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아이들을 교육하는 걸까요? 왜 청년들을 훈련시키는 걸까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여서 이런 질문이 이상할 수도 있습니다만, 제가 앞으로 하려는 이야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이기에 짚고 넘어가 보려 합니다.
원시 인간들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먹고, 따뜻한 옷을 입으며, 맹수의 위협이 없는 안전한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처지에 만족하지 않고 더 안전한 곳, 더 좋은 옷, 더 좋은 음식을 얻기 위해 노력한 결과, 공동체를 이루고 협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지식을 쌓고 기술을 연구하며 미래의 예기치 못한 사태를 대비할 수 있는 도구와 제도들도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도구와 제도들은 인류가 발전할수록 복잡해졌으며 덩달아 사람들의 삶도 복잡하게 변화하였습니다. 직관적으로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일정 수준의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것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입니다.
집단생활에서는 구성원들이 효율적으로 움직이는데 필요한 사상과 문화들이 필요하였습니다. 이에 개인, 가정, 사회, 종교, 국가, 계급, 체제 등과 관련된 사상들이 나타났고, 개인 대 자연의 투쟁을 넘어 개인 대 개인, 사회 대 사회의 투쟁으로 경쟁 대상이 확장되었습니다. 하나의 국가 내에서도 집단 간 경쟁이 일어났고, 19세기 이후 산업화·국제화가 진행되면서 국가 간 경쟁도 심화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의 역할은 사회적 규모로 “우리 집단”의 생존에 필요한 기술, 지식, 문화를 전수하는 도구가 되었고, 집단과 국가의 이해관계에 적합하고 상대 집단을 압도할 수 있는 교육 정책들이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나 교육의 본질적 목적은 다른 사상들이 유입되어 변질되기도 하였습니다. 우생학의 논리로 사회 소외자들의 교육 권리가 박탈당하기도 하였고, 자본주의 논리로 불평등한 교육 기회가 정당화되기도 하였습니다. 정치적 이해에 따라 교육 내용도 의도적으로 가공하여 진실을 숨기거나 왜곡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교육 문제도 이런 복잡한 상황에 연장선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어느 하나의 관점으로만 보아서는 원인을 파악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육 문제에 대해 논의를 위해서는 이런 복잡한 상황을 아는 것이 첫 번째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사회 구조를 바탕으로 교육 주체를 나눈 뒤, 각 주체 별로 처한 상황과 문제를 살펴보는 방법을 선택해 보았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시점에 전체적인 시야가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교육 주체를 나누는 기준으로 경제학적 관점에서 사회 인력 생산과 소비 그리고 컨트롤러의 측면으로 분류하였습니다. 국가, 기업, 대학, 대학 이전의 교육기관들(중고등학교 등), 가정으로 나누었고 그들 각자의 고유한 목적과 상황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이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현시대 교육의 이율배반적 상황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본 글은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를 집필하기 전, 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사회적 제언을 써본 내용의 글입니다. 시기상으로 1년 전 즈음에 작성된 글이므로 감안하시고 보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매일 혹은 이틀에 한 편씩 기 작성된 글을 게시할 예정이며, 약 30여 편 분량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의 글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본 글보다 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바로가기 링크)의 글도 구독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