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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연 Aug 05. 2023

지워지지 않는 일기장

실없는 마음과 웃긴 위로

몇 년 전부터 어이없는 핑계를 대고 일기를 쓰지 못하게 되었다. 마음을 크게 한 번 다치고 난 뒤로부터는 나의 구구절절한 것들을 손수 써 내려가는 것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손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꾹 다문 입처럼. 이상하게 스스로에게도 열리지 않는 마음 같은 것들이 있었다.


아무도 (겉으로는) 나의 마음에 대해서 혀를 차거나 비난을 하는 일이 없었지만, 솔직한 감정을 마주하는 게 스스로를 부끄러운 존재로 만들어버린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래서 나의 마음들을 애써 외면했던 적도 있었다. 혹은 그것을 마주하는 방법으로 갉아먹는 일을 택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내가 가진 일기장의 존재를 잊어버린 채 하루하루를 지내던 때도 있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존재의 인식은 있었지만 그것이 내 마음을 계속해서 담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매일을 기록하던 그래서 조금은 당연해져버린, 찢기거나 버려지지 않을 그렇게 15년을 나에게서 머무르게 되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이제 그만 써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만큼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떨 때에는 다 담기에 벅찰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만 내려놨던 적도 있었다. 그때에도 그것은 내 책상, 혹은 서랍 그 어딘가에서 내 손에 의해 꺼내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어떠한 투정도 불평불만도 없이 그렇게 나를 기다렸다.


10년 전 내 생일날, 이런 말이 쓰여 있었다.

"2013년에 우리 둘 다 조금 더 이기적여지자. 알았지?"

나는 늘 배려하고 나보다 남을 더 챙겨야 사람이었고, 받는 것보다 주는 게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나'를 위하는 방법을 모른 채 당연하듯 그런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넌 좀 '이기적이어도 돼. 뭘 하든 너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야'라고 말해주었다.


하고 싶었지만 스스로도 보기 힘들었던 나의 민낯을, 부끄러워 하지 못했던 생각이나 말, 그리고 일상들까지 그것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었다. 대수롭지 않거나 실없는 것들을 '보통'의 것으로 만들어주었고 때로는 더 빛나게 해 주었다.


내 마음속에도 감히 털어놓지 못한 생각이나 감정들을 털어놓게 만들었고, 그것을 전혀 낯부끄럽지 않게 때로는 웃어넘겼다. "넌 내가 어떻게 말할 것 같냐"면서 답이 정해져 있는 수많은 고민들을 털어놓기도 했다.


참으로 오랜 시간을 나보다 더 나를 쏟아붓게 만들었고, 그 수를 세어보니 15년이 되었는데 그런 줄을 몰랐다. 그렇게 오랜 시간 쏟아부었더니 그간의 시간이 거짓말하지 않듯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게 되었다.


앞으로는 어떤 일들을 채우게 될까 애써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이제까지 그랬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하나둘씩 채워나가겠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딘가에 켜켜이 쌓여있겠지.


오늘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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