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찾아가는 인문학 여행 / 체코 1
프라하 남쪽에 위치한 작은 마을 비쇼카에는 드보르작의 별장이 있다. 이 별장 근처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드보르작은 자신이 살던 집 근처에 있는 이 작은 연못에 루살카가 나타나는 꿈을 꾸고 오페라를 작곡했다고 한다. 숲으로 둘러싸인 이 곳에서 그는 오페라 ‘루살카’를 썼고, 1901년 3월 31일 프라하 국립극장에서 초연을 한다. 이 작품은 물의 요정에 관한 슬라브 신화를 소재로 카렐 야로미르 에르벤과 보체나 넴코바가 쓴 동화를 토대로 완성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1904년 심장병으로 죽기 전까지 이곳 비쇼카를 자주 찾는다.
물의 요정인 루살카의 생김새 원형은 인어(Mermaid)이다.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 역시 인어인데 남성 인어는 놈(Gnome: 남자 물의 요정)이라고 부른다. 어느 날 호수가를 지나던 왕자를 보게 된 물의 요정 루살카는 왕자가 너무 그리워 마녀에게 목소리를 내주는 대가로 인간이 되어 왕자의 사랑을 얻으려 한다. 그러나 왕자는 잠시 루살카의 미모에 반해 사랑을 나누지만 말 못 하는 루살카보다 화려한 미모의 다른 여인에게 매력을 느끼고 점차 루살카를 멀리한다. 배신감에 어쩔 줄 몰라하는 루살카는 왕자의 사랑을 얻을 수 없음을 직감하고 결국에는 왕자와 함께 죽음의 파국에 이르게 된다.
* 2세기경 로마시대 남자인어상 부조물들(비엔나 예술사 박물관)
왕자와 사랑에 빠진 물의 요정이 인간의 육체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희생하고 인간이 되지만, 그 사랑은 비극적인 파국으로 마무리된다는 이야기는 유럽 여러 나라에 전래되는 인어아가씨 이야기들과 유사하다.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 역시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드보르작이 작곡한 오페라 루살카가 슬라브 신화의 루살카를 모태로 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지만 드보르작의 오페라 루살카는 실제 오리지널 루살카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드보르작의 오페라를 보고 이것이 슬라브 루살카 전설의 원래 내용인 줄 알게 된다면 루살카를 잘못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루살까(Русалка), 그녀는 슬라브 신화에 등장하는 신이 아니라 여러 정령(요정) 중 하나이다. 그녀는 흔히 물의 요정(인어)으로 알려져 있다. 이 요정은 물가에서 머리를 손질하며 자태를 뽐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여행자를 유혹한 다음 물속으로 끌어들여 죽인다. 그만큼 루살까의 본질은 악독하고 무섭기 짝이 없는 존재이다. 그녀는 본래 살아있을 때 아름다운 처녀였는데 물의 요정, 즉 루살까(사악한 요정)로 변모하게 된 데에는 그 나름 사연이 있다. 드보르작의 오페라 루살카 3막에서 그 이야기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드보르작의 오페라 루살카의 이야기 구성을 보면 슬라브 신화 속 루살까 보다는 안데르센의 ‘더 리틀 머메이드’(* 일본 사람들이 ‘인어공주’라고 번역, 소개한 것을 우리도 따라서 ‘인어공주’라고 부른다.)를 그대로 복제한 것처럼 보인다. 호수의 정령이 사랑을 알고 싶어 인간이 되려 하지만 결국 인간이 되지 못하고 죽음의 영혼이 되어 영원토록 떠돌게 된다는 슬픈 이야기를 덴마크의 안데르센이 1836년에 먼저 동화로 발표했다.
1막
숲 속에 달빛이 비치고 숲 속 호숫가에서 요정들이 춤을 추고 있다.
루살카는 우울한 표정으로 남자 물의 요정인 아버지 놈(Gnome)에게 인간 왕자와 사랑에 빠진 것을 고백한다.
루살카는 왕자와 사랑을 나누기 위해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하는 수 없이 아버지 놈은 마녀를 찾아가면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일러준다.
루살카는 사랑하는 왕자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달님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른다.
마녀는 루살카에게 인간이 되기 위한 방법을 일러주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루살카가 인간이 되는 순간 말 못 하는 벙어리가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왕자가 루살카를 배신하면 왕자와 루살카는 모두 저주를 받게 되어 왕자도 루살카도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을 갈구하는 루살카는 그래도 인간이 되기로 결심을 한다.
루살카는 마녀가 준 약을 먹고 드디어 말 못 하는 인간이 된다.
날이 밝자 또다시 숲에 나타난 왕자는 인간으로 변한 루살카를 발견한다.
말은 못 하지만 너무 아름다운 루살카를 사랑하게 된 왕자는 그녀를 데리고 궁으로 돌아온다.
* 1막: 아버지에게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하소연 하는 루살카, 달님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는 루살카
(Photo Credit: ©Ken Howard/Metropolitan Opera 2014)
2막
성안에서는 왕자와 루살카의 결혼식 준비로 소란스럽기만 하다.
사람들은 말 못 하는 루살카와 결혼하려는 왕자가 이상하다며 수군댄다.
이때 왕자가 등장하는데, 외국에서 축하사절로 찾아온 공주에게 서서히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한다.
이웃나라 공주는 호들갑을 떨면서 왕자를 가로채 가고 만다.
상심한 루살카는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데 이때 루살카의 아버지 놈이 궁전에 있는 연못에 나타난다.
아버지 놈을 보는 순간 갑자기 말 못 하던 루살카의 목소리가 되살아나면서 아버지에게 왕자의 사랑이 식어버린 것을 하소연한다.
아버지 놈은 왕자에게 사랑에 대한 약속을 어기게 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루살카를 데리고 사라진다.
왕자는 루살카를 잊지 못하고 저주가 두려워 머뭇거린다.
왕자를 가로챈 외국의 공주는 우유부단한 왕자를 비웃으며 떠나가 버린다.
* 2막: 왕자와 루살카의 결혼식 준비 중인 궁전 앞 정원. 초대된 손님들이 모여들고 루살카가 계단에 있다. 하지만 왕자는 루살카를 배신하고 결혼식에 초대된 이웃 나라 공주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Photo Credit: ©Ken Howard/Metropolitan Opera 2014)
3막
다시 숲으로 돌아온 루살카
숲 속 호수에 사는 물의 요정들은 그녀를 반기지 않는다.
루살카가 물의 요정으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왕자를 죽여 그의 피를 마셔야만 한다면서 마녀는 루살카에게 단검을 건넨다.
루살카는 그녀가 사랑하는 왕자를 죽일 수 없다면서 칼을 던져 버리고 호수에 뛰어들어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루살카는 죽음의 정령 블루디카(bludicka)가 된다.
블루디카는 인간을 유인해 물에 빠뜨려 죽이는 무서운 살인 정령이다.
숲 속 나무정령들은 루살카의 처지를 슬퍼하며 그녀를 위로한다.
얼마 후 왕자는 루살카를 찾기 위해 또다시 숲 속 호수가로 찾아온다.
하지만 루살카는 왕자에게 자기에게 키스를 하면 죽음을 맞게 된다고 경고를 한다.
왕자는 자기의 운명을 받아들일 것을 결심하고 그녀에게 키스해 줄 것을 애원한다.
루살카는 결국 왕자에게 키스를 해주고, 왕자는 루살카의 품에 안겨 서서히 죽음을 맞는다.
루살카는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왕자를 안은채 호수 물속으로 사라진다.
* 3막: 다시 물의 요정이 되려면 왕자의 피를 마셔야 한다며 칼을 건네는 마녀, 하지만 루살카는 칼을 버리고 물속으로 가라 앉아버린다. 죽음의 정령으로 변한 루살카와 입맞춤을 한 왕자는 루살카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Photo Credit: ©Ken Howard/Metropolitan Opera 2014)
“달님에게 바치는 노래”
* 2002년 바스티유 공연에서 루살카 역으로 열연한 르네 플레밍(Renee Fleming)이 부르는 ‘달님에게 바치는 노래’, 드보르작의 오페라 루살카 1막에 나오는 아리아이다.
* 루살카가 인간이 되고 싶어 아름다운 목소리를 마녀에게 바치기 전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들려주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 오페라는 대개 그나라 말로 불러야 제맛이라는데, 체코 말로 된 오페라이다 보니 원래 명품 배우인 체코 출신 미국인 소프라노 르네 플레밍이 열심히 고향 말로 부르니 이 이상 잘 부른 아리아가 없을 듯하다.
○ 안톤 드보르작 ‘루살카’ 중에서, ‘달님에게 바치는 노래’ 가사
깊고 깊은 하늘에 높이 빛나는 달님이시여,
그대의 빛은 멀리멀리 비춥니다.
당신은 이 넓고 넓은 세상을 돌며
사람들의 집을 들여다보십니다
오, 달님이시여, 잠깐만 그 자리에 멈춰
사랑하는 내 님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소서.
부디 그님에게 전해 주소서.
하늘의 은빛 달님이시여
내가 그 이를 꼭 껴안을 수 있도록
그 분과 잠깐 동안만이라도
내 꿈을 꾸게 되도록
저 멀리 그가 쉬는 곳을 비춰 주소서.
그님에게 말해 주소서.
누가 그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혹시라도 그님이 내 꿈을 꾸고 있다면,
내 생각으로 그가 잠을 깨도록 해 주소서.
오, 달님이여,
부디 사라지지 마소서.
사라지지 마소서.
* 프라하 시내에 있는 안톤 드보르작 기념관 입구, 드보르작이 사용하던 피아노
* 프라하 남쪽의 작은 마을 비쇼카(Vysoka)에 있는 드보르작의 별장, 현재 드보르작 기념관으로 사용 중이다. 기념관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루살카 호수가 있다.
(출처: http://www.radio.cz/en/section/spotlight/vysoka-the-inspiration-for-antonin-dvoraks-rusal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