업무까지 교수들이 연구를 제쳐놓고 해대니 우리나라 교수들이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만 할 뿐이다. 그들과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내 몰골은 점점 더 초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