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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연 Mar 05. 2023

생일이 뭐라고

다시 오지 않을 2023년 2월 22일


학교 다닐 때 2월생이 얼마나 억울하냐면 남들 생일 다 챙겨주면서 내 생일은 방학이라서 조용하게 지나간다. 물론 가까운 친구들을 제외하고 말이다. 학교에서 생일을 맞은 아이가 선물을 한 다발 들고 집에 가는 걸 보면 부러울 때도 있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생일을 축하받을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해 보였다.


친구들을 불러 모아놓고 생일 파티를 해본 기억이 많진 않지만 있긴 하다. 초등학생 때였고 기다란 상 위에는 커다란 케이크와 간식들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는 게 흐릿하지만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날은 영상이 아닌 인화된 사진 한 장처럼 정지된 화면뿐이다. 그리고 모아두었던 편지함에 있던 그날 받은 축하 편지가 그때를 말해준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20대 때에는 내 생일을 잊어버리고 지나간 사람들에게 서운함을 느낀 적도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우리의 관계가 그만큼이 아니었음을 내 멋대로 생각해 버린 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알고는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창피함을 한동안 느낀 적이 있었다. 


얼마 전 생일이었다. 바쁜 회사 일에 그 전후로 연차를 쓰고 싶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고, 사실 생일이 다가오는 것도 잠시 잊고 있었다. 물론 한 달도 더 전부터 '곧' 내 생일이라고 말해주는 친구덕에 조금씩 다와가고 있음을 느끼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에는 12시 땡 하면 "내가 가장 먼저 축하해 줬지?"라고 문자를 보낸 이가 뿌듯해하는 일들이 있었기에 은근 기대하는 바도 있었다. 하지만 30대가 된 지금, 그것은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1일에서 22일로 날짜가 바뀌고 가장 먼저 축하를 해줬다는 사실보다, 그저 22일을 기억하고 시간을 내어 연락해 준 것에 더 마음이 갔다. 


나도 가끔은 카톡 알림에 생일이 떠도 모르는 척 지나치는 사람들이 있다. 연락처에 저장된 모든 사람들이 내 친구는 아니니까. 


이날은 오랜 시간 나의 생일을 기억해 준 이들부터 카톡 생일 알림이라는 어이없는 기능에 당해버린 친구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연락을 보내왔다. 매일 업무 카톡만 쌓여 있던 때와는 달리 친구들의 연락이 절반 이상 뒤덮어버린 나의 카톡창이 기분 좋은 어색함을 안겨주었다.


'저번에는 직접 축하해 줬었는데...'

'나의 마음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선물이야'

'이게 필요할 것 같아서 골라봤어'


나를 울리는 말들은 차고 넘쳤다. 30대가 되니 선물의 크기보다 마음의 크기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365일 중에 단 하루뿐인 날에 나를 떠올리고, 기억해줬고 너의 곁에 내가 있었음을 느끼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어떤 사람은 미처 축하해주지 못하고 마음 쓰였을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누군가의 생일을 지나쳐버린 건 그 사람에게 쓰는 마음이 아까워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현재의 내 삶이 바쁘고 지쳐서 '연락해야지' 하고는 다음날이 되고 며칠이 흘러버렸다. 어떤 날은 간단한 커피 기프티콘 주기에는 성의가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주자니 영 상대의 취향을 파괴해 버리는 선물을 줄까 염려를 하며 시간을 흘러 보낸 적도 있다. 가장 고민됐던 순간은 '내가 과연 이 사람의 생일을 축하해 줘도 될까?'라는 생각과 함께 우리의 관계에 내가 이만큼의 마음을 전하면 그가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라는 오만한 생각이 들었던 때였다. 그렇게 몇 해를 지내고 나서 깨달은 것은 따뜻한 마음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전하든 그 마음을 삐뚤게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수년간 잊지 않고 마음을 전해준 이들부터 카톡 알림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말을 걸어준 사람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해 나에게 마음을 건네주었다는 사실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을 잊지 말고, 애를 쓰고 노력하면서 순간의 순간에 마음을 나누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참 별 볼일 없는 나를 더욱 성장하게 만드는 이들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게 해 준 사람들에게 천천히 갚아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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