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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연 Jul 07. 2024

이유를 붙이자면 말이야

0.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2024년 4월 15일. 대학병원 정신과에 입원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주 내 다이어리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갑자기 이유 없이 눈물이 났고 또 우울했던 이틀이었다.

오랜만에 정말 힘들었고 또 너무 힘들었다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잘 견뎌내고 있는 중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그게 다 무너져버리는 순간이었다.


지금은 그때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이유를 찾자면 이유가 없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잘 지내가다도 이렇게 위기의 순간이 한 번씩 찾아온다. 그래서 여느 날과 다름없는 그랬던 날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회사를 가야 했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와 같이 살아가야 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항상 그래왔으니까. 처음 병원을 다닌 2018년 이후로 줄곧 그래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할 만큼 많이 울었고 또 기대기도 했지만.


나는 어김없이 찾아온 우울에 늘 그랬던 것처럼 이 우울함이 지나가기를, 시간이 지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나의 바람대로 시간은 흘렀고 내가 써야 할 시간들을 열심히 쓰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눈물이 나진 않았지만 또다시 거대한 우울함이 나를 덮쳐오기 시작했다. 이날 또한 잘 버텨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우울함의 원인도 모른 채 누구를 붙잡고 울고불고하거나 내 우울함을 떠넘길 수 없었다.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울증을 앓던 초기에 주변 사람들을 너무 힘들게 했다. 매일 전화하고 울면서, 죽고 싶다면서 상대에게 내 마음을 토해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긍정이나 호의라도 그만큼 토해내면 받는 이는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그 뒤로는 나의 불안전한 마음으로 인해 또 다른 누군가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우울한 이유를 찾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우울함의 이유를 알고 이를 받아들였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빨리 잠이 들기를 마음의 안정이 찾아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날은 유독 시간이 지나도 이 우울함이 내 몸에서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음이 너무 답답했고 우울함은 온몸을 타고 돌아다녔다. 우울한 마음을, 내 머릿속을 괴롭히는 생각들을 빨리 지워내고 싶었다. 잠을 자고 싶었지만 그럴 기운 또한 없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약을 먹는 것이었다.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정신을 차리지 못할 만큼. 이게 내가 대학병원에 입원한 이유다.


이날의 선택을 후회하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이 또한 내가 살고자 했던 방법이었다. 물론 응급실을 가야 하는 게 베스트였겠지만 그때 내 머리에는 그 단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혹은 못했다.


약을 먹은 그날 밤, 나의 몸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한밤중 나도 모르는 새에 이불과 요, 베개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이를 주우려 바닥에 발을 딛었더니 극한의 통증이 찾아왔다. 발을 살짝만 대어도 통증이 찾아와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거의 기어 다니다시피 몇십 분에 걸쳐서야 이불을 제자리에 놓을 수 있었다. 이를 두 번이나 반복했고, 핸드폰도 없어져서 한참을 찾아야 했다. 사실 핸드폰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고, 어딘가에 있었으나 약에 취한 나는 아무것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어마무시한 일들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그랬다. 그냥 잠시 지나가는 어떤 날 중에 하나인 줄만 알았다. 그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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